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초교 앞에 빗물펌프장…” 대치동 시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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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대치초교 맞은편 양재천변에 설치 결정… 학부모들 격렬 반발

“초등학교 바로 앞에 빗물펌프장을 짓겠다니요.”(학부모)

“학교 앞이라도 꼭 필요한 시설을 지어야 합니다.”(서울시)

‘사교육 일번지’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 요즘 시끄럽다. 서울시와 강남구가 대치초등학교 맞은편 양재천변에 빗물펌프장을 짓겠다고 하자 학부모와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 상반기 착공해 내년 여름 무렵에 완공하려고 했던 빗물펌프장 건설은 계속 표류하고 있다.

빗물펌프장 건설은 2011년 7월 수십 년 만의 폭우로 대치역 사거리 인근 상가와 아파트 일부가 물에 잠겨 환경미화원이 익사하고 수백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자 검토되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과거에도 장마철마다 크고 작은 침수 피해를 겪곤 했다. 서울시는 강남구의 요청에 따라 빗물펌프장을 추가로 건설하기로 하고 지난해부터 설계용역에 들어갔다.

시는 올해 4월 대치초교 담장에서 10m 떨어진 양재천변을 최종 후보지로 결정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안전 문제를 들어 반대에 나섰다. 학교 앞 유일한 통학로인 편도 1차로 도로와 정문, 후문 앞에 물길을 내기 위해 땅을 10m 깊이에 200m 길이로 파야 하기 때문. 학교 주변이 1년 반 남짓 공사장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5일 오후 대치초교 정문 앞은 수업을 마친 학생들로 붐볐다. 학생들은 폭 1m 정도의 좁은 인도에서 장난치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학부모회장 이인영 씨(42·여)는 “가뜩이나 통학로가 좁은데 공사까지 하면 아이들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느냐”며 “4월 강북구 송중동에서 초등학생 남매가 8m 깊이의 빗물펌프장에 빠진 사고에서 보듯 위험한 시설물을 왜 초등학교 앞에 설치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치초교 학부모와 주민들도 빗물펌프장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시와 구가 용지 선정을 놓고 그동안 갈팡질팡해 온 점에 더욱 반발하고 있다.

강남구는 지난해 대청중학교 옆 개포5근린공원, 영동6교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 터 등을 유력 후보지로 내세웠고, 개포5근린공원 땅에 짓겠다고 재무공고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4월 서울시 용역 결과에서 갑자기 대치초교가 등장했다. 용역보고서 내용도 논란을 키웠다. 다른 후보지에 대해 ‘주변 주민의 극심한 민원 발생’을 우려한 반면, 대치초교 앞은 ‘학교 앞 설치로 상대적으로 민원 발생이 적음’이라는 내용이 담긴 것. 학부모들은 “타워팰리스 등 다른 후보지 주민들이 반발하자 만만한 초등학교 앞으로 떠넘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진용 시 하천관리과장은 “30년 빈도의 비가 오는 것으로 가정해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대치초교 앞을 제외한 다른 후보지에 펌프장을 설치하면 대치역 사거리에 침수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왔다”며 “공사 중에 통행권 보장과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건설이 지연되면서 대치동 주민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대치역 사거리 주변 아파트 주민과 상인들은 “언제 또 물난리가 날지 모르는데 왜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 않느냐”고 시에 항의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강남구는 일단 입지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강남구 관계자는 “이번 주에 입지 타당성조사 용역을 재발주해 9월 말경 서울시에 건의할 계획”이라며 “강남에서 해마다 발생하는 침수를 막기 위해 주민들의 협조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oot@donga.com
#초등학교#빗물펌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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