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세계약 중도해지때 ‘10% 위약금’ 무효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21일 03시 00분


법원, 계약금 전액 반환 판결
“임차인에 일방적으로 불리”… 매매계약 원용 관행에 제동

전셋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계약을 했다가 중도에 해지했을 때 전세보증금의 10%를 위약금으로 내야 한다고 적은 계약서 약관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임대나 매매 계약에서 임차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규정에 대해 법원이 직접 제동을 건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5부(부장판사 한영환)는 승모 씨(57)가 임대주택 분양업체 H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계약금 반환 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이에 따라 H사는 승 씨에게 계약금 전부를 되돌려 줘야 한다.

재판부는 이번 계약이 임대주택을 사고파는 ‘매매’가 아니라 빌리는 ‘임대차’인데도 이를 매매계약 관행처럼 총 보증금의 10%를 위약금으로 규정한 약관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매매 계약은 총 대금의 10%를 계약금으로 내고 계약 해지 사유가 발생했을 때 이 금액을 위약금으로 삼는 것이 관행이지만 이 규정을 임대차 계약에도 원용해 약관으로 정한 것은 위법이라는 것이다.

또 재판부는 “임대차 계약에서 임대인이 얻는 이익은 보증금 자체가 아니라 보증금에서 나오는 이자”라며 “20억여 원에 이르는 임대차 보증금이 상당한 고액인 데다 그 10%에 해당하는 2억여 원을 위약금으로 정한 약관은 임차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만든 표준 임대차계약서에 적힌 위약금 규정으로 이번 사건의 위약금을 계산하면 약 5580만 원이다.

승 씨는 2009년 3월 H사와 보증금 20억여 원을 내고 임대주택을 5년간 빌리기로 계약했다. 1차 계약금으로 2억여 원을 지급했으나 중도금과 잔금을 지급하지 못해 계약이 해지됐다. H사가 계약 당시 작성한 약관에 따라 계약금 2억여 원을 돌려주지 않자 승 씨가 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은 H사가 미리 만들어 둔 계약서상 위약금 규정이 적힌 특약 조항을 ‘약관’으로 판단한 뒤 약관규제법에 따라 무효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 일반 임대주택이나 오피스텔 등의 임대 계약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사용하기 위해 마련해 둔 계약서 조항을 약관으로 인정한 다음 그 약관에 문제가 있었을 경우 다퉈 볼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만들어 둔 표준 계약서 양식을 사용하지 않고 따로 마련해 둔 계약서로 인해 분쟁이 일어났다면 세입자에게 승산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판결이다. 법원 관계자는 “계약을 할 때 임차인은 대부분 제시된 계약서에 수동적으로 ‘서명만’ 하는 것이 관행”이라며 “계약서상 문제로 임대차 관련 분쟁이 일어났다면 이번 판결 취지에 따라 다퉈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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