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 강국이 선진국이다]<4>때 안 가리는 ‘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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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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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났다 하면 대형”… 고층건물 늘며 피해규모도 커져

《 때를 가리지 않는 화재는 상시적인 재난으로 꼽힌다. 지진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와 비교해도 피해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 안전의식이 높아지고 소방 시설이 확충되면서 화재 발생에 따른 인명 피해는 줄고 있지만 화재 발생 건수나 재산 피해액은 최근까지도 계속 늘었다. 2000년 3만4844건에 불과했던 화재 발생 건수는 지난해 4만1862건으로 10년 새 20% 이상 늘었다. 재산 피해액은 무려 75.6%나 늘었다. 단, 인명 피해는 2001년 531명에서 지난해 303명으로 43% 줄었다. 2008년 이후부터는 화재 발생 건수나 인명 피해, 재산 피해 모두 줄어드는 추세다. 》
○ 한번 발생하면 대형 재난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최근 화재는 고층건물이나 지하 아케이드, 공동주택 등 사람들이 많이 몰린 곳에서 주로 일어난다”며 “화재가 발생하면 예전보다 피해 규모가 커지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화재가 일어난 장소를 분석한 결과 건물 등 상업시설에서 일어난 화재가 1만6388건으로 주거시설(1만515건), 차량(5783건) 등을 누르고 화재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으로 조사됐다.

상업시설 가운데 대형 화재로 이어질 우려가 큰 곳이 고층건물(11층 이상)이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0월 부산 해운대구에서 일어난 주상복합아파트 우신골든스위트 화재 사건을 들 수 있다. 4층에서 일어난 불이 20여 분 만에 꼭대기 층인 38층으로 번질 때까지 입주민을 위한 대피 안내방송은 없었다. 불은 인화성 페인트와 필름으로 덮인 알루미늄 패널 외벽을 타고 올라갔다. 처음 불이 난 4층에는 스프링클러조차 없었다.

당시 화재는 콘센트에서 전기 스파크가 일어나며 발생했다. 1990년대까지는 담배, 라이터불이 가장 많은 화재 원인이었으나 2000년대 들면서는 전기 사용 도중 발생하는 스파크나 합선이 가장 많은 화재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전체 화재 건수 가운데 전기 사용 도중 발생한 화재가 37.5%로 담배, 라이터불(21.6%)을 크게 앞질렀다.

지난해 고층건물에서 일어난 화재는 총 18건으로 피해액은 약 151억3000만 원으로 집계됐다. 피해액만 비교하면 지난해 서울에서 일어난 화재 피해액 145억387만 원을 능가한다. 현재 서울에만 11층 이상 고층건물이 1만4856개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제일 긴 고가 사다리차(52m)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높이는 15∼17층. 서울시내 30층 이상 건물 224개는 고가 사다리차로 화재 진압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초기 진압에 실패하면 건물 상층부로 불길이 상승 기류를 타고 급속하게 번지는 ‘굴뚝효과’가 있다”며 “고층건물에 흔히 설치된 통유리도 소방관들이 깨고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두꺼운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 ‘출동 후 5분 내 도착’ 비율 높여야

저층 주택가의 화재 피해도 결코 만만치 않다. 지난해 상업시설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보다 주거용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 건수가 적었지만 사망자 수는 오히려 갑절 이상 많았다. 지난해 상업시설 화재로 사망한 사람은 76명이었지만 주거용 건물 화재로 숨진 사람은 198명에 이른다. 좁은 주택가 골목에 주차된 차들이 소방차 진입을 막고 소화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집이 많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소방서에 의뢰해 강남구 역삼동 주택가에 불이 났다는 가정 아래 출동 시간을 직접 측정해봤다. 8일 오후 4시 반경 불과 3.5km 떨어진 목적지까지 가는 데 지휘차부터 구급차까지 총 7대의 차량이 20분이 넘어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화재로 발생한 유독가스에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최대 시간이 5분”이라며 “실제 화재가 발생했다면 인명 피해가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출동 후 5분 안에 화재 현장에 도착한 소방차 비율은 전체 출동 건수의 72.0%. 최근 5년(2005∼2009년) 동안의 평균 도착률 62.8%에 비해 향상됐지만 70%대 후반인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까지 미흡한 수준이다. 소방방재청은 올해 안에 5분 내 출동 비율을 75%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소방차 진로를 막는 차량에 대해 2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소방기본법과 도로교통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 올해 ‘화재와의 전쟁’ 선포

