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름알데히드 마녀사냥 우유의 억울한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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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5일 15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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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알려진 정보에 매일유업 휘청…정부 ‘사후약방문’ 일처리에 피해 키워

“모든 제품에서 극미량(0.002~ 0.026ppm)이 검출됐습니다. 우유에 자연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함량 이내로 매우 안전한 수준으로 평가됐습니다.”

5월 4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현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이 매일유업 등 4개 우유업체의 우유제품 9종(45개 시료)을 대상으로 우유의 포름알데히드 함량을 검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발표에 따르면, 45개 시료 모두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자연생성 범위인 0.013~0.057ppm 이내로 나타났다. 이로써 4월 28일 “포름알데히드가 첨가된 사료를 사용한 우유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로 촉발된 ‘포름알데히드 우유 파동’은 일단락됐다.

영유아 우유시장 과열 경쟁


‘포름알데히드 우유 파동’의 단초는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10월 27일 남양유업 중앙연구소 한 직원은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 홈페이지에 “포름알데히드를 사료 첨가제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질의를 올렸다. 포름알데히드는 메탄올을 산화시켜 얻는 기체이며, 이것을 40% 수용액으로 만든 것이 바로 살균제, 살충제 등에 쓰는 포르말린이다.

남양유업이 갑작스레 포름알데히드를 문제 삼고 나서자 업계에선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닷새 후 농식품부는 “포름알데히드가 위해사료 범위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포름알데히드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강한 만큼 해당 사료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남양유업은 “매일유업이 새로 출시한 앱솔루트W는 포름알데히드가 포함된 혼합 사료를 먹인 젖소에서 생산한 원유로 만들어졌다”며 매일유업을 전 방위적으로 압박했다.

문제의 사료는 호주의 내추럴사 제품으로, 이 회사는 자사 사료를 이용하면 우유에 포함된 DHA 함유량을 우유 100mℓ당 16mg까지 늘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영유아 우유시장에서 선두를 다투던 서울우유의 앙팡(0.5 mg)이나 남양유업(2.5mg)에 비해 최소 6배 이상 많은 수치였다. 등 푸른 생선에 많이 들었다는 DHA는 머리를 좋게 하고 동맥경화나 치매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유아 우유시장에선 DHA 함유량을 늘리기 위해 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매일유업은 2010년 9월 30일 내추럴사와 사료 수입계약을 맺고, 10월 19일 앱솔루트W라는 새로운 영유아 대상 우유를 내놓았다.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시장점유율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하루에 1만여 통씩 판매량이 늘면서 호조를 보였다. 남양유업의 문제제기에 대해선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극미량의 포름알데히드만 검출돼 안전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특히 내추럴사의 사료는 호주 연구기관이 특허를 가지고 있으며, 200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안전성을 정식으로 인정받았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논란이 계속되자 농식품부는 3월 15일 “포름알데히드가 ‘사료공정서’에서 사용 가능한 동물용 의약품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어 사료 사용 중단을 권고했고, 매일유업은 내추럴사의 사료 사용을 중단했다. 이후 매일유업은 사료 수입지를 호주에서 노르웨이로 바꾸고, 4월 29일 바꾼 사료를 사용해 신제품을 출시하도록 새롭게 일정을 잡았다.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던 사건은 4월 28일 관련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증폭됐다. 2008년 광우병 파동에서 보듯 국민은 무엇보다 먹을거리에 민감하다. 안전성 여부를 떠나 수입 사료에 포름알데히드를 첨가했다는 사실만이 자극적으로 보도되면서 매일유업은 ‘공공의 적’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1989년 삼양라면 공업용 쇠기름 사건, 1998년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 2004년 쓰레기 만두사건 때와 똑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묻지마 보도로 기업 이미지 추락

포름알데히드로 곤욕을 치른 매일유업의 앱솔루트W.
포름알데히드로 곤욕을 치른 매일유업의 앱솔루트W.
연일 언론에 ‘포름알데히드 우유’가 오르내리자 소비자는 ‘묻지마 식’으로 매일유업 제품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주부 김미정(28) 씨는 “안전성에 문제 없다고 해도 포르말린 사료를 먹여 생산한 우유를 마시기가 꺼림칙하다”고 말했다. 신제품 출시는 뒤로 미뤄졌고, 대기 기간이 길어지면서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앱솔루트W 개발비에 마케팅 비용을 합하면 자그마치 50억 원에 이른다”고 털어났다.

비단 이 제품만 아니라, 우유 판매가 전체적으로 타격을 받아 총 매출액이 7% 이상 감소했다. 더 큰 문제는 기업 이미지 추락이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공식적인 포름알데히드 함량 조사 결과를 발표했음에도 한번 실추한 이미지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명확한 근거가 없음에도 한순간에 포름알데히드 우유를 만든 불법회사라는 낙인이 찍혔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국민의 불안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업체 간 반목도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포름알데히드로 한바탕 곤욕을 치른 매일유업은 처음 농식품부에 문제를 제기한 남양유업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내추럴사 사료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지 한 달 반이나 지난 시점에, 그것도 당사 신제품이 출시되기 직전에 관련 사실을 왜곡한 보도가 나온 것은 이를 통해 이득을 보려는 경쟁사의 의도가 있었음이 분명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남양유업은 “우리도 피해자”라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우유업계 특성상 이런 파동이 일어나면 전체 우유 소비량이 감소해 자신들도 피해를 본다는 것. 남양유업 관계자는 “매일유업에서 올해 초 포도상구균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때 생산직 임원들이 그만두게 됐다. 이에 앙심을 품은 한 임원이 국세청 같은 곳에 제보한 것으로 아는데, 모든 책임을 우리에게 돌린다”고 반박했다.

