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드림… 진로교육이 미래다]<3>美 LA교육구의 특성화 고교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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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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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버겁던 소녀 ‘마그넷 스쿨’서 꿈을 자석처럼 당기다

카노가파크 고교의 교사 세라 이시다 씨(서 있는 사람)가 수업 도중 학생의 질문에 답을 해주고 있다. 이시다 씨와 이 학교의 인연은 10여 년 전 진로 교육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모교의 교사로서 후배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카노가파크 고교의 교사 세라 이시다 씨(서 있는 사람)가 수업 도중 학생의 질문에 답을 해주고 있다. 이시다 씨와 이 학교의 인연은 10여 년 전 진로 교육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모교의 교사로서 후배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공부를 잘했다.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대인관계가 좋았다. 밝고 착했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도 그런 그녀를 좋아했다. 겉으론 한없이 밝아 보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막연한 불안감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내 꿈은 무엇일까. 친구들은 학기 초 진로상담 시간 때마다 장래희망을 잘도 적었다. 소녀는 쓸 말이 없었다. 공무원, 의사, 학자…. 어느 직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모는 대학을 졸업하면 고향 나라 일본으로 돌아가 영어를 가르치라고 했다.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초조해하던 소녀는….

○ 소녀, 꿈이 생기다


학교에 지역 고교의 진로상담교사가 찾아왔다. 8학년 봄이었다. 학교 설명회를 위해서였다. 미국은 유치원반에서 시작해 12학년까지 있다. 7, 8학년은 한국의 중학교 3학년, 9∼12학년은 고교에 해당한다.

설명회에 참석했던 소녀의 심장이 갑자기 요동쳤다. 상담교사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박혔다. 어느 새 소녀의 머릿속엔 희망이 생겼다. 농업과학 관련 특성화 학교인 카노가파크 고교에 흠뻑 빠졌다.

소녀는 원래 동식물을 사랑했다. 생명과학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학교 건물에서 하는 공부보다 땅을 밟아가며 몸으로 배우는 공부가 좋았다. 카노가파크 고교에서는 그런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이후 소녀는 몇 차례 그 학교를 찾아갔다. 시설을 눈으로 확인하고 지도 교사로부터 수업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중학교의 진로상담 시간도 충분히 활용했다. 결국 카노가파크 고교에 진학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대학에도 같은 계열로 진학해 역시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장을 받았다.

주인공은 일본계 미국인인 세라 이시다 씨. 현재 모교인 카노가파크 고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다. 원래는 연구실에서 농업과학 분야를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러나 모교의 간절한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후배에게 경험과 지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교단생활은 만족스럽다.

이시다 씨는 말했다. “미국에선 초등학교 때부터 본인과 부모가 함께 진로를 고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져요. 진로가 결정되면 고교 때부터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죠.”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요? 나 역시 남들이 선호하는 전공을 선택해 별 생각 없이 대학에 진학했겠죠. 어쩌면 아직까지도 내 적성을 찾지 못해 허우적대고 있었겠죠.”

○ 학생들 꿈 어루만져주는 마그넷 스쿨

로스앤젤레스통합교육구(LAUSD) 내에 위치한 카노가파크 고교는 3개의 작은 학교로 구성돼 있다. 이 중 하나가 농업과학 분야를 특성화한 마그넷스쿨이다. 다른 하나는 국제무역·경영 분야를 특성화한 마그넷스쿨, 또 하나는 지역 학생을 선발하는 일반 고교다.

마그넷스쿨은 외국어 수학 과학 예술 컴퓨터 등의 분야를 특성화한 공립학교다. 학생을 자석(마그넷)처럼 끌어당긴다는 뜻을 학교 이름에 담았다. LAUSD 내 학교들의 학생 구성이 인종별로 편중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77년 도입했다. 학군보다는 학생의 재능을 우선시하면 학교 간 격차도 줄어들 거란 판단에서였다.