대형 화재에 대비하기 위해 소방 당국은 인력과 장비를 확충해 피해를 더욱 줄여가기로 했다. 특히 준초고층(30∼49층) 건축물도 초고층(50층 이상) 건축물에 준하는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우선 20억 원을 들여 70m 이상의 고가 사다리차를 도입할 계획이다. 또 대형 화재를 한 번에 진압하기 위해 물 1만 L를 실을 수 있는 ‘고층건물 화재 전용 헬기’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초고층 건축물이나 사회복지시설 등 특수시설 화재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이나 장비가 부족한 점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노인 아동 장애인 등 관련 특수시설에 자동화재탐지 설비를 설치하고 소방안전 관리자를 뽑아 배치하기로 했다. 저소득층 57만 가구에 대해서는 전기 가스 안전시설을 무료로 점검하고 개선하는 사업도 꾸준히 벌여나갈 계획이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 4월, 심는 나무보다 타는 나무가 많을 판 ▼

산불피해 72%가 4월에 집중… 43%는 입산자 부주의로 발생

4월은 산불의 계절이다. 산림청이 최근 10년(2001∼2010년) 동안 월별 산불 피해를 조사한 결과 1년 중 산불이 가장 많이 나는 시기는 4월로 전체 산불(478건)의 30%(145건)가 발생했다. 산불 피해 면적이 가장 큰 시기 역시 4월. 이 기간 연평균 피해 면적 1161ha 가운데 72%인 841ha가 4월에 탔다. 매년 4월이면 서울 여의도 전체 면적(약 848ha)만큼의 산림이 불에 타 훼손되는 셈이다.

4월에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산을 찾는 사람이 많은 데다 농사 준비를 위해 논밭을 태우거나 쓰레기를 소각하는 등 불씨를 취급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날짜별로는 특정일에 몰리지 않고 수시로 산불이 일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산림청 관계자는 “과거만 해도 식목일 한식 등에 산불이 주로 일어났지만 최근에는 레포츠를 즐기는 20, 30대 젊은층이 수시로 산을 드나들기 때문에 언제 산불이 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산불 대부분은 부주의에서 비롯된다. 최근 10년 동안 발생한 산불 473건 중 등산객을 비롯한 입산자의 부주의로 발생한 비율이 43%(203건)에 이른다.

최근에는 전원주택이나 산 근처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가 산으로 옮겨 붙는 ‘전이 산불’이 늘고 있다. 한 해 평균 2, 3건에 불과하던 전이 산불은 2009년 15건, 2010년 14건 등 최근 들어 늘어나는 추세다. ‘참살이’ 열풍으로 도시에서 내려와 전원생활을 하거나 땅값이 싼 곳을 찾아 건물을 짓는 사람이 늘면서 전이 화재도 함께 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최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전이 화재를 막기 위한 점검 및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산림청은 올해부터 산불 방지를 위해 체계적인 접근을 하기 시작했다. 최근 조직된 ‘산불전문조사반’이 대표적인 사례. 산불방지과 직원 29명과 재해 재난 분야 전문위원을 합쳐 200명으로 구성된 조사반은 현장을 방문해 최초 발화지점부터 발화 요인 등을 단계적으로 조사한다. 산림청은 또 지난해 도입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산불신고’ 제도를 올해 확대하기로 했다. 이 제도는 산불 감시원들에게 GPS 기능이 달린 신고 단말기를 지급해 실시간으로 산불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현재 단말기 7800대를 감시원에게 지급한 상태다. 올해는 5200대를 추가로 보급할 계획이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 국민 80% “재난중 불이 가장 두렵다”

‘화재와의 전쟁’ 캠페인 86%가 몰라

시민들은 가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난 사고 중 화재가 제일 두렵다고 손꼽았다. 하지만 막상 소화기가 있는 집은 절반 수준에 그쳤고 화재와 관련해 안전 불감증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소방방재청이 지난해 9월 전국 20세 이상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국민 안전 의식 수준’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80.2%가 가정 내 재난 사고 중 화재를 가장 두려워한다고 답했다. 감전사고(9.4%), 수재(4.9%) 등이 뒤를 이었지만 화재에 대한 우려가 압도적으로 나타났다. 집을 비운 사이 불이 날까 봐 걱정된다고 답한 이도 52.9%에 이르렀다.

화재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지만 집에 소화기를 두지 않은 응답자가 42%나 됐다. 또 집에서 불이 났을 때 대피 및 대처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는 응답자가 4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재에 대한 안전불감증을 걱정하는 이도 많았다. 평소 화재에 대한 안전불감증이 매우 심각하다고 답한 이는 76.2%나 됐다.

한편 소방방재청이 올해 3월부터 하고 있는 ‘화재와의 전쟁’ 캠페인에 대해서는 85.9%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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