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대학 탐방]경기과학기술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2일 03시 00분


맞춤 기술+첨단 과학… ‘글로벌 CEO’ 키운다

5일 오후 경기 시흥시 시화공단과 붙은 경기과학기술대 고정밀계측기술센터에서는 미국 수출용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이송장치의 평탄도를 측정 중이었다. 원효정밀이 의뢰한 12개 제품이 모두 미국 측에서 요구한 평탄도 0.006mm의 오차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계측을 끝낸 제품을 포장하던 원효정밀 이기수 사장(55)은 “사설 측정기관이 있지만 대학 같은 공인기관 성적서를 첨부해야 미국 측으로부터 인정받는다”며 “시간도 단축할 수 있어 2년째 이곳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센터는 경기과학기술대가 직접 투자해 2006년부터 운영 중인 학교기업이다. 중소기업이 보유할 수 없는 고가 측정장비로 자동차 부품, LCD 부품, 금형, 항공부품 등 인근 시화, 반월, 남동 공단 등에서 의뢰한 정밀제품들의 품질평가를 하는 곳이다. 대표는 이종대 경기과학기술대 정밀기계과 교수가 맡고 있지만 직원 6명은 교직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교수는 “지난해 311개 중소기업에서 915건의 의뢰를 받아 처리했다”며 “정부 산하 공공시험기관은 보통 1, 2주 걸리지만 우리는 바쁜 중소기업 사정을 고려해 당일 처리를 원칙으로 토요일과 일요일도 일을 한다”고 말했다.

○ ‘경기공업대’→‘경기과학기술대’

시화신도시와 국가산업단지인 시화공단 사이에 위치한 경기과학기술대(시흥시 정왕동)는 크게 이름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수도권 산업기술인력의 산실이다. 1966년 당시 상공부(현 지식경제부)가 산업현장 기술인력 양성을 목표로 설립한 한국정밀기기센터로 출발한 이래 지금까지 2만 명을 배출했다. 2년제 과정이지만 학위가 없다가 1999년 전문학사 학위를 주는 경기공업대로 정식 출범했다. 이후 2009년 제4대 한영수 총장 취임과 함께 교명 변경을 추진해 교육과학기술부의 승인으로 이달 1일부터 경기과학기술대로 이름을 바꿨다. 기계, 금형, 전기, 자동차 등 전통적인 공업 위주 학과에서 정보통신과 경영, 모바일, 건축인테리어 등으로 학과들이 확대된 데 따라 교명 변경이 필요했기 때문. 1999년 개교 당시 8개 학과에 800명 정원이던 학교는 현재 21개 학과 3259명 정원 규모로 성장했다. 산업체 위탁 과정과 전공 심화 과정까지 포함하면 3900명이 재학 중이다.

○ 수도권 산학협력 1위 대학

경기과학기술대는 지난해 11월 제2중소기업관 개관에 맞춰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태국 등 4개국 24개사 바이어와 시화반월공단 내 중소기업 80여 사가 참가하는 국제 산학협력대전을 개최했다. 이틀에 걸쳐 800억 원 상당의 수출계약이 체결될 정도로 행사는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4년제 대학도 하기 힘든 일로 전문대학으로서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경기과학기술대가 그동안 축적해온 역량과 시화반월공단(1만2000개 업체)과 인천 남동공단(5300개 업체)의 중소기업들과 맺어온 상생과 협력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해는 전국 전문대 중 정부와 기업체로부터 125억 원의 용역 및 위탁사업을 따내 산학협력수익률 전국 1위를 차지했다. 또 올해 3월에는 지식경제부와 교과부가 공동으로 선정한 산학협력중심대학사업 전국 최우수 대학에 뽑혔다.

경기과학기술대 정밀기계과 이종대 교수(오른쪽)와 학생들이 3차원 측정 실습을 하고 있다. 경기과학기술대는 기존 공업 위주 학과 외에 정보 통신 및 경영, 모바일 관련 학과를 신설한 뒤 이달 1일 교명을 바꿨다. 경기과학기술대 제공
경기과학기술대 정밀기계과 이종대 교수(오른쪽)와 학생들이 3차원 측정 실습을 하고 있다. 경기과학기술대는 기존 공업 위주 학과 외에 정보 통신 및 경영, 모바일 관련 학과를 신설한 뒤 이달 1일 교명을 바꿨다. 경기과학기술대 제공
기업체가 선호하는 맞춤형 학생들을 배출하다 보니 취업률도 전문대학 중 최상위권에 속한다. 지난해 취업통계조사 결과 건강보험 가입 기준으로 67.6%(전문대 평균 55.5%)를 기록해 수도권에서 4위를 차지했다. 비정규직 등 건강보험 가입이 안 되는 취업자까지 더하면 98%를 상회한다. 이에 따라 해마다 입시경쟁률도 높아지고 있다. 2009년 6.4 대 1, 2010년 8.2 대 1에서 올해는 13 대 1을 기록했다.