이 판단은 주효했다. LA 내 마그넷스쿨에 접수되는 신청서는 매년 7만 건. 경쟁률은 보통 3 대 1을 넘긴다. 마그넷스쿨은 미국 진로 교육의 시발점이자 대표 교육 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

카노가파크 고교 농업과학 관련 프로그램을 살펴봤다. 학생들은 한 학기에 최소 8개의 관련 과목을 수강한다. 정부부처나 농장을 방문하는 일정도 한 달에 두 번 이상 잡혀 있다. 전문가가 강연하는 횟수도 매 학기 3회를 넘어선다. 정원(180명)의 절반 이상은 대학과 기업에서 인턴 실습을 하는 기회를 갖는다.

교내에는 6070m²에 이르는 야외 실험실이 있다. 실험실 내 2개의 온실 안에선 토마토, 해바라기 등 수십 가지 작물을 기른다. 유기농 작물만을 재배하는 정원, 관개 시설도 있다. 또 말 양 염소 돼지 닭 토끼 등 10여 종의 동물을 기르고 있다.

학교 프로그램 관리자인 브라이언 요크 씨는 “200만 달러(약 22억 원) 이상을 야외 실험실에 투입했지만 학생들이 얻는 ‘살아있는 지식’에 비하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학생 제임스 군(17)은 “교과서로만 배우던 내용을 직접 관찰하고 만져보면 머리에 콱 박힌다. 전공에 대한 확신도 선다”고 했다.

마그넷스쿨의 성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는 지난해 7월 미국 전체 공립고 500개에 대한 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10개 고교를 특별히 지목했다. 저소득층 학생 비율이 높음에도 발군의 교육성과를 낸 ‘기적의 학교’. 이 중에서 4곳이 마그넷스쿨 같은 유형의 학교였다. 캘리포니아교육청 관계자는 “마그넷스쿨은 과학자 경찰 패션디자이너 등 학생들이 지닌 꿈을 일찌감치 어루만져주는 무대이자 산실”이라고 했다.

○ ‘패스웨이’에서 길을 묻다

LA 인근의 글렌윌슨 고교. 생명공학 수업 시간에 교사와 학생이 문답을 주고받았다.

“동물 세포는 식물 세포와 어떻게 다르죠?” “동물 세포엔 세포벽이 없어요.” “그럼 세포벽은 어떤 역할을 하는 거지?”

‘스무 고개’ 같았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사이에 원석처럼 거칠었던 답변은 보석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시청각 교재와 각종 기재도 활용했다. 명칭만 대충 언급하고 지나치는 법은 없었다. 학생들은 직접 보고 만지면서 원리를 눈과 손으로 이해했다.

교사인 지나샤 우데시 씨는 “우리 학교의 생명공학 수업 커리큘럼이나 실험 기재는 대학 교수도 감탄사를 내뱉을 만한 수준”이라고 자랑했다.

글렌윌슨 고교는 특성화고가 아닌 일반 고교다. 그럼에도 ‘예술과 미디어’, ‘생명공학’ 분야에선 특성화고 못지않은 인력과 시설, 프로그램을 뽐낸다. 비결은 패스웨이(pathway)로 불리는 프로그램에 있다.

이 프로그램은 크게 △에너지 및 시설 공학 △건강 과학 및 의료 기술 △마케팅, 판매, 서비스업 등 16가지로 나뉜다. 일반 고교에서는 이 가운데 학생·학부모의 선호, 지역적인 특성, 재정적인 능력을 고려해 2∼5개를 선택한다.

패스웨이를 선택하면 정부가 지원한다. 학교는 난이도를 조절해 관련 과목을 집중 배치한다. 지역사회, 기업체와 연계해 현장 체험 기회도 제공한다. 학생은 학교가 운영하는 다양한 패스웨이 프로그램을 고려해 지원한다.

카노가파크 내 일반 고교는 ‘의료서비스’ 분야를 패스웨이 프로그램으로 운영 중이다. 하루는 이 학교 학생 로라 양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발작으로 쓰러졌다. 로라 양은 수업 시간에 배운 응급 서비스 기술을 이용해 응급조치를 취했다. 평소 마네킹을 두고 충분히 실습했던 터라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살린 로라 양은 인생을 의료서비스 분야에 걸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인근 병원에서 인턴도 했다. 로라 양은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패스웨이 프로그램이 어머니는 물론이고 내 인생까지 바꿨어요.”

로스앤젤레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LA교육구#특성화 고교교육#마그넷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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