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철인 꿈꾸는 19세… “민호형 꼭 올림픽 메달 따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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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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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못 보는 박성수씨 9월 통영 트라이애슬론 도전

시각장애인 철인을 꿈꾸는 박성수 씨(오른쪽)와 트라이애슬론 지도자 박병훈 코치가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변에서 호흡을 맞추며 2인용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다. 이 사진은 한국사진기자협회의 제114회 이달의 보도사진상 포트레이트 부문 최우수상으로 선정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시각장애인 철인을 꿈꾸는 박성수 씨(오른쪽)와 트라이애슬론 지도자 박병훈 코치가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변에서 호흡을 맞추며 2인용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다. 이 사진은 한국사진기자협회의 제114회 이달의 보도사진상 포트레이트 부문 최우수상으로 선정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머리 안에 종양이 있습니다.”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결혼 후 6년 동안 세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아기였다. 엄마 배 속에서 심장이 뛰기 시작한 지 고작 8개월밖에 안 됐는데…. 국내 최연소 시각장애인 철인을 꿈꾸는 박성수 씨(19)와 어머니 최영임 씨(51)의 치열한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세상에 나온 박 씨의 머리는 평균보다 1.5배는 컸다. 종양이 혈관과 신경을 눌러 신체 기능이 떨어졌다. 링거주사를 달고 살았다. 심장 기능도 떨어졌다. 생후 6개월 만에 심장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얼마 살지 못할 텐데 1000만 원이 넘는 심장수술을 하겠냐”고 물었다. 엄마는 울었다.

심장수술, 무릎 인대 재건술, 골반 수술까지…. 아들은 취학 전까지 수차례 대수술을 받았다. 매년 12월 31일 엄마는 같은 기도를 올렸다. “성수가 올해를 다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까지만 살게 해주세요.”

최 씨의 노력에도 아들의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종양이 시신경을 눌러 시야의 범위가 60도까지 좁아졌다. 의사는 “곧 시력을 잃을 것이다”고 했다.

엄마는 그전에 하나라도 더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촉각을 키우기 위해 피아노부터 가르쳤다. 하지만 손 떨림이 점점 심해졌다. 건반을 ‘꾹’ 누를 수 없어 소리의 웅장함이 떨어졌다. 아들은 중학교 3학년 때 시각장애 1급, 뇌병변장애 5급 판정을 받았고 피아노 교사의 꿈도 멀어졌다.

이 무렵 다른 희망이 생겼다. 재활 목적으로 해 온 수영에 재능을 보였다. 2008년 지인의 권유로 참가한 인천지역의 한 장애인청소년수영대회에서 자유형 50m, 100m 우승을 차지했다. 엄마는 처음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아들은 2009년 장애인수영 국가대표로 뽑혔다. 그해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국제시각장애인스포츠연맹 주최 유소년선수권 접영 50m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또다시 먹구름이 드리웠다. 지난해 국제장애인수영연맹이 아들의 뇌병변장애 등급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세한 국내외 기준 차이와 복잡한 서류 절차 때문이었다. 장애인 올림픽인 패럴림픽 출전의 꿈도 날아갔다.

엄마는 체육인을 찾아다니며 아들의 진로를 의논했다. 국내 트라이애슬론 아이언맨코스(수영 3.8km-사이클 180.2km-마라톤 42.195km) 1인자 출신으로 철인3종 아카데미를 열고 있는 박병훈 코치(41)를 만난 건 지난해 5월이었다. 그런데 박 코치는 뜻밖에 사이클 선수로의 전향을 권유했다. 불편한 손으로 수영에 매달리기보다는 그동안 길러진 심폐기능을 이용해 자전거를 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엄마는 인천 집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의 사이클 클럽을 지하철로 함께 다녔다.

앞좌석에는 코치가, 뒤에는 장애인이 앉는 2인 사이클을 탔다. 아들은 틀어진 골반 탓에 앉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전방 10cm 정도의 형체를 식별할 정도의 시력을 지녔지만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눈을 감고 있어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박 코치의 세심한 조련 속에 아들은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박 코치는 올해 초 조심스럽게 트라이애슬론 올림픽코스(수영 1.5km-사이클 40km-마라톤 10km) 도전을 권유했다. 달리기만 보강하면 아들에게도 가능한 목표라고.

엄마는 망설이지 않았다. 손수건으로 아들의 손을 묶고 인천대공원을 달렸다. 처음엔 3km를 달리는 것도 버거워하던 아들은 10km를 56분에 주파할 정도로 실력이 좋아졌다. 최근엔 주 2회씩 약 13km를 뛴다. 아들은 9월 경남 통영 트라이애슬론대회에서 국내 최연소 시각장애인 올림픽코스 완주에 도전한다.

아들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로 트라이애슬론에 출전하는 허민호(22·서울시청)의 열성 팬이다. “스포츠를 통해서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민호 형은 제 희망입니다. 형, 런던 다녀온 뒤 제 통영 경기 때 오실 거지요?”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박성수#장애인 올림픽#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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