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조차 제대로 못 뗐는데…어느새 시인이 된 어머니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7일 15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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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누하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특별한 출판 기념회. 알록달록 고운 원피스와 재킷을 차려입고 시를 낭독하던 노년의 ‘시인들’은 “정규 교육과정을 받지 못해 한글조차 못 떼던 우리가 어느새 시인이 됐다. 믿기지 않는다”며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목소리는 울먹거렸지만 눈물을 훔치는 손가락 사이에서는 누구보다 환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 행사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무학(無學)’의 작가들 때문이다. ‘시, 잠자는 나를 꺼내다’란 시집의 작가는 할머니 시인 윤복녀(68), 이명옥(64), 김영숙(63), 유미숙(55) 씨 등 4인방. 이들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한글을 배우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다 지난해 5월 27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마들주민회 부설 마들여성학교 ‘시 쓰기를 통한 치유인문학’에서 처음 만나 글을 배우고 시를 쓰고 시집까지 내게 됐다.

어머니 시인 네 명은 모두 초등학교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특히 이 씨는 어릴 적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 정도로 어려운 삶을 살았다. 이 씨는 군대에서 김신조가 쏜 총에 다리 하나를 잃은 오빠의 이야기를 시로 담았다. ‘30년 살며 3남매 남겨 놓고 하늘나라로 가신 우리 오빠’라는 시의 마지막 문구를 작성하면서는 흐르는 눈물을 멈추기가 어려워 펑펑 울었다고 했다.

유 씨도 고난 했던 어린 시절을 ‘담벼락 높은 그 집’이라는 시 안에 담아냈다. 유 씨는 “어려워진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님이 언니를 잠깐 동안 부잣집에 보내야 했다. 언니가 보고 싶던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부잣집 주위를 배회할 때의 기억을 회고해 시를 썼다”고 설명했다. 시 낭독회가 끝나고 사진을 찍을 때 유 씨와 언니는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김 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물난리로 전 재산을 잃었다. 이 일로 아버지는 방황했고 김 씨가 동생을 돌보고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학교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공부에 미련은 계속 남았다. 김 씨는 “아이를 업고 학교에 가는 꿈을 많이 꿨다. 그런데 이렇게 공부도 하고 책도 내게 되니 감개무량하다. 보잘 것 없던 돌이라 여겼는데 주변 사람들이 나를 특별한 보석으로 만들어준 것 같다”고 했다. 윤 씨도 “시를 쓰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졌다.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들은 모두 “시를 통해 그 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경험과 내면의 이야기를 표현해 낼 수 있었다. 진정한 치유의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이들을 가르친 박미산 시인(55)은 “네 명의 제자들을 통해 오히려 내가 큰 감동을 받았다. 앞으로 이 분들과 함께 에세이집을 낼 수 있도록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이라고 밝혔다.

작가들은 “평범한 우리에게도 이처럼 특별한 기적이 찾아왔다. 늙었다고, 혹은 배우지 못했다고 좌절하지 마시라. 기회는 우연치 않은 곳에서도 찾아오더라”라며 희망을 강조했다.

정지영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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