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오지 유배 부른 ‘백석 비평문’ 발견

  • 동아일보

“童詩에 정치성 노출 이롭지 않다” 北사회주의 문학 비판
박태일 교수, 글 4편 새로 확인
1956년 北기관지 게재 후 취조 당해… 2년 뒤 삼수군에 끌려가 평생 갇혀

죽음 뒤에서나 진면목을 드러내는 게 ‘순수’의 운명일까. 광복 뒤 북한에 남았다가 1963년부터 30여 년간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던 천재 시인 백석이 1950년대에 쓴 시 비평문 등 글 4편이 새로 발견됐다. 이번에 발견된 시 비평문은 현재까지 알려진 백석의 유일한 시 비평문이다.

이 비평문은 사회주의 문학의 정치성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훗날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죽을 때까지 산골에서 유배 생활을 하게 되는 그의 비극을 예감케 한다.

박태일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반년간지 ‘근대서지’ 최근호에 ‘아동문학에 발표된 신인 및 써클 작품들에 대하여―운문’이라는 백석의 비평문 전문과 해설을 실었다. 백석의 비평문은 1956년 북한 조선작가동맹 아동문학분과위원회의 기관지 ‘아동문학’ 12월호에 실린 것으로 해당 내용을 중국 지린(吉林) 성에서 연구했던 박 교수가 최근 확인했다.

백석은 이 글에서 그해 아동문학에 실린 여러 사회주의 성향의 동시를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어째서 약속이나 한 듯이 협동조합을 노래한 것들뿐인가”라며 “시를 짓는 이들의 감성이 가난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느낀 시가 아니라 지은 시들이고 아이들의 마음과 지혜의 세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며 “아이들의 시에서 이러한 정치성의 노출은 이롭지 않다”고 강조했다.

백석은 이어 동시와 문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어린이들의 세계와 관계된 시어는 단순 소박 순진해야 하며 맑아서 밑이 환히 꿰뚫려 보이고, 다치면(건드리면) 쨍 소리가 나는 그런 말이어야 할 것”이라며 “문학은 우주, 자연과 인간사회의 아름답고 깊고 먼 것들을 감동 속에 사색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1956년 2월 소련 공산당 대회의 스탈린주의 배격 이후 짧은 완화기를 틈타 백석이 모처럼 얻은 발언 기회를 활용해 실은 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1957년 백석은 ‘부르주아 문학’이라는 비난과 함께 사실상 당의 취조를 받았고 1958년 겨울 삼수갑산(三水甲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오지인 함경남도 삼수군에 ‘현지파견’ 명목의 유배를 간다. 백석은 1995년이나 1996년까지 생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세상을 뜰 때까지 삼수군을 벗어나지 못했다. 1962년경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시가 발표된 이후에는 공개된 작품이 없다. 박 교수는 이 밖에 1956년 8월호 ‘소년단’에 실린 백석의 동시 ‘소나기’와 산문 ‘착한 일’ ‘징검다리 우(위)에서’도 발견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백석#비평문#박태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