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수립한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획기적 경제성장이 이뤄졌는데, 거기에는 전력의 안정적 공급이 큰 역할을 했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대형 발전소 건설이 필요했다. 원자력발전소, 석탄발전소 중심의 대형 발전단지 위주로 건설된 것은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전력공급 안정성을 따질 때는 필요한 전력수요만큼 충분히 전력설비를 확보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설비 고장이나 송전망 사고 등이 널리 파급되지 않도록 전력공급시스템 구조를 적절히 설계해야 한다. 대형 발전단지 중심 전력공급체계는 광역정전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전력공급 안정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림 1>에서와 같이 우리나라 발전소는 해안을 따라, 대형 석탄발전단지와 원자력발전단지 위주로 건설돼 있다. 5 ,6, 7차 설비계획에서도 발전기 단지 집중 현상은 그대로 유지됐다. 공급 구조 면에서 우리나라 전력시스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나라의 전기 설비는 송전 조밀도와 발전용량 조밀도 모두 일본보다 높을 정도로 전기에너지를 많이 소비한다. 이는 전체 전기에너지의 50% 이상을 산업체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에서 비롯된다. 단위면적 당 발전 설비, 송전 설비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 이유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발전단지 대형화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수요 집중화가 맞물려 설비 고장 시 발생하는 고장전류가 차단기 용량보다 커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송전망 구조 변경, 한류 리액터 설치, 차단기 용량 증가 등 여러 기술적 대책이 가능하지만 근본적으로 수요 및 발전의 집중을 분산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둘째, 발전 설비는 주로 해안가를 중심으로 대형 발전단지 형태로 구축되고, 소비는 수도권에 40% 이상이 집중된 점이다. 이러한 발전단지 대형화와 소비 집중화는 초고압 대용량 송전설비 건설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사회적 수용성 문제로 더는 초고압 송전망 건설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지난 8월 발생한 대만 정전 사태는 대형 발전단지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평소 발전기 고장에 대비해 운전 중인 발전기로부터 예비로 확보하는 일차응답예비력은 많아야 발전기 1∼2기로 정해졌다. 따라서 대만의 경우처럼 발전단지의 발전기가 탈락하면 정전이 발생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원자력 발전단지뿐 아니라 석탄 발전단지도 대부분 밀집됐기에 천재지변이나 테러, 송전망 사고에 의해 광역정전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즉 일정 규모 이상 지진이 발생해 발전단지의 발전기가 차단되거나 송전선 사고에 대비한 광역정전방지장치의 오부동작으로 발전기 전체가 탈락하는 경우 광역정전을 피할 수 없다. 단순히 석탄 발전기나 원자력 발전기로 발전용량을 확보한다고 해서 전력공급 시스템이 안정됐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발전단지 용량은 많아야 4000Mw 이하로 제한해 발전단지 탈락이 광역정전으로 파급되는 경우를 원천 차단할 필요가 있다.
셋째, 원자력 발전기에 주파수 제어 기능이 없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기 점유율은 단일 계통에서는 세계 최고다. 프랑스의 경우 점유율이 70%지만 유럽 계통이 연계됐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독립 계통과는 여건이 많이 다르며, 원자력 발전기 자체적으로 주파수 제어 기능을 갖췄다.
에너지 전환정책에 의해 추가 건설을 중지하고 수명을 연장하지 않더라도 2030년에는 여전히 약 2만Mw의 설비용량을 유지하게 된다. 이렇게 항상 운전되는 기저발전기에 해당되는 원자력 발전기에 주파수 제어능력이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 계통의 주파수 안정도 유지 면에서 신재생 전원 확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신재생 에너지원을 도입하려면 원자력 발전기 대신 주파수 제어 능력을 갖춘 백업 설비를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
<그림 2>에서 보듯 5, 6, 7차 전력수급계획의 중심도 여전히 대형 발전단지임을 알 수 있다. 에너지 전환정책에 따른 8차 전력수급계획은 석탄 발전기, 원자력 발전기를 줄이고,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전원을 분산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전력공급시스템 안정화 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신재생에너지원의 간헐성에 의한 계통불안정 요소에 대한 적극적 대비가 필요하다. 신재생 전원을 확대하려면 신재생출력예측시스템과 제어시스템, 에너지저장장치와 운영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신재생 전원 에너지는 양수, 배터리뿐 아니라, 수소 저장, 열 저장 등 다양한 형태로 저장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활용한 시스템 안정화 기술이 더욱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열병합 발전소에 구축된 열공급 인프라를 활용해 신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열에너지로 공급하게 되면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시스템으로 운용할 수 있다.
열병합 발전소와 같이 수요지에 건설되는 분산전원은 송전망 건설이 불필요하고, 송전 손실을 줄이며, 전원 대형화에 따른 광역정전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신재생에너지의 출력 변동성을 제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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