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화백, 불꽃처럼 살다…‘슬픈 전설’로 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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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1세로 뉴욕서 타계

22일 서울시립미술관 2층의 상설 ‘천경자실’을 찾은 관람객들이 최근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천경자 화백의 작업실 사진 앞에 미술관 측이 마련한 국화를 놓으며 조의를 표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22일 서울시립미술관 2층의 상설 ‘천경자실’을 찾은 관람객들이 최근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천경자 화백의 작업실 사진 앞에 미술관 측이 마련한 국화를 놓으며 조의를 표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서울시립미술관 2층 전시실을 찾는 관람객은 관심을 둔 기획전 프로그램에 상관없이 동선(動線) 때문에 상설 ‘천경자실’을 꼭 거쳐야 한다. 천경자(본명 천옥자·사진) 화백이 8월 6일 91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고희를 넘긴 뒤 한국을 등지고 떠난 그가 서울 복판에 남긴 이 ‘붙박이 필수 관람 코스’에 얽힌 사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98년 미국 뉴욕으로 가 큰딸 이혜선 씨(70) 집에 머물던 고인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것으로 전해졌다. 간간이 사망설이 돌았으나 가족이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해 확인이 어려웠다. 뇌출혈 소식 직후 천 작가와 막역했던 고 권옥연 화백이 문병을 위해 뉴욕의 천 화백 큰딸 집을 찾아갔지만 면회를 거절당한 일도 있었다.

천 화백의 그림 93점과 저작권을 기증받아 관리 중인 서울시립미술관 측은 22일 “이 씨가 8월 모친 유골함을 들고 미술관 수장고를 다녀갔다. 사망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활달한 성품으로 김환기 고은 박경리 등 문화예술인들과 폭넓게 교류하고 언론 인터뷰에도 적극적이던 천 화백이 한국 예술계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건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과의 ‘미인도’ 위작 분쟁 이후다. 1979년 10·26사태 후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 집에서 압류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던 이 작품이 전시에 나오자 천 화백은 “내가 그린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술관 측도 “3차례 감정 결과 진품으로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장엽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2실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여전히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지만 지난해 이혜선 씨의 요청으로 인터넷 홈페이지 소장품 목록에서 삭제했다. 위작 논란에 대한 미술관 견해가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천 화백은 1995년 호암갤러리에서 15년 만의 개인전을 열고 3년 뒤 미국으로 떠났다가 일시 귀국해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했다. 4년 후 서울시립미술관에 ‘천경자실’이 마련됐지만 2013년 딸 이 씨는 “서울시의 관리가 소홀하다”며 작품 반환을 요구해 다시 논란이 일었다. 2007년 고향 전남 고흥군에 기증됐던 작품 66점도 2012년 딸 이 씨가 “작품 보관이 허술하다”며 갈등을 빚어 이듬해 그림이 모두 반환되고 기념미술관 건립 계획도 백지화됐다.

천 화백은 개인사가 순탄치 않았다. 스무 살 때 결혼해 큰딸 이 씨 등 1남 1녀를 낳았지만 남편과 곧 헤어졌다. 얼마 뒤 유부남이던 두 번째 연인과의 만남으로 다시 1남 1녀를 얻은 뒤 독신으로 지냈다. 1978년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이 된 그는 이듬해 예술원상을 받았다. 그러나 천 화백의 생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자 지난해 2월 예술원은 수당 지급을 중단했다. 이에 딸 이 씨는 원로 회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를 예술원 회원에서 탈퇴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예술원 측은 “9월 4일 서울 강남구청에 사망신고가 접수된 것을 22일 확인했다. 미지급된 수당 약 3400만 원을 소급해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실’은 기획전 흐름을 차단하는 위치 때문에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지난해 이 씨와 논의했지만 거절당했다. 기증 당시 계약에 따라 전시 공간을 유족 동의 없이 개조하거나 옮길 수 없다”고 했다. 예술원 회원인 민경갑 화백(82)은 “장녀와 서울시립미술관이 고인의 별세 사실을 숨긴 것은 모친과 작가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석연찮은 미스터리만 남았다”고 아쉬워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천경자#천경자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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