○ 미래의 CEO를 배출하는 대학

경기과학기술대는 산업인력 양성을 추구해 왔지만 이제는 글로벌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졸업생들 중에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 대표 및 임원이 상당수 배출됐지만 앞으로는 세계를 누빌 CEO를 배출하겠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지난해 처음으로 성적 우수 학생 30명으로 영어반을 만들었다. 글로벌 인재 양성반은 올해 일본어반까지 신설해 모두 60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에게는 장학금과 용돈은 물론이고 해외 연수 기회까지 제공하고 있다. 향후 국내외 유명 대학원에 진학할 경우나 모교의 교수로 돌아올 때까지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고교생을 대상으로 방과 후 또는 방학을 이용해 대학에서 수업을 시킨 뒤 입학시키는 ‘중소기업 기술사관’ 육성학교로도 지정됐다. 현재 인근 4개 고교의 학생 100명이 선발돼 공부하고 있으며 내년에 처음으로 금형디자인과에 30여 명이 입학하게 된다. 실무와 이론을 겸비하게 될 이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협력업체에 취업까지 곧바로 하게 된다. 또 기업이 원하는 현장 맞춤형 인재를 육성하는 계약학과도 정원 외로 운영 중이다. 서울반도체와 서울옵토디바이스 등 4개 기업체가 위탁한 사원 120여 명이 이 학교 발광다이오드(LED) 공정제어과, 컴퓨터정보과 등에서 2년 과정으로 공부하고 있다.
▼ 2012학년도 입학 전형
4개 학부 21개 학과서 1600명 선발 예정

경기 시흥시 정왕동 경기과학기술대(옛 경기공업대) 디지털미디어디자인과 학생들이 색채연구 수업을 듣고 있다. 경기과학기술대 제공
경기 시흥시 정왕동 경기과학기술대(옛 경기공업대) 디지털미디어디자인과 학생들이 색채연구 수업을 듣고 있다. 경기과학기술대 제공
경기과학기술대는 2012학년도에 기계자동화부 자동차에너지부 정보기술(IT)경영부 디자인문화부 등 4개 학부의 21개 학과에서 1600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21개 학부는 2년제와 3년제가 섞여 있다. 정원 외 기회균등 할당제로 농어촌(읍면 단위) 소재 고교 졸업(예정)자로 64명, 기초생활보호대상자 및 차상위계층에서 80명을 각각 선발한다. 전문계고 출신은 일반전형과 특별전형에 모두 지원할 수 있다. 일반전형에 지원할 수 있는 인문계고 출신이라도 국가기술자격증 소지자, 산업체 근무경력 2개월 이상인 자, 1년 이상 직업과정 이수자, 시흥 안산 부천 인천 안양 군포 등 6개 시 수험생 등은 특별전형에도 지원 가능하다.

수시모집 일반전형과 특별전형, 정시모집 특별전형은 학생부 100%가 반영된다. 정시모집 일반전형은 학생부 50%, 수능 50%가 각각 반영된다. 학생부 성적은 1, 2학년 4학기 성적 중 수험생이 원하는 1학기 성적만 반영한다. 특히 특별전형에서는 기능사 이상 국가기술자격증 취득자, 산업체 근무 12개월 이상자, 군필자, 전국영어경시대회 장려상 이상 수상자 등에게는 8점(약 1등급)이 부가점수로 주어진다.  
■ 한영수 총장 “학과간 벽 허물어 융복합 인재 육성”


경기과학기술대는 한영수 총장(62·사진) 취임 이후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다. 2020년 미래형 융합기술교육의 선두주자, 동북아 최고 전문대학을 목표로 10개년 계획을 세워 의욕적으로 추진 중이다. 숙원사업이던 교명(校名) 변경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 수요와 기술 흐름을 반영해 첨단 과학기술인력 육성에 초점을 맞춰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 한 총장은 연세대 재학 중 행정고시 10회에 합격해 당시 상공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20년간 국내 산업 및 통상 분야 전문가로 활약했다. 이 때문에 학내외에서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한 총장이 경기과학기술대의 개혁과 변화를 이끌 최고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 총장은 교명 변경과 관련해 “과거 2차산업을 상징하던 ‘공업’은 현재 산업과 기술의 융복합, 서비스,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산업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한다”며 “변화하는 대학 특성을 반영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교명 변경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한 총장은 취임 이후 학부제를 도입하고 기존 학과의 정원을 조정해가며 6개의 미래 유망학과를 신설했다. 그래픽디자인 아동영어과 중소기업경영과 건축인테리어과 신재생에너지과 모바일정보융합과 등이다. 특히 올해 신설한 모바일정보융합과는 전문대학 최초 융복합학과로 스마트폰 앱부터 게임시나리오 설계, 멀티미디어 제작 등까지 모바일 분야 전문가 육성을 목표로 한다. 한 총장은 “학부제를 도입해 다른 과 강의도 들을 수 있도록 학과 간 벽을 허물고 학과 간 융합과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교수 역량 강화를 위해 올해 처음으로 안식년제를 도입했다. 100명의 교수를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한 총장은 ‘우리 대학으로서는 산학협력은 필요가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에는 제2 중소기업관을 신축했다. 한 총장은 “대학에 중소기업을 위한 전용 건물이 2개씩 있는 곳은 우리 대학이 유일하다”며 “현재 2곳의 중소기업관에 65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고 말했다.

학생 복지 향상과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서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9년 제1기숙사를 준공한 데 이어 제2기숙사를 내년 2월 완공할 예정이다. 모두 550명을 수용할 수 있다. 매점과 자판기뿐이던 교내에 학생들이 선호하는 카페테리아 2곳과 당구장을 마련했다. 올해는 인조잔디구장을 만들 방침이다.

한 총장은 국내 대학교육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특히 전문대가 앞으로는 4년제 대학과 경쟁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하는 만큼 수업연한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전문대는 학과별로 2년과 3년으로 제한돼 있지만 필요에 따라 4년제도 도입해야 한다는 것. 한 총장은 “현재 대학진학률이 82%에 이르고 있지만 기업이 필요한 인재는 없고 무능한 고학력자만 양산하고 있다”며 “실용교육과 취업이 보장되는 전문대학 육성으로 정부 정책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흥=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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