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 강국이 선진국이다]<5·끝>재난 극복은 모두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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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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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형 재해’ 예측 어렵고 피해 커… 국가-국민 365일 공조를

이상기후 현상이 지속되면서 각종 자연재해와 재난은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거대한 피해를 불러오고 있다. 봄에는 가뭄과 황사, 이상 저온이나 고온 현상이 발생한다. 여름에는 태풍과 집중호우가 쉴 새 없이 몰아닥친다. 태풍은 가을까지 이어지고 겨울이 되면 한파나 폭설이 온 나라를 뒤덮는다.

이제 자연재해는 특정 시기에 한 번 지나가는 ‘연례행사’가 아니라 일년 내내 발생하는 ‘만성 질환’으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갈수록 예측이 어렵고 피해 규모는 대형화한다는 악조건까지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상시적 대형 재난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국가 방재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점검할 시기라고 말한다.

○ 예측 어렵고 피해 키우는 최신 재난에 대응해야

동일본 대지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지진해일은 달리는 자동차보다 빠르게 내륙을 집어삼킨다. 지진해일이 관측되면 경보를 발령해도 제때 대피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일본 서쪽 해상의 활성단층 지역에서 강진이 발생하면 한반도 동해안에는 1시간 반 후 지진해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제때 경보가 울리면 대피하기에 충분하지만 동해안 지역에 경보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사각지대는 94개 지점에 이른다. 또 대피훈련을 무슨 장난으로 생각하고 아랑곳하지 않는 일부 시민의 태도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적도 부근에서 발생하다가 최근에는 대만 해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태풍은 빠르게 한반도로 상륙해 예상치 못한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일주일 정도 걸리던 대비 시간이 이제는 2, 3일로 줄어든 것. 그만큼 진로를 정확히 파악하고 태풍 상륙에 따른 각종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비책이 상시적으로 마련돼 있어야 한다. 매년 피해 발생 후 복구에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는 반면에 이를 미리 막는 사전 방재비용은 복구비용보다 크게 적은 것도 개선해야 할 대목으로 꼽힌다.

통유리로 멋진 외관을 갖춘 50층 이상 고층 건물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그에 맞는 화재 진압 설비는 아직 갖춰지지 못하고 있다. 현재 소방방재청이 보유한 가장 긴 고가사다리차는 겨우 15∼17층까지 닿는 52m짜리다. 앞으로 도입할 고가사다리차 역시 70m에 불과하다. 두꺼운 통유리라 화재 진압을 위해 물을 뿌려도 실내에 닿지 못한다. 소방차가 아무리 사이렌을 울려도 비켜주지 않는 시민의식 수준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이 같은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재난전조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각종 재난이 발생하기 전 일상적인 조짐이 쌓이고, 몇 차례 결정적인 작은 사고가 발생하는 현상에 주목한 시스템이다. 주민들의 신고나 언론 보도, 전문가들의 현장 조사 등을 통해 각종 현상들이 어떤 재난을 어느 정도로 일으킬지 예측하는 프로그램이다. 상당 기간 자료가 축적되면 예측하기 힘든 최근의 재해, 재난 양상에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연수 소방방재청장은 “최근의 자연재해와 재난 특성에 맞춰 전조 현상을 감지한 뒤 곧바로 필요한 대응책을 실시하는 선진국형 재난 대응 시스템이 될 것”이라며 “이제 시작단계지만 전문 인력을 대폭 확충해 빠른 시일 내에 각종 재난의 ‘만능 백신’이 되도록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방재는 정부와 국민이 함께할 때 효과


최근에도 자연재해나 인적 재난이 발생하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앞세우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기상청과 소방방재청 등 예보 및 재난 대응 정부 기관이 일차적 책임을 지고 이를 막아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하지만 국민 역시 스스로 재난 대응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서병하 한국방재협회 회장은 “모든 재해와 재난을 국가가 완벽히 막을 수는 없다”며 “피해 최소화를 위해 국민들도 자기 방어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 방재 선진국선 어떻게 ▼
재난 예방부터 복구까지 전담기구가 총괄 지휘