파장의 여진이 계속되자 처음 포름알데히드 성분이 문제가 됐을 때 농식품부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면, 몇 달 뒤 왜곡된 사실이 부풀려지면서 기업이 피해를 보거나 소비자가 불안에 떠는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농식품부는 매일유업이 포름알데히드가 첨가된 혼합 사료를 수입해 젖소에 먹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지난해 11월 2일과 12월 27일 두 차례에 걸쳐 사용 중단을 권고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해명했다. 오히려 매일유업이 권고를 따르지 않아 훗날 문제가 커졌다며 책임을 매일유업에 돌렸다.

그러나 매일유업의 설명은 달랐다. 농식품부의 지침을 준수했다는 것. 매일유업 관계자는 “우리가 먼저 사료에 포름알데히드가 사용됐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2010년 11월 2일 농식품부 담당자를 방문해 문의했다”고 반박했다. 또한 당시 “농식품부가 사용 중단 권고를 한 게 아니라 제품 안전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2010년 12월 27일 ‘사료공정서’ 등록이 되거나 우유로 전이되지 않는다는 안전성이 입증될 때까지 판매를 중단하라는 최초 권고를 받고 즉시 국립축산과학원과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관계자들과 협의를 시작했다. 이후 농식품부는 여러 차례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며 당사는 성실히 이에 응했다.”

사용 중단 권고 앞서 조사가 먼저

3월 15일 농식품부와 관계기관이 다시 한 번 사용 중단을 권고하자 매일유업은 사료 사용을 중단했다. 주무관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업체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매일유업이 정부 권고를 받아들임으로써 마치 매일유업의 제품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치게 됐다.

과연 농식품부가 매일유업에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사실상 강제성을 띤 권고를 한 것이 최선책이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처음 사료 성분이 문제가 되자 농식품부는 ‘국민 건강에 대한 우려’를 들어 매일유업에 사료 사용 중단 권고를 했다. 당시 사료관리법상 고시인 ‘유해사료의 범위와 기준’을 보면 포름알데히드는 사료에 사용을 제한하는 물질에 포함되지 않았다. 식품업계에선 “법적 근거가 없는 권고를 하기에 앞서 해당 제품이 과학적 또는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 먼저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5월 4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조사 발표로 매일유업의 제품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미 해당 업체는 막대한 피해를 본 뒤였다.

백번 양보해 어쩔 수 없이 급한 대로 권고했다 해도 추후에 포름알데히드에 대한 기준을 마련했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4월 28일 언론에 관련 사실이 보도되고 전 국민적 관심 사항이 될 때까지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 일이 터지고 난 뒤에야 사후약방문 식으로 6월 13일 ‘사료공정서’ 고시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처음 문제가 제기된 지 8개월 만이다. 농식품부 축산경영과 관계자는 “식품에 함유된 포름알데히드에 대해선 연구용역이 이뤄지고 있었으나 사료에 대해선 특별한 연구가 없었다. 기준을 마련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마련한 규정이지만 이것마저 정부와 업체 간 시각이 극명히 엇갈린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료에 포르말린(포름알데히드) 혼합은 금지되며 다만, ‘동물용 의약품 등 취급규칙’과 ‘가축전염병예방법’에 근거해 사용이 허용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농식품부 축산경영과 관계자는 “안전한 축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과 요구를 반영해 사료 내 포르말린(포름알데히드) 사용규정을 설정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소 사료에 함유된 포름알데히드는 사료 첨가제로 간주해 ‘동물용 의약품 등 취급규칙’에 따라 엄격하게 안정성 및 유효성 검증을 한다는 것.

식품업계는 아침마다 조마조마

반면 업체들은 “앞으로 내추럴사에서 만든 사료 같은 것은 국내에서 사용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농식품부에서는 소 사료에 함유된 포름알데히드도 단서 조항을 통해 검증을 통과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소 사료에 함유된 포름알데히드의 용도와 ‘동물용 의약품 등 취급규칙’에서 규정한 용도 목적은 상이하기 때문에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식품업계 종사자들은 이번 ‘포름알데히드 우유 파동’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저녁에 방송뉴스를 보거나 아침에 신문을 펼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다고 한다. 혹시나 자신의 회사와 관련한 기사에서 ‘A사 제품에서 이물질 발견’ 같은 내용이 보도될까 봐서다.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관련 사실이 자극적으로 전파되기 때문이다.

진위 여부를 판단해줄 심판자로서 정부 구실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묻지마 식품파동으로 국민이 불안에 떨고 기업이 피해를 보기 전에 정부가 과학적 조사를 바탕으로 사실을 알려야 제2, 제3의 포름알데히드 우유 파동을 막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주간동아 7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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