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그리워하며 지은 ‘옥중가’ 실어 법정서도 당당한 모습 생생하게 보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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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동아일보 보도로 본 ‘박열의 항일 투쟁’
동아일보 기자 직접 면회하며 취재… 1923년 10월 18일자에 첫 기사
옥중결혼 소식도 속보로 전해… 1926년에만 관련보도 168건
‘흑도회 창립’도 동아일보 통해 확인

박열의사기념관이 전시하고 있는 동아일보 1926년 8월 30일자에 실린 ‘박열의 옥중가’. 박열이 아내 가네코 후미코를 그리워하며 지은 것이다. 박열의사기념관 제공
박열의사기념관이 전시하고 있는 동아일보 1926년 8월 30일자에 실린 ‘박열의 옥중가’. 박열이 아내 가네코 후미코를 그리워하며 지은 것이다. 박열의사기념관 제공
“○○○○ 계신데로/나의님은 가시니라//먼저가서 기다리리다/그대오길 기다리리다//언제던가 복도에서/손잡은 일도 있었건만…곁에 있던 간수께선/얼굴을 찡기더라.”

동아일보가 1926년 8월 3일자로 보도한 박열의 ‘옥중가(獄中歌)’다. 아나키스트 항일운동가 박열(1902∼1974)이 감옥에서 아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를 그리워하며 지은 것이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박열’이 주말까지 180만 관객을 넘은 가운데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 박열의 얼굴을 더듬어봤다.

“기자는 그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 시곡(市谷·이치가야) 형무소를 방문했다. …박열은 뜨거운 악수로 기자를 맞으며 ‘이렇게 자주 찾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일본 신문은 나에 관한 기사로 우스운 말이 나돌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은 정(鄭)이란 사람의 소위란 것이 확실하며….”

1925년 12월 14일자에 실린 동아일보 기자의 면회기다. 일왕 폭살 시도 혐의로 옥에 갇힌 박열은 기자에게 “내 형이 매우 근심하는 모양이니 위안을 해 달라”고 부탁하는 한편 일본 신문의 기사가 왜곡됐음을 알렸다. 기사를 통해 가네코가 “이제부터는 조선 옷을 입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것과 두 사람의 혼인 수속 문제 등의 근황도 알 수 있다.

박열, 가네코 후미코 부부 사진이 실린 동아일보 1926년 3월 2일자. 부부는 각각 사모관대와 한복 저고리 차림으로 법정에 섰다. 동아일보DB
박열, 가네코 후미코 부부 사진이 실린 동아일보 1926년 3월 2일자. 부부는 각각 사모관대와 한복 저고리 차림으로 법정에 섰다. 동아일보DB
1926년 3월 2일자 동아일보에는 일제의 법정에서도 당당한 박열 부부의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받쳐 입고 머리까지 조선 머리를 쪽진 금자문자(金子文子)가 법정에 나타나 먼저 간수에게 차 한잔을 청해 마시고 … 사모관대(紗帽冠帶)에 조복(朝服)을 입고 검은 혜자(鞋子)를 신은 박열이 법정에 나타나 자기 자리에 앉으며 …방청석에 섰던 조선 학생들이 웅성웅성하는 것을 들은 박열은 몇 번이나 돌아다보고 말 없는 웃음을 보내어 답례를 하였고….”

동아일보는 박열 사건의 첫 소식을 1923년 10월 18일자로 전했고, 총독부의 보도 통제가 해제된 1925년 11월 25일자 2면 머리에 “‘대중의 반역’을 표방하고 무정부주의를 선전”이라는 기사를 통해 박열의 혐의와 이력, 불령사의 성격 등을 보도했다. 박열의 정신감정 거부나 옥중결혼 소식도 속보로 전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공판이 열린 1926년에만 박열 관련 소식을 168건이나 보도했다.

동아일보가 1926년 1월 1일자로 실은 박열의 옥중시(獄中詩)에서는 항일운동가로서의 단단한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옥창(獄窓)의 겨울밤은/이슥히 깊었는데/찬 기운은 살을 어이고//…//고르지 못한 이 세상/생지옥의 이 세상/아! 원수의 생지옥//….”

박열 등이 조직한 ‘흑도회’의 창립을 공식 확인할 수 있는 통로도 동아일보 지면이다. 아나키스트 독립운동을 연구한 김명섭 단국대 박사는 “흑도회가 조선인 노동자 학살 사건을 진상 조사한 일도 함께 조사한 이상협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의 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북 문경시 마성면에 있는 박열의사 기념관은 1922∼1962년 박열에 관해 동아일보가 보도한 238개 기사를 소장하고 있으며 그중 일부를 전시하고 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박열 평전’(1996년)을 보완해 최근 출간한 ‘나는 박열이다’(책뜨락)에서 ‘동아일보의 박열 옥중면담기’를 따로 실으면서 “당시 동아일보는 총독부 당국의 치밀한 보도 통제에도 불구하고 박열 사건에 대해 여러 차례 보도했다”고 썼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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