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일에 치인 무기계약직… ‘구의역 비극’은 진행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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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1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1년… 하늘서 받은 생일케이크 28일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9-4 승강장에서 서울메트로 안전업무직 박창수 씨(29)가 옛 동료 김모 씨(당시 19세)를 추모하며 케이크와 꽃을 놓고 있다.
 김 씨는 1년 전 이날, 이곳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숨졌다. 29일은 김 씨의 생일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1년… 하늘서 받은 생일케이크 28일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9-4 승강장에서 서울메트로 안전업무직 박창수 씨(29)가 옛 동료 김모 씨(당시 19세)를 추모하며 케이크와 꽃을 놓고 있다. 김 씨는 1년 전 이날, 이곳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숨졌다. 29일은 김 씨의 생일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3분 안에 먼지 제거를 끝내야 하는데 ‘혹시라도 통제가 안 된다면…’이라는 생각에 여전히 불안합니다.”

28일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 순환 9-4번 승강장 앞. 검은 양복을 입고 이곳을 찾은 서울메트로 선릉PSD(플랫폼스크린도어) 소속 임선재 씨(34)가 말했다. 임 씨는 지난해 9월 안전업무직으로 입사했다. 임 씨가 말한 스크린도어의 장애물 검지 센서 이물질 청소는 지난해 같은 날 바로 이곳에서 사고로 숨진 김모 씨(당시 19세)의 마지막 작업이었다. 임 씨는 “작업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종합관제실이나 승무원이 한눈이라도 팔면 같은 사고가 반복될 수도 있다”며 “위급할 때 정비요원이 승강장으로 피신할 수 있는 비상문도 일부 역에만 도입됐다”고 말했다.

○ 1년 지났지만 위험은 여전하다

28일 오전, 1년 전 이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벌어진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고현장 스크린도어에 시민이 추모 내용을 담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28일 오전, 1년 전 이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벌어진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고현장 스크린도어에 시민이 추모 내용을 담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구의역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 씨가 열차에 치여 숨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이날로 1주년이 됐다. 사고 이후 서울시 등이 내놓은 안전 대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1년 만에야 나온 검찰의 수사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메트로는 사고 이후 스크린도어 정비 업무를 직영 체제로 전환하고 PSD 담당 안전업무직을 기존 146명에서 206명으로 늘렸다. 121개 역을 담당하는 관리소도 2곳에서 4곳으로 늘렸다. 2인 1조 근무 수칙도 정착됐다.

그러나 인력 부족 등으로 직원들은 피로감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17명 안팎이 하루 15시간 동안 30개 역사를 관리한다. 그러다 보니 이상이 생겨 출동하는 데 20∼30분씩 걸리는 등 과부하가 걸린다는 얘기다. 현장에서는 관리소를 2개 더 늘리고 인원도 40명은 더 충원해야 문제가 해소된다고 말한다.

안전업무직 직원 처우도 문제다. 안전업무직은 서울메트로 소속이지만 무기(無期)계약직이어서 정규직과는 급여 기준 등이 다르다. 노조 관계자는 “4조 2교대를 시범 운영 중인 정규직과 달리 안전업무직은 3조 2교대”라며 “처우에서도 차별이 있는 사실상 비정규직”이라고 주장했다.

사고 뒤 ‘지하철 비정규직 사망재해 해결과 안전사회를 위한 시민대책위’(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이 내놓은 권고사항 이행 여부를 두고 서울시와 조사단의 평가도 엇갈린다. 17일 조사단이 내놓은 평가 및 의견서에 따르면 서울시가 이행한 권고사항은 58개 중 6개. 그러나 서울시는 36개를 완료했다고 주장한다.

○ 검찰 수사결과 발표 ‘늑장 논란’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성상헌)는 이날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전 서울메트로 사장인 이모 씨(53), 은성PSD 대표 이모 씨(63)를 비롯한 9명과 서울메트로, 은성PSD를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각각 5, 6개월씩이나 걸리는 등 늑장 수사 논란도 일었다. 경찰이 사고현장 분석과 합동수사 등에 5개월을 쓴 데다 지난해 11월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도 피의자 14명 소환조사와 법리 검토에 6개월이 걸렸다. 수사 결과 발표가 사고 1주년에 맞춰 나온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 관련 업체가 많아 사실관계 확인 등 고려할 부분이 많았다”며 “발표 시점을 일부러 조정한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구의역 9-4번 승강장 앞에는 김 씨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졌다. 김 씨가 수리하던 스크린도어에는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제목의 투명 게시판이 설치됐다. 게시판은 추모 글이 적힌 접착식 메모지로 가득했고 바닥에는 국화가 놓였다. 사고 당시 김 씨의 가방에 있던 컵라면을 상기하듯 컵라면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기도 했다. 1년 전 은성PSD 소속으로 김 씨와 함께 일했던 박창수 씨(29)는 이날 생일(29일) 하루 전 숨진 김 씨를 위해 초 2개가 꽂힌 케이크를 바치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 등 정치인도 찾았다. 그러나 ‘위험의 외주화’ 문제 해결과 관련된 법안이 10여 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1년간 한 건도 처리되지 않았다.

위은지 wizi@donga.com·권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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