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정보 법률’ 시행 5개월… 흉악범 1만2080명 유전자 확보미궁 빠졌던 29건 용의자 찾아
2008년 7월 5일 서울 은평구의 한 가정집에 A 씨(59)가 은밀하게 스며들었다. 그는 돈지갑을 훔쳐 달아나다 집주인에게 발각됐다. 당황한 그는 집주인을 힘으로 누른 뒤 가슴을 수차례 짓밟고 달아났다. 집주인은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전치 8주의 상처를 입었다.
은평경찰서가 수사에 나섰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A 씨가 지갑을 훔친 뒤 유유히 술을 마시고 남겨뒀던 소주잔에 타액이 묻어 있었고 수사팀은 여기에서 유전자(DNA)를 검출했지만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다른 증거도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은 ‘콜드 케이스(cold case·장기미제사건)’로 남았다.
2007년 2월 부산 해운대구의 한 여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도 대표적인 미제사건이었다. 해운대경찰서는 장기 투숙하던 이모 씨(당시 68세)가 괴한에게 금품을 빼앗긴 뒤 살해된 것으로 보고 3년간 수사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 범죄현장에서 머리카락과 타액이 발견됐지만 DNA를 비교해볼 대상이 없어 용의자의 신원은 미궁에 빠졌다.
그러나 올해 7월 26일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두 사건은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다. 검찰은 이때부터 살인, 강도, 아동성폭력 등 흉악범 1만2080명의 DNA를 채취해 대검찰청 데이터베이스(DB)에 모아두고 수사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은평경찰서의 수사를 지휘하던 서울서부지검은 소주잔의 타액에서 채취한 DNA가 대검 DB에 보관된 A 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지난달 11일 확인했다. 검찰에서 자료를 넘겨받은 경찰은 8일 만에 A 씨를 붙잡아 구속했다. 사건 발생 2년 5개월여 만에 범인이 잡힌 순간이었다.
부산지검 동부지청도 지난달 15일 머리카락과 타액에서 발견된 DNA가 대검 DB에 보관된 김모 씨(26)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해운대경찰서에 통보했다. 살인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다른 강도상해죄를 저질러 3년 6개월을 복역한 김 씨가 올해 8월 출소하기 직전 DNA를 채취해 뒀던 것. 해운대경찰서는 사건 발생 3년 9개월여 만인 지난달 23일 김 씨를 구속했다.
이처럼 ‘DNA DB’로 해결된 장기미제사건은 살인 1건, 강도상해 1건, 성폭력 1건, 강간치상 1건, 절도 25건 등 29건(용의자 26명)에 이른다. DB가 구축된 지 5개월여 만에 엄청난 효과를 거둔 셈이다. 검찰은 살인, 강간 등 11개 범죄자 가운데 매년 유죄가 확정되는 1만9000여 명과 기존 수감자 2만 명에 대해서도 DNA를 계속 채취해가면서 장기미제사건들을 해결하는 데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악마의 모습일것 같지만…평범해 더 섬뜩한 사이코패스
▲2010년 10월1일 동아뉴스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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