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대전 서구 관저동 건양대 의과대학인 ‘명곡의학관’ 2층. 교수 연구실 출입문에 가로 30cm, 세로 100cm 크기의 대형 유리창이 설치돼 있다. 복도에서 교수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건양대는 이번 여름방학 동안 충남 논산의 본교와 대전캠퍼스의 300여 개 교수 연구실 출입문에 모두 유리창을 설치했다. 학교 측은 공사에 들어가면서 “성희롱 예방과 함께 사제 간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교수 연구실을 개방형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학 관계자는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가 연구실 안의 상황을 알 수 없으면 노크하기가 망설여진다는 학생이 적지 않다”며 “교수들이 연구실을 ‘자기만의 영역’이라고 인식하고 있어 개방형 출입문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 제자들과의 벽이 더 낮아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2일 기자가 만나본 교수들은 불만이 적지 않았다. 일부 교수는 연구실 유리창 주변에 자수를 놓은 장식품이나 칸막이, 책꽂이 등 사무 집기를 놓아 내부가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가려놓았다. 옷이나 수건, 가운 등을 유리창에 걸어놓아 사실상 유리창을 가린 경우도 있다. ‘무언의 불만 표시’로 해석된다.
A 교수는 “연구실은 학교라는 공적 공간이긴 해도 개별성도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교수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초중고교처럼 교무실을 마련해 교수들을 한데 모으면 관리하기 편할 것 아니냐”는 비아냥 섞인 말까지 나왔다. 한 교수는 “교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다는 발상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번 개방형 출입문의 명분은 ‘개방’이지만 실제 목적은 ‘감시’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B 교수는 “학교 측은 최근 장식품 등으로 유리창을 가린 연구실과 그렇지 않은 연구실을 분류한 엑셀 파일을 작성해 전체 교수에게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 여교수는 “옷을 갈아입거나 편하게 입고 있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교수 연구실이 개방형으로 된 곳이 많다. 국내에서도 상명대가 2002년 처음 도입해 지금까지 별다른 논란이 없었다. 상명대 천안캠퍼스는 교수 연구실 출입문에 가로 40cm, 세로 150cm의 대형 유리창을 설치해 놓았다.
이번 건양대 교수 연구실 개방은 최근 일부 대학에서 성희롱 논란이 빈발하고 있는 시점에 나와 교수들은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내놓고 반발하지 못하고 있다. 건양대에서는 그동안 교내 성희롱 사건이 없었다. 교수들은 연구실 출입문 투명화가 성희롱 사건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는 분위기다. 하지만 상당수 교수는 연구실 개방화의 본질이 투명성을 명분 삼은 통제 강화라고 보고 있고, 학교는 교수들의 방만한 근무태도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어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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