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사태 100일]최악상황 부른 5대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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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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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주 감염 모른채 경북 방역 올인… 전국 확산 못 막아

동아일보의 설문조사에 응답한 사람들은 구제역 확산을 부른 문제점으로 △초기 대응 미흡 △백신 접종 실기 △중앙정부-지방정부 간, 정부 부처 간 엇박자 △허술한 농가 방역의식 및 열악한 가축 사육환경 △속도전이 낳은 매몰 부실 등을 꼽았다. 한 방역담당 공무원은 “꼭 어느 하나로 인해 구제역이 확산됐다고 할 수 없고 이 같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태가 확산됐다”며 “앞으로 이런 문제들에 대한 예방책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미싱링크’ 파주, 최악의 화 불러


가장 미흡했던 점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1.4%가 ‘구제역 첫 발생 시 방역 당국의 초동대처’를 꼽았다. 이 답을 선택한 비율은 농장주와 전문가 그룹에서는 모두 80.0%에 달했다.

방역 당국이 구제역 발생 초기 결정적으로 놓쳤던 사실은 바로 ‘경기 파주시 확산’이었다. 파주의 분뇨처리 차량이 경북 안동시의 최초 발생 농장을 두 차례에 걸쳐 방문했지만 방역 당국은 12월 중순까지 이 같은 상황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미싱링크(missing link·잃어버린 연결고리)’ 파주의 대가는 컸다.

방역 당국이 경북 북부지역에만 바이러스가 확산된 것으로 판단하고 이 지역 안에서 막는 데 집중하는 사이, 파주까지 상륙한 바이러스는 경기도 전역을 휘젓고 다녔다. 그러나 12월 14일 경기 양주시와 연천군에서 의심 신고가 접수될 때까지 경기지역에는 단 한 곳의 방역초소도 운영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농림수산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만약 파주의 분뇨 차량이 다녀갔다는 사실을 초기에 파악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며 “해당 농장주도 경황이 없어 제대로 기억을 하지 못했고, 농장의 차량 출입 기록도 없어 파악이 늦어졌다”고 인정했다.

방역 당국이 경기·강원 일대의 바이러스 확산을 뒤늦게 파악하다 보니 백신 접종도 늦어졌다. 설문에 응한 한 경기지역 공무원은 “12월 중순 경기도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뒤 20일경 여러 지자체에서 ‘도살처분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정부가 경기지역 확산의 위험성을 알았다면 좀 더 백신 접종을 빨리 결정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피해도 적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응답자들이 ‘가장 미흡했던 점’ 2위로 전국 백신 접종 결정(28.6%)을 꼽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 계속된 엇박자…대응 매뉴얼도 문제


범정부적 구제역 대응책에 문제가 있었다는 응답도 20.4%에 달했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간의 엇박자가 구제역 확산의 또 다른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안동의 최초 발생 농장주가 지난해 11월 23일 지방 방역 당국에 신고했는데, 수의과학검역원(수과원)은 28일까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며 “지방 방역 당국에서 곧바로 수과원에 신고만 했어도 1주일에 달하는 방역 공백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민선 자치단체장 시대가 시작되면서 당장 표로 연결되지 않는 축산 관련 예산과 인력을 줄였고, 그로 인해 방역 능력은 물론이고 방역 의식도 해이해진 것이 큰 화로 이어졌다”며 “축산 및 방역을 담당하는 부서에 수의직 공무원은 물론이고 수의사가 없는 지자체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 공무원들은 “중앙정부는 매뉴얼대로 하라고 했지만, 그 매뉴얼도 문제가 많았다”고 답했다. 실제로 현행 구제역 대응 매뉴얼의 문제점을 묻는 질문에 ‘대규모 확산 시 대응방안 미흡’이 58.0%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매몰지 선정 및 매몰 절차에 대한 세부적인 지침 부족’(16.0%)이었다. 방역을 위해 매몰 작업을 서두르면서도 제대로 된 매몰 규정이 없다 보니 부실 매몰로 이어졌다.

○ 농가 방역의식 실종


전문가, 공무원 집단뿐 아니라 농장주 가운데도 “정부도 잘못했지만 농장주도 문제가 있다”고 의견을 밝힌 응답자가 많았다. 충남지역의 한 농장주는 “구제역 도살처분 지역을 다녀와 이동제한을 당한 출하 차량을 버젓이 끌고 다닌 농장주도 있었다”며 “정부를 원망하기 이전에 이런 사례를 농장주들끼리 스스로 단속하고 지켜야 당당하게 보상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경남지역의 또 다른 농장주는 “죽자 살자 방역에 매달린 농가나 자기 부주의로 구제역이 걸린 농가나 보상금이 같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보상금을 차등화해 농가의 방역 의지를 더 높이는 식으로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털어놨다.

이병모 대한양돈협회장은 “이번 구제역으로 정부와 농가 모두 큰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며 “국내 농업에서 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앞으로 구제역을 비롯한 악성 가축질병 진단부터 대응, 마무리까지 종합적인 방역 프로그램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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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문 참여 50명 명단 ::

▽농장주(20명)=박상모 씨(충남 보령시), 장규석 씨(보령시), 이강기 씨(충남 논산시), 김규종 씨(논산시), 김창근 씨(경북 안동시), 서상진 씨(대구 동구), 황화섭 씨(안동시), 강창모 씨(경북 영덕군), 이진석 씨(충북 충주시), 전흥우 씨(충북 진천군), 김문흠 씨(충주시), 조위필 씨(충북 보은군), 박동순 씨(경기 파주시), 김성진 씨(경기 이천시) 이정호 씨(이천시), 익명 5명

▽공무원(20명)=이재율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관, 안승대 행안부 재난대책과 서기관, 이범관 행안부 재난대책과 서기관, 김영일 충남 예산군 가축방역계장, 심상원 충남도 축산과 주무관, 정은해 환경부 토양지하수과장, 조병욱 환경부 수도정책과장, 안문수 환경부 상하수도정책관, 서상교 경기도 축산과장, 김상원 경기 이천시 축산임업과장, 김상철 경북도 축산경영과장, 김윤한 안동시 축산진흥과장, 현공율 충북도 축산과장, 박천조 충북 음성군 방역유통팀장, 농림수산식품부 축산정책국 담당자 2명, 수의과학검역원 질병방역부 담당자 2명, 경남 김해시청 농축산과 담당자 1명, 경남 창녕군청 농업기술센터 담당자 1명(이상 익명을 원한 공무원은 6명)

▽전문가(10명)=이군택 서울대 농생명과학공동기기원 교수, 양병이 서울대 환경조경학과 교수, 박종수 충남대 동물바이오시스템과학과 교수, 모인필 충북대 수의학과 교수, 이병모 대한양돈협회장, 현승훈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 문승주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 백인기 중앙대 동물자원과학과 교수, 남성우 농협중앙회 축산경제 대표, 이중복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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