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스템 불안 확산]노트북 1대로 서버 절반 파괴… CEO는 제대로 보고도 못받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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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전산망 관리 총체적 부실

3000만 명의 고객을 대혼란에 빠뜨린 농협의 금융전산사고는 아마추어 수준의 전산망 관리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은 14일 전산장애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 과정에서 농협의 전산망 관리가 총체적 부실에 빠져 있음을 자인했다.

최 회장은 12일 전산장애사태가 발생한 지 사흘이 지나서야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농협중앙회 정보기술(IT) 본부에 상주하던 협력사 직원의 노트북 PC를 경유해 각 업무시스템을 연계해 주는 중계서버에서 ‘시스템 파일 삭제 명령’이 실행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명령이 어떻게 실행됐는지, 누가 했는지 등 구체적 원인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최 회장은 최고경영자(CEO)인데도 금융전산망이 마비된 12일 상황도 제때 파악하지 못했다. 그는 담당 임직원으로부터 보고조차 받지 못하고 다른 경로를 통해 농협의 전산망이 불능 상태에 빠진 것을 알게 됐다. 이 때문에 농협 임직원들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 축소하려던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농협은 지키지 못할 약속을 되풀이하는 행태도 보였다. 온라인과 영업 창구를 통한 금융거래가 전면 마비된 12일에는 “공사를 하다가 문제가 생겼다. 조만간 정상적으로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사흘이 지난 14일에도 농협의 금융서비스는 완전 복구되지 못했다. 13일 오후 10시경부터 정상화될 것이라던 인터넷뱅킹은 14일 새벽이 되어서야 가동됐고 그마저도 시스템 불안정으로 잔액조회와 같은 일부 기능만 가능해 고객들의 비난을 샀다.

▼ 담당 임직원들 늑장 보고… 사건 은폐 의혹까지 ▼

14일 낮 12시부터 재개될 것이라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및 체크카드 거래는 사건 발생 50시간이 지났는데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 회장은 “13일 아침에 와서 보고받을 때 오전 11시면 복구가 된다고 하더니, 다시 오후 2시 이야기를 하더라”며 “직원들을 달래서라도 빨리 복구해 고객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게 의무라고 생각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기자들이 당한 것(농협으로부터 복구 완료 시간에 대한 답변을 들었으나 여러 차례 지연된 점)이나 내가 당한 것이나 똑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협력사 직원의 노트북 한 대가 농협이 보유한 서버의 절반을 망가뜨릴 수 있도록 설계된 전산시스템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전산담당 임원은 “무엇보다 안정성과 보안성이 최우선인 은행의 전산시스템에서는 모든 게 견제와 균형에 따라 업무가 이뤄지기 때문에 실행 파일을 삭제하라는 명령을 쉽게 내릴 수 없다”며 “이건 정상적이지 않은 케이스이며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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