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못막는 유치원 대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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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첨일 담합에 경쟁률 100대1도

본보 11월 16일자 A12면.
본보 11월 16일자 A12면.
중학교 교사인 A 씨는 자녀의 유치원 추첨을 하루 앞둔 4일, 쉬는 시간마다 유치원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9명을 모집하는 만 4세 반의 지원자는 이날 오후 110명으로 늘었다. 원서 접수 첫날인 1일에만 50명이 넘게 몰렸다. 경쟁률이 12 대 1.

인근 유치원은 약속이나 한 듯 추첨일이 모두 5일이다. 복수지원은 아예 불가능하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대기자로 올린 어린이집 4곳도 좀처럼 순위가 줄지 않았다.

A 씨는 “한 달에 130만 원인 육아 도우미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내년에는 반드시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 보육비 지원을 늘리면 뭐하냐? 유치원에 들어갈 수가 없는데…”라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유치원 선발 방식을 개선한다며 선착순 대신에 추첨제를 의무화했다. 이런 조치가 인구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유치원 입학을 더욱 어렵게 하는 부작용을 불렀다. 추첨제의 부작용이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유치원 입학 대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수급 불균형이다. 내년도 유치원에 들어갈 아동은 135만 명, 수용 가능 인원은 70만 명이다. 더 큰 문제는 지역 격차다. 일부 시도는 학령인구가 적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유치원이 많지만 서울과 경기에는 경쟁률이 수십 대 1인 유치원이 수두룩하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A유치원은 1일 추첨에서 경쟁률이 60 대 1을 기록했다. 5일에 추첨하는 서울의 유명 유치원들은 만 4세, 5세 반을 중심으로 경쟁률이 100 대 1에 육박한다. 이런 곳은 대기자도 많아서 학부모가 다른 대안을 찾기 힘들 정도.

상당수 유치원이 추첨 날짜를 담합하고 추첨 장소에 아이를 동반하게 해서 사실상 복수지원을 가로막아 부모들의 원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유치원 입학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자 일부 시설은 원비를 올리려 한다. 20, 30대 맞벌이 가정이 밀집한 서울 마포구 서초구 양천구의 영어유치원과 놀이학교는 지난해보다 월 평균 10만 원가량 오를 가능성이 높다.

서초구 P영어학교는 월 110만 원인 원비를 내년에는 125만 원으로 인상할 계획이다. 경기 고양시 M영어유치원도 월 80만 원에서 95만 원으로 올릴 예정이다. 사정이 이러니 요즘 부모들 사이에는 ‘일유 안 되면 영유’라는 말이 유행이다. 일반 유치원 추첨에서 탈락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영어유치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한편 교육과학기술부는 4일 “추첨 날짜 담합 의혹을 받는 유치원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 의뢰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유치원 담합#유치원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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