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끊기니 아이 안보내는 엄마 늘어… 유치원이 무슨 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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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된 보육대란]서울-경기-광주-전남교육청 지원 중단

서울의 D유치원 원장은 19일 교사들에게 “이번 달 월급을 열흘 정도 뒤에 받아도 되겠느냐”고 어렵게 말을 꺼냈더니 “당장 25, 26일에 카드 대금을 내야 한다. 교통비는 어쩌느냐”는 답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광주의 E유치원 원장은 “교사 중에는 25일에 월세를 내야 하는 사람도 있고 가장인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며 안타까워했다.

교육당국이 누리과정 예산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설마 했던 유치원 대란이 현실화했다. 그동안 각 교육청은 매달 5일에서 20일 사이에 유치원 누리과정 지원금을 내려보냈다. 그러나 올해 시도의회의 예산 전액 삭감으로 유치원 예산이 0원인 서울 경기 광주 전남 교육청은 19일까지 이달 치 누리과정 지원금을 보내지 않았으며 당분간 보낼 방법도 없다고 밝혔다.

유치원과 학부모들은 추후 누리과정 예산이 편성돼 부담분을 돌려받을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다. 유치원이 학부모들에게 추가로 원비를 요구할 경우 누리과정 예산이 편성된 이후에 학부모들이 소급해서 돌려받을 수 있다. 누리과정 예산 갈등은 지난해 내내 이어졌지만 결국 학부모들에게 12개월분 모두 지원이 이뤄졌다. 하지만 유치원 현장의 대혼란은 이미 시작됐다.

○ 유치원 “예산 끊기고 원생 줄고”

서울 강북 지역의 B유치원 원장은 요즘 엄마들의 문의 전화를 받느라 목이 쉬었다. “이달 원비가 오르느냐”는 물음에 원장은 “우리도 교육청에서 아무 이야기를 못 들었으니 기다려 달라”고 답할 뿐이다. 그러나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이달 초 개학 뒤 아이를 안 보내는 엄마가 여럿이다. “입학금을 냈는데 누리과정 지원이 안 되면 못 보낸다”며 입학금 환불을 요구하는 전화도 이어진다. 지원금이 없는데 원생까지 줄어들면 유치원은 문을 닫아야 한다.

원아 이탈은 특정 유치원만의 일이 아니다. 원생이 100여 명인 서울 양천구 C유치원은 지난주에 5명이 그만뒀다. 원장은 “엄마들이 아이 휴원계를 내고 당일 주민센터에 보육수당(월 10만 원)을 신청한다고 들었다”며 “나중에 누리과정 지원 재개가 확실해지면 복귀원을 내면 되니 엄마들 입장에서는 살길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운영비가 고갈되면서 교육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연초에는 3월부터 1년간 사용할 책과 교구를 사야 하는데 유치원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한 유치원은 간식을 과일 대신 빵으로 바꿨고, 경기도의 한 유치원은 2개로 나눠 운영하던 종일반을 당분간 하나로 합치기로 했다. 원장들은 “교사는 아이 돌보는 일만 신경 써야 하는데 이런 일로 사기가 떨어지니 마음이 아프다”고 입을 모았다.

○ 대책 없는 교육청, 분노하는 학부모

경기 안산시에서 세 살, 한 살 된 딸 둘을 키우는 주부 A 씨(32)는 요즘 하루하루가 심란하다. 누리과정 파행 탓에 첫째 아이 유치원비로 매달 30만 원(종일반)은 더 들어갈 것 같아서다. 또래와의 교감을 위해 꼭 유치원에 보내고 싶은데 늘어난 가계비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다.

결국 보육대란이 벌어졌지만 4개 교육청은 모두 누리과정 지원금과 무관한 사립유치원 교사처우개선비(담임교사 51만 원, 교사 40만 원)만 지급할 방침이다. 시도의회에서 예산을 재의하지 않는 한 교육청은 손을 쓸 수 없다는 것. 그나마 전남의 경우 교육청이 지난해 12월에 3개월분(12∼2월) 지원비 118억 원 중 67억 원을 지급해 사정이 조금 낫지만 유치원대란은 불가피하다.

유치원들은 교육당국에 분노하고 있다. 학부모들에게 추가 부담을 지우기 어렵다는 판단에 궁여지책으로 대출이라도 받겠다는 입장이지만 교육청이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서울지회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교육청이 담보 대출을 받아 한 달 치 지원금(200억 원)을 일단 주고 나중에 예산이 통과되면 그걸로 충당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조 교육감은 “한 달 이자가 5800만 원 정도”라며 난감해했다.

준예산 상황인 경기도교육청 역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19일 준예산에 어린이집 예산 2개월분(910억 원)을 편성해 집행한다고 밝혔지만 유치원은 교육청 소관이라 경기도에서 지원할 수가 없다.

교육당국은 표면적으로는 21일 부산에서 열리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정기총회에서 해결책이 나오길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기총회에 찾아가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협의회 측에서 아직 이 장관이 참석하겠다는 요청에 답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앞서 18일 이 장관과 시도교육감협의회 임원진 회동에서도 견해차만 확인한 터라 양측 모두 크게 기대하는 게 없다.

이은택 nabi@donga.com / 수원=남경현 / 광주=이형주 기자
#보육#보육대란#유치원#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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