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자살사고가 나서 119에 신고했더니 서울로 연결이 됐어요. 이곳 지역번호가 서울(02)이거든. ‘잠시 기다리라’더니 주소를 확인하고는 다시 경기 의정부로 넘기더라고요, 1분 1초가 급한 마당에….”
4년 전 수락 리버시티 아파트 1단지로 이사 온 전모 씨(60)는 최근 있었던 황당한 이야기를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아파트는 2009년 SH공사가 4개 단지(2397채·39∼114m²)를 분양한 평범한 아파트다. 하지만 작은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1, 2단지(1153채)는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 3, 4단지(1244채)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으로 행정구역이 각각 갈려 있다.
1, 2단지는 1.2km 떨어진 곳에 수락119센터가 있다. 하지만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4.8km나 떨어진 의정부 호원 119센터에서 출동한다. 파출소 역시 1.2km 앞 상계1파출소가 가깝지만 3.1km나 떨어진 호원파출소 관할이다. 시도 경계에 걸쳐 있어 주민들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방치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주민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건 아이들 통학 문제. 노원구에 있는 3, 4단지 아이들은 단지와 800여 m 떨어진 초등학교를 다닌다. 반면 의정부의 1, 2단지 학생은 비슷한 거리지만 4차로 도로를 3번이나 건너 도봉구에 있는 학교를 등하교한다. 원래는 6km 거리의 의정부시 장암초로 가야 하지만 주민들이 집단 반발하면서 위탁 교육을 받고 있는 것. 중학교도 15분 거리에 있지만 버스를 2번이나 갈아타고 40분이나 가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주민은 위장 전입을 하기도 한다.
주민 윤모 씨(75)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끼리 ‘누구는 서울에 사네, 누구는 의정부에 사네’ 하면서 편을 가른다. 어떤 학부모들은 서울 학교에 왜 의정부 학생을 들여놓느냐며 학교에 민원을 넣는다고 해서 속상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불편한 교통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재 1, 2단지에는 마을버스 2개 노선이 운행 중이다. 모두 서울 버스다. 그럼에도 버스회사가 채산성을 이유로 행정구역이 의정부시인 1, 2단지 노선을 축소하려 하고 있다. 택시를 이용해도 1, 2단지는 경기도라며 추가요금을 요구해 주민들 대부분이 3단지에서 내려서 걸어오는 실정이다.
원래 이 지역은 1960년대 서울지역 철거민들이 집단 이주하면서 형성됐다. 그동안 주민들은 지방세 등을 노원구에 납부해 왔다. SH공사가 상계장암도시개발지구로 개발에 나서면서 행정경계 문제가 불거졌다.
서울을 생활권역으로 두고 있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노원구로 편입되기를 원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주민 1200여 명이 ‘노원구로 편입해 달라’며 서명운동까지 했다. 자체 주민 의견조사에서도 99%가 노원구로의 통합을 원했다. 하지만 이곳의 경계구역 조정은 단지 조성 계획이 수립된 2003년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바뀌지 않고 있다. 행정구역 변경은 지자체 간 협의가 선행돼야 하지만 노원구와 의정부시가 합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구수에 따라 정부의 재정지원이나 지방세, 선거구 조정 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같은 생활권임에도 행정구역이 나뉘면서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 곳은 전국적으로 63곳에 이른다. △서울 은평구 충암학원∼서대문구 경남아파트 △관악구와 동작구로 분리된 관악 현대아파트 △중구와 성동구 사이에 지어진 한진그랑빌 △성북구와 동대문구 사이의 샹그레빌 △종로구와 중구로 나눠진 광화문빌딩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안전행정부는 주민 간 갈등을 우려해 행정경계 조정 지역 공개를 꺼리고 있다. 지자체 간 합의가 이뤄지면 행정경계 조정 적합성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보이고 있다. 안행부 관계자는 “해당 지자체 간 협의가 선행돼야 하지만 어느 지자체도 선뜻 양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경계 조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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