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이성친구 많이 사귀면 ‘잘나가’ 보여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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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하듯 이성교제 즐기는 초등생들

《“눕혀라!” “키스해!”
최근 경기 수원의 한 초등학교 복도. 이 학교 6학년 A 군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같은 학년 B 양에게 “사귀자”고 공개 고백하고 이를 B 양이 받아들이자 주위에 몰려든 남학생들이 ‘스킨십을 하라’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결국 A 군은 학생 수십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B 양을 복도 바닥에 눕힌 뒤 B 양 위로 몸을 가까이해 입을 맞추는 시늉을 했다. 대구지역 초등학교 5학년 C 양은 남자친구와 사귀고 손을 잡기까지 채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C 양은 전교생이 워터파크로 소풍을 가는 날 버스 안에서 같은 반 D 군에게 스마트폰 메신저인 ‘카카오톡’으로 사귀자는 메시지를 받았다. 곧바로 사귀기로 한 C 양과 D 군의 스킨십은 워터파크 도착과 동시에 시작됐다. 두 학생은 수영복 차림으로 손을 잡고 서로 어깨를 감싸 안으며 워터파크를 돌아다녔다.》

놀이하듯 쉽게 만나고… ‘찍힐까봐’ 사귀고

최근 이성교제를 놀이처럼 가볍게 생각하며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즐기는 초등생이 늘고 있다. 학부모들은 초등생 자녀의 이성교제라고 하면 풋풋한 사랑을 떠올리기 쉽지만 정작 요즘 초등생들은 ‘기념일이 다가와서’ ‘이성친구가 있으면 잘나가 보여서’처럼 큰 의미 없이 이성교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학급에 절반 이상의 학생이 이성친구가 있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경기 의정부의 초등학교 5학년 E 양은 “우리 반 2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이성친구가 있다”면서 “‘카카오스토리’에 우리 반 자랑거리는 커플이 많은 것이라고 써놓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귄 지 100일이 되기도 전에 헤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 일주일도 되지 않아 헤어지는 경우도 많다.

일부 초등생은 이성친구 사귀는 걸 ‘놀이’로 만들어 즐긴다. 경기지역 초등학교 6학년 F 양은 “우리 학교 학생들이 만든 기념일 중에는 ‘솔로 때리는 날’이 있어서 그날이 되면 커플들이 이성친구가 없는 ‘솔로’ 학생들을 때리며 논다”면서 “이런 분위기 때문에 재미로 ‘일일커플’을 만드는 친구들도 있다. 나도 솔로 때리는 날을 며칠 앞두고 같은 반 남학생에게 ‘일일커플을 하지 않겠느냐’는 문자를 받았다”고 전했다.

심지어 이미지가 나빠져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당할까봐 마지못해 이성교제를 하는 초등생도 있다. 대구지역 초등학교 5학년 G 양은 “최근 5학년의 한 여학생은 6학년 선배가 사귀자고 했는데 거절했다가 ‘꼴불견’이라며 선배들에게 찍히는 일이 있었다”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이미지를 생각해 어쩔 수 없이 사귀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TV·인터넷 보며 이성교제 ‘환상’ 가져

초등생들은 왜 이렇게 놀이하듯 이성교제를 쉽게 생각하게 됐을까. 또 친구들 앞이나 공공장소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스킨십을 즐기는 초등생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많은 전문가는 TV 예능프로그램, 드라마에 나오는 연인들의 모습 등을 따라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주로 초등 여학생들이 즐겨 읽는 인터넷 소설(인소)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행복한 애정스토리를 담은 소설 ‘해피인소’ △실제 연애담인 ‘럽실소(러브실화소설)’ △농도 짙은 수준의 애정묘사가 담긴 ‘수위인소’ 등은 초등생들에게 큰 인기를 끈다.

서울지역 초등학교 5학년 H 양은 “인터넷TV로 ‘짝’(싱글 성인남녀가 이성친구를 찾는 예능프로그램)이나 ‘우리 결혼했어요’(연예인 커플의 가상결혼을 주제로 한 예능프로그램) 같은 프로그램을 친구들과 함께 즐겨 본다”고 말했다.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어린이성교육을 담당하는 신혜선 팀장은 “이상적인 연애 모습을 연출한 콘텐츠를 접한 초등생들은 연애에 환상을 갖고 그 모습을 따라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대화 이끈 뒤 교육은 단호하게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성교제에 대한 환상은 있지만 가치판단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초등생 자녀가 혹시나 불미스러운 일에 휩쓸리거나 마음의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걱정되기 마련. 하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섣불리 초등생 자녀에게 ‘이성교제를 하고 있느냐’ ‘스킨십은 어디까지 해봤느냐’는 등 꼬치꼬치 캐물었다가는 자녀가 말문을 닫아버릴 수도 있다.

신 팀장은 “자녀가 이성친구와 스킨십 한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하지 말라고 다그치면 비밀연애를 하는 등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면서 “‘스킨십에 대해서 서로 동의는 했는지’ ‘강제적인 행동은 없었는지’를 자연스럽게 물어본 뒤 자녀가 이성교제와 스킨십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단호히 지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신 기자 ly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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