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신부, 남편 흉기에 또 참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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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서 출산 19일만에… 남편 “이혼 요구해 홧김 범행”“지난해 7월 이어 또…” 베트남 한국대사관 대책 부심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베트남 이주여성의 참극이 잇따르고 있다. 24일 경북 청도군에서 부부 불화로 인해 베트남 출신 여성이 남편에게 살해당했는가 하면 지난해 7월엔 베트남 출신 여성이 결혼 일주일 만에 정신 병력이 있던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기도 했다.

경북 청도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 10분경 청도군 청도읍 월곡리의 한 원룸주택에서 임모 씨(37·회사원)가 베트남에서 시집 온 아내 H 씨(23)를 부엌칼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했다. 임 씨는 범행 뒤 밖으로 뛰쳐나와 불이 켜진 이웃집 문을 발로 차며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외쳤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원룸 주변에서 배회하던 임 씨를 체포했다. 당시 임 씨는 팬티만 입은 채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임 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내가 자꾸 ‘이혼해’라는 말만 반복해서 홧김에 살해했다”고 말했다.

약 33m²(10평)의 원룸주택 현장에는 아내 H 씨가 난자된 상태로 피를 흘리며 숨져 있었다. 그 옆에는 생후 19일된 아기가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남편의 차림새나 이웃에 자신의 범행을 알린 점으로 미뤄 살해 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수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시신을 부검하는 한편 임 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 조사 결과 임 씨는 2010년 4월 국제결혼정보업체 소개를 받고 베트남으로 건너가 H 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임 씨는 아내와 같이 귀국하지 못했다. 최근 들어 위장결혼 등 국제결혼과 관련된 부작용이 늘어나면서 정부가 한국으로 오는 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비자발급 심사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H 씨는 4개월간 관련 서류를 보완하고 나서야 비자를 받고 8월에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입국한 H 씨는 남편과 재회했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H 씨는 늘 고국으로 돈을 보내야 한다고 남편에게 성화를 부렸다. 회사원이었던 남편의 월급은 150여만 원 수준. 임 씨가 매달 10만 원 외에는 보낼 수 없다고 버티면서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

시부모와 동거하는 문제도 걸림돌이었다. 평소 ‘잘 씻어야 한다’며 잔소리하는 시어머니(57)와 매번 부딪쳤던 H 씨는 임 씨에게 ‘분가’를 종용했다. 장남이었던 임 씨가 이를 무시하자 H 씨는 결국 지난해 11월 경북 구미시에 있는 이주여성인권센터로 가출한 뒤 이혼을 요구했다. 이때 임신한 사실을 안 임 씨가 시부모와 따로 살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아내를 데려왔지만 불화는 끊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아내는 남편이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오는 일을 ‘바람이 났다’며 용납하지 않았다. 구미시 이주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국제결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제적 문제와 문화적 차이가 불러온 참극”이라며 “H 씨는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해 부부가 서로 소통하지 못한 점도 한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2008년 2월 6일에는 경북 경산시 상방동의 한 아파트 14층 집에서 베트남 주부 L 씨(22)가 남편과 시어머니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투신해 숨졌다. 또 지난해 7월 8일에는 부산 사하구에서 베트남 이주여성 탓티황옥 씨(20)가 자신의 집에서 결혼 일주일 만에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하찬호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는 이날 또다시 베트남 이주여성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 여성가족부 및 문화체육관광부 파견 주재관들에게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도록 하는 한편 이번 사건이 몰고 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청도=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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