전문가들은 한국이 모델로 삼아야 할 방재 선진국으로 미국과 일본을 주로 꼽고 있다. 미국 방재관리 시스템은 국토안전보장부 안에 설치된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주관하고 있다. 재난 예방 및 복구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다른 부처를 지휘할 권한을 갖고 있다. 실제 재난이 발생하면 시민 대피와 의료, 기반시설 복구 등의 계획을 수립하고 실제 집행하게 된다. 한국에서 여러 부처가 제각각 재난 복구 계획을 추진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은 국토를 10개 광역권으로 묶어 재난을 관리하는 지방재난관리청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 소방방재청이 광역지방자치단체마다 ‘소방본부’를 설치해 놓았을 뿐 재난 발생과 복구를 전담하는 기구는 없다.

미국은 재해와 관련된 자료를 축적하는 점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 연방위기관리정보시스템(NEMIS)은 FEMA를 지원하는 조직으로 각종 재난 정보를 수집해 보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미국 기후뿐 아니라 범지구적 기후 정보를 분석한다.

해양국, 환경위성 데이터 정보국, 해양대기연구소, 위기관리센터 등은 재난 발생 시 축적된 연구자료와 정확한 재난 상황을 FEMA에 제공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 기관은 위성을 통한 전용 통신 시스템을 갖춰 어떤 경우에도 상황 파악과 정보 전달이 가능하다.

일본도 방재 계획 수립과 재난 복구를 총괄하는 중앙방재회의가 총리 직속기구로 편성돼 있다. 일본 방재의 강점은 기상청이 기상특보와 지진이나 지진해일 등의 정보를 재해 관련 정부 기구에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지구 기상통신망이나 국내 기상통신망 등을 통해 취합된 정보는 기상자료종합처리시스템으로 모인다. 이 시스템은 기상 상황의 전개 양상과 피해 범위를 예측할 수 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외형적으로는 미국이나 일본과 비슷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연구 인력이나 연구개발 비용 등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며 “방재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재난 예측, 대비, 복구를 총괄하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 국립방재硏 심재현 실장 “연구인력-예산 턱없이 모자라… ” ▼
방재에 무관심한 국민도 문제


심재현 소방방재청 산하 국립방재연구소 방재연구실장(사진)은 15일 “국립방재연구소가 지진이나 지진해일(쓰나미) 등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인적 재난까지 총괄하고 있지만 연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국립방재연구소에는 쓰나미를 연구하는 박사급 인력은 단 1명이고 비정규직까지 다 합쳐도 지진 연구 인력이 5명에 불과하다는 것.

―국내 방재 분야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연구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미국 등 방재 선진국은 연구층이 두꺼워 특정 분야 연구 자료가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되고 있지만 우리는 인력 자체가 없어 축적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별도의 자료 수집 기관도 없다.”

―방재와 안전 분야의 연구는 어떤가.

“국가연구사업비는 총 16조 원을 넘지만 그중 방재와 안전 분야는 0.6% 수준에 불과하다. 선진국은 통상 국가연구사업비의 5% 정도를 방재 안전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단기간에 올릴 수는 없겠지만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에는 문제가 없는가.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정부는 제도를 정비하고 재난에 대응하는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실제 재난 대응 업무는 지자체가 수행해야 한다. 이런 업무 분담이 체계화되어 있어야 재난 발생 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국민의식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아무리 방재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하더라도 소방차나 구조인력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이 시간에 국민 스스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을 강화하고 방재 장비 이용법을 숙지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능력을 자조(自助) 능력이라고 부른다. 스스로 안전을 지킨다는 뜻이다. 정부의 재난 대응 능력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자조 능력이 커져야 방재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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