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조지형 교수의 역사에세이]어? 지도의 윗부분이 남쪽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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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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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 마우로의 세계지도

이탈리아 가톨릭 수사 프라 마우로의 세계지도(위)와 고대 그리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 프톨레마이오스 지도에선 아프리카 끝과 아시아가 연결돼 있다. 반면 15세기에 만들어진 마우로 지도에서는 대서양과 인도양이 제대로 표현돼 있다.
이탈리아 가톨릭 수사 프라 마우로의 세계지도(위)와 고대 그리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 프톨레마이오스 지도에선 아프리카 끝과 아시아가 연결돼 있다. 반면 15세기에 만들어진 마우로 지도에서는 대서양과 인도양이 제대로 표현돼 있다.
마우로(Mauro)는 이탈리아의 가톨릭 수사(修士)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린 세계지도를 1459년 포르투갈 왕에게 보냈습니다. 마우로는 포르투갈 왕인 알폰소 5세로부터 세계지도를 그려 달라는 주문을 2년 전에 받았습니다. 완성해서 보냈지만 알폰소 5세가 이미 숨진 뒤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마우로의 세계지도는 없어졌습니다. 다행히 이 지도의 사본이 마우로가 살았던 수도원에서 발견돼 지금까지 전해집니다. 프라(수사라는 뜻의 라틴어) 마우로 지도라고 부릅니다. 이상하게 보인다고요? 오늘날의 지도는 북쪽이 위입니다. 프라 마우로 지도에서는 남쪽이 위입니다.

이는 이슬람 지리학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이슬람 지리학자들은 남쪽을 위로 놓고 지도를 그렸습니다. 여기엔 여러 설명이 있어요. 성지인 메카의 위치 때문이라는 설명이 제일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슬람 제국의 주요 도시가 대부분 메카보다 북쪽에 있으니까 남쪽에 있는 메카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남쪽을 위로 설정했다는 거죠.

기독교도인 마우로 수사가 메카에 경의를 표했을까요? 물론 아닐 겁니다. 마우로가 당시 최고 수준인 이슬람의 지식체계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을 수 있습니다. 이 설명보다는 아프리카에 지상낙원이 있다고 마우로가 생각했으니까 남쪽을 위로 놓고 그렸다는 설명이 좀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마우로는 아프리카에 사제왕(司祭王) 요한이 통치하는 왕국이 있고, 여기에 온갖 신기한 물건이 가득한 지상낙원이 있다고 믿었기에 사제왕 요한을 지도에 그려 넣었습니다.

신화나 허황된 이야기만 갖고 마우로가 지도를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믿을 만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많은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특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 학자의 책을 탐독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그리스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이 있습니다. 마우로는 이 책에서 많은 내용을 배웠지만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 지식이 옳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지적을 서슴지 않았죠. 예를 들어 마우로는 나일 강의 근원지를 표시하면서 프톨레마이오스처럼 동일한 문양과 ‘달의 산’이라는 동일한 명칭을 사용했지만, 실제 근원지는 다른 곳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우로는 아시아와 세계를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도 탐독했습니다. 그중에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있습니다. 마우로가 지도를 그리기 약 60년 전에 출판됐지만 베스트셀러로 여전히 인기가 많았던 책입니다. 마우로는 아시아, 특히 중국을 묘사하면서 마르코 폴로의 설명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그의 설명을 그대로 지도에 넣기도 했습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만으로는 인도와 동아시아를 자세히 묘사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같은 시대에 살았던 니콜로 데 콘티(베네치아 출신의 상인)가 기록한 ‘여행기’를 봤습니다. 콘티는 1419년에 베네치아를 떠나 25년간 여행을 하면서, 아랍어를 배웠고 아랍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이슬람 상인이 되어 인도와 동남아시아, 동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베네치아로 돌아와 여행기를 남겼습니다.

마우로는 베네치아의 동북쪽에 있는 무라노 섬의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콘티를 직접 만나 그의 여행담을 매우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1420년경 인도를 출발한 배가 인도양을 건너 아프리카 남단의 섬을 지나 마다가스카르 섬과 모잠비크 해협을 통과한 후 남서 방향으로 40일 동안 3200km를 항해했다가 모잠비크 해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이 항해기록은 놀랍습니다. 왜냐고요?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을 발견한 시기는 1488년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마우로는 인도에서 출발한 배가 아프리카 최남단을 돌아 동쪽에서 서쪽으로 나아간 때가 1420년경이라고 하니, 적어도 68년 전에 아프리카 최남단을 이미 알았다는 뜻이거든요. 마우로는 이를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부터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바로 콘티입니다. 결국,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발견은 전혀 새로운 발견이 아닌 셈이죠. 마우로의 주장을 지지하는 사료가 좀더 발견되어야 하겠지만 말이죠.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 지도를 보세요. 아프리카 최남단이 어떻게 나타나죠? 아프리카 끝이 동쪽으로 길게 뻗어 나와 아시아와 연결됩니다. 그래서 인도양은 대양이 아니라 대륙으로 둘러싸인 바다, 즉 내해(內海)처럼 묘사됩니다. 이런 지리학적 지식으로는 유럽에서 대서양을 거쳐 인도양으로 항해하여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프라 마우로 지도는 어떤가요? 이 지도를 보면 유럽에서 대서양으로 나가 아프리카 최남단을 돌아 인도와 아시아로 항해할 수 있어요. 프톨레마이오스 지도와 프라 마우로 지도는 이렇게 큰 차이가 있답니다.

마우로가 살았던 15세기의 베네치아는 르네상스 덕분에 세계에 대한 지식이 흘러넘친 도시였습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관찰한 이들의 이야기는 기존 지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토대가 됐습니다. 마우로는 자신의 지도에 새로운 세계지식을 담았습니다. 지리학적 오류가 있지만, 이 지도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창이었습니다.

조지형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프라 마우로#세계지도#프톨레마이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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