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KAIST]대학 연구비 실태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2일 03시 00분


억 소리나는 연구비… 교수 1인당 최대 3억 이상 집행
또다른 갈등의 씨앗… 연구실 운영위해 집행항목 바꿔

KAIST P 교수의 자살을 계기로 대학 연구비의 횡령 또는 유용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지원 규모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지만 규정과 다르게 사용하는 사례 역시 많다는 지적이다. 교수 개인의 양심에만 맡기지 말고 정부와 대학의 관리감독을 대대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 KAIST 3억4900만 원으로 최대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09년 대학 연구활동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에 지원한 연구비는 4조1175억 원. 1년 전보다 16.5% 늘었다. 교수 1인당 연구비도 평균 5500만 원에서 6200만 원으로 많아졌다.

주요 대학 교수는 연간 2억∼3억 원의 연구비를 집행할 수 있다. 연구비를 많이 받은 대학은 서울대(4300억 원) 연세대(2597억 원) KAIST(1932억 원) 순. 전임교원 1인당 연구비는 KAIST가 3억4900만 원으로 더 많다. 서울대는 2억 원, 연세대는 1억3800만 원 등이다.

KAIST는 학교 규모가 작은 데다 다른 대학보다 공학분야 비중이 높아 교수 1인당 연구비가 가장 많다. 전체 대학 연구비 중 46%가 공학 교수에게 돌아간다.

교수 개인이 수억 원의 연구비를 집행하지만 관리·감독 시스템은 허술하다. 사업이 끝나면 연구팀이 대학 내 산학협력단이나 한국연구재단에 정산 보고한다. 하지만 사용 명세를 일일이 조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물품 대금 부풀리기, 인건비 빼돌리기 등의 수법으로 연구비를 가로채는 횡령사건이 빈번한 이유다.

최건모 한국연구재단 감사는 “이런 상황에서는 내부 고발이나 감사원 특별감사가 아니면 연구비 횡령이나 유용을 적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연구 투명성을 교수 개인의 양심에 맡기고 있다는 얘기다.

○ 현실과 동떨어진 연구비 집행 시스템

지원 시스템이 현실과 동떨어져 유용을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높다. 예를 들어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리규정은 처음 제출한 계획서에 맞춰 항목별로 지출하도록 하고 있다. 연구 여건이 바뀌어 사업비를 다르게 지출하면 결과적으로 유용 혐의를 지게 되는 셈이다.

학계에서는 연구실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연구비 집행항목을 변경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인건비가 대표적이다. 특히 학생 인건비는 개인 계좌로 지급되지만 관행적으로 연구책임자가 통장을 모아 관리하거나, 학생들에게 인건비를 다시 거둬들인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연구책임자가 인건비를 공동 관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어느 대학 교수는 “일부 교수가 인건비를 개인적으로 착복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연구실을 운영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건비를 공동 관리하는데 운이 나빠 걸리면 연구비 유용으로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예를 들어 연구실에 학생이 10명 있다고 가정하면 이 중 몇 명이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끊길 수 있다. 하지만 학생에게는 월급처럼 매달 일정 금액을 줘야 연구실 운영이 가능하다. 개별 학생에게 지급하는 인건비를 취합해 공동 관리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KAIST 관계자는 “돈을 모아놓고 쓰니 실험실에서 쓰는 물품도 사고, 식사비로도 쓴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교수가 사적 용도로 사용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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