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뒤안길서 돌아온 女영웅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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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채 폭탄투척 안경신… 암살요원 남자현… 전투기 조종 권기옥…
영화 ‘암살’ 계기 女독립운동가 재조명

1920년 8월 3일 평안남도 평양.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평남 경찰국 청사에 다가갈수록 긴장감이 커졌다. 이 한 몸 바치는 것에 추호의 두려움도 없다. 다만 배 속 아기는 걱정된다. 폭탄을 던지자 시내가 연기로 진동했다. 평양시청 등에도 폭탄을 던졌으나 도화선이 비에 젖어 불발됐다. 너무나 아쉬운 순간이다.

여성 독립운동가 안경신 의사(1888∼?) 이야기다. 그는 이듬해 3월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사형 선고까지 받게 된다.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가 발굴된 사례만 2000여 명에 가깝다. 최근 광복 70주년과 영화 ‘암살’의 흥행으로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 여성 독립운동가 영화, 서적, 전시회… 젊은이들 “놀랍고 멋지다”며 환호

광복 70주년을 맞아 영화와 책 등의 영향으로 젊은 층 사이에서 여성 독립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훈련 중인 여성 광복군 대원들. 여성가족부 제공
광복 70주년을 맞아 영화와 책 등의 영향으로 젊은 층 사이에서 여성 독립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훈련 중인 여성 광복군 대원들. 여성가족부 제공
요즘 젊은층에게 최고 슈퍼영웅 중 한 명은 ‘암살’의 안옥윤(전지현)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게시판에는 안옥윤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가를 두고 “독립군의 어머니인 남자현” “여러 여성 열사를 합쳐놓은 캐릭터”라는 갑론을박이 펼쳐진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리라”라는 남자현 의사(1872∼1933)의 유언을 SNS에 소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인터넷 게시판에 윤희순 박자혜 정정화 조신성 김마리아 등 여성 독립운동가 이름과 공적을 술술 이야기하는 누리꾼들도 적지 않다. 대학원생 최지선 씨(28)는 “그간 유관순 열사만 알았다”며 “안옥윤에게 호감이 가면서 여성 독립투사 이야기를 찾아보게 됐다”고 밝혔다.

항일전선에 나섰던 한국 첫 여성 비행사 권기옥 열사(1901∼1988)를 조명한 평전소설 ‘날개옷을 찾아서’가 최근 발간됐다. 여성 독립운동가 260명을 집대성한 인명사전도 조만간 출간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23일까지 ‘독립을 향한 여성 영웅들의 행진’ 기획전시가 열린다.

○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 부족…국가가 나서야

전문가들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교육과 의료 등 후방에서 남성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소극적 이미지에서 탈피해 독립운동에 직접 나선 적극적 이미지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자현 의사는 1932년 왼손 무명지를 잘라 흰 천에 ‘조선독립원’이란 혈서를 써 하얼빈에 온 국제연맹 조사단에 조선 독립을 호소했고, 이듬해 만주 주재 일본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암살하려다 체포돼 온갖 고문을 당했다. 광복군 오광심 열사(1910∼1976)는 “여성이 참가하지 않으면 독립운동은 사람으로 말하면 절름발이, 수레로 말하면 외바퀴”라며 여성 참여를 독려했다. 함경도 길주에서 만세운동을 펼치다 체포된 후 옥사해 ‘북한의 유관순’으로 불리는 동풍신 등 수많은 여성이 독립운동 최전선에 나섰다.

만주 의병대원으로 활동한 오희옥 여사(89)는 1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어린 여자인 나 역시 의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지금도 TV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나오면 ‘저놈, 총으로 쏴 죽여야 하는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에서 훈·포장을 받은 독립유공자 총 1만4197명 중 여성은 263명(1.85%)에 불과하다. 윤주경 독립기념관장은 “여성이 남성 못지않게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남성 위주로 기록이 남다 보니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동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며 “국가 차원에서 적극 발굴하고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종 zozo@donga.com·김수연 기자
#역사#여자영웅#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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