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유근형]전문가 없는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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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도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메르스 사태를 지휘하고 있다. 프로야구 한화의 김성근 감독이 아무리 뛰어나도 국가대표 축구대표팀을 맡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기자는 평소 “의사 출신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돼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의학지식은 일반 공무원보다 낫겠지만 장관의 업은 국민과의 소통능력, 추진력과 조정능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기 이익만 좇으며 사는 의사를 적지 않게 접하면서 생긴 편견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메르스 민관합동대책반에 참여한 한 보건 전문가의 말을 듣고서는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다. ‘왜 이렇게 정부가 우왕좌왕하지? 정부 격리 지침은 왜 이렇게 자주 바뀌지?’ 취재 과정에서의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도 같았다.

‘전문가의 부족’은 초기 역학조사 부실로 이어졌다. 신종 감염병은 초기 역학조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살인사건 해결을 위해선 초동수사가 중요하듯. 하지만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의사 출신 공무원들은 현장조사에 전념하기 어려웠다는 게 중론이다. 연금 전문가로 보건 분야가 생소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을 보좌하기 위해 대책반에 불려 들어오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대책반을 지휘하는 장차관을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대응지침을 받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상황이 지체됐다는 것. 살인현장을 누비고, 연구실에서 퍼즐을 맞추는 데 시간을 보내야 할 사람들이 경찰청장 비서 역할을 한 셈이다.

전문 역학조사관의 부재도 문제였다. 보건당국은 질병관리본부와 각 지자체 소속 공중보건의 30명을 현장에 투입해왔다. 하지만 그들에게 준전시 상황과 같은 군기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한 복지부 관계자는 “군 대체복무 중인 공보의들은 아무래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현재 복지부 공무원들은 잠도 못자고 전원 투입 체제인데, 이들에게 이런 태도를 강요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현 인력 구조로는 메르스 이후 다른 신종 감염병이 발생해도 같은 문제가 재연될 소지가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 보건복지부의 실장급(1급) 4명 중 의사 출신은 단 1명도 없다. 보건의료정책실 소속 국장(2급) 3명 중 보건 전문가는 권준욱 공공보건정책관 1명뿐. 심지어 건강정책국장도 비보건 전문가다. 질병정책과, 응급의료과 등 전문지식이 필요한 요직도 비의료인 출신이 맡고 있다. 보건 없는 보건복지부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복지부의 외청에서 독립한 식품의약품안전처 모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식약처는 처장, 차장을 포함해 국장급 이상 총 11명 중 9명이 식품과 의약품 전문가다. 식품과 의약품을 다루는 식약처도 독립된 길을 가고 있는데…. 사람의 생명을 직접 다루는 보건 분야를 처로 격상시켜 독립시키거나 보건복지부 내 2차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메르스는 면역력을 갖춘 어른에겐 ‘감기’ 정도의 가벼운 질병일 수 있다고 아무리 정부가 설파해도 국민들의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국민이 믿을 수 있는 보건 전문 행정가의 부재는 그래서 더 아쉽다. ―세종에서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
#메르스#전문가#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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