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에서 ‘시민’으로 돌아간 오세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6일 11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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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변호사→정치인→행정가로 화려한 변신주민투표 무산은 사실상 정치인생 첫 실패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7월1일 민선 5기 시장 임기를 시작한 지 1년 2개월여 만에 '시장'에서 '시민'으로 돌아간다. 민선 4기를 포함하면 5년 2개월여 만이다.

스타 변호사 출신 방송인에서 정치인으로, 정치인에서 행정가로 화려하게 변신하며 승승장구해온 오 시장으로선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패배하고 시장직을 도중하차함으로써 사실상 정치인생의 '첫 실패'를 맛본 셈이다.

오 시장은 83년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26회)에 합격한 뒤 91년 대기업과의 아파트 일조권 소송을 맡아 승소하며 세인의 관심을 받았다.

이후 '오변호사, 배변호사', '그것이 알고 싶다' 등 각종 TV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훤칠한 외모와 뛰어난 언변으로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

그는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 정치권에 입문한 뒤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 소장그룹인 미래연대를 이끌며 '40대 개혁기수'로 활약했다. 초선 의원으로서 정치개혁특위 간사를 맡아 이른바 '오세훈 선거법'으로 불리는 3개 정치관계법 개정도 주도했다.

2003년 9월 당 연찬회를 전후해서는 '당내 인적 쇄신 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자신은 정작 2004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참신한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대중에 각인시켰다.

총선 불출마 선언은 오 시장 정치인생의 '첫 번째 승부수'로 평가된다. 이를 계기로 그는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이끄는 행정가로 변신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취임과 함께 또 다른 도전에 나서 한강르네상스,시프트(장기전세주택), 광화문광장, 디자인 서울 등 각종 역점사업을 강단 있게 추진했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 시장은 2010년 6월 재선에 성공하면서 유력한 여권의 대권 잠룡 중 하나로 부상하는 등 상승가도를 이어갔다.

하지만 재선으로 정치적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를 막아선 것은 민주당이 4분의 3을 차지한 시의회였다.

오 시장의 정치인생에서 첫 실패로 평가받는 주민투표의 시발점인 무상급식을 둘러싼 시의회와의 본격적인 마찰은 지난해 12월1일 시작됐다. 당시 시의회 민주당이 친환경무상급식 조례안을 의결하자 오 시장이 시정협의를 중단하고 의회 불출석을 통보하면서부터 갈등이 본격화됐다.

오 시장이 이끄는 서울시는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절차인 조례 무효확인소송을 대법원에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지난 1월31일 주민투표 설명회를 열며 지난한 싸움을 예고했다. 이후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가 2월9일부터 서명을 받아 6월16일 81만명의 이름으로 주민투표를 청구했고, 시는 검증을 거쳐 8월1일 주민투표를 발의했다.

오 시장은 주민투표에서 승리하기 위해 지난 12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21일엔 주민투표에서 실패하면 시장직을 물러나겠다고 천명하는 등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그의 이 같은 '승부수'에도 불구하고 24일 치러진 주민투표의 투표율이 개표요건인 33.3%에 못 미치는 25.7%에 그치면서 사퇴가 기정사실화됐다.

오 시장은 온화하고 세련된 외모와 달리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 덕분에 '오고집'이라고도 불린다.

그가 당장 주민투표 때문에 시장에서 물러나고 정치적 위상도 추락하게 됐지만 주민투표를 계기로 굳힌 보수 아이콘 이미지를 발판삼아 오뚝이처럼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디지털뉴스팀

▲동영상=오세훈 시장 시장직 사퇴 기자회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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