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D-1… 74세에 응시하는 박봉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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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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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하면 할수록 젊어져… 18세 소녀처럼 떨리네요”

18일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박봉월 씨가 서울 마포구 염리동 일성여고 교실에서 손으로 승리의 ‘V’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일성여고
18일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박봉월 씨가 서울 마포구 염리동 일성여고 교실에서 손으로 승리의 ‘V’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일성여고
“나를 받아주는 대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시험을 잘 봐야지.”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틀 앞둔 16일 박봉월 씨(74·여)는 손자 손녀들보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시험을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려운 가정사정으로 학업을 접은 박 씨는 60여 년의 세월을 건너, 18일 생애 처음 대학의 문을 두드린다.

5남매 가운데 맏딸로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박 씨는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학교를 중도에 그만둬야 했다. 이후 책과 다시 마주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아다. 24세에 결혼한 뒤 상경해 잠시 만학도의 꿈에 젖기도 했지만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그마저도 물거품이 됐다.

그런 박 씨가 2007년 3월 가족들의 응원으로 어렵게 일성여중에 입학했다. 학력인정학교인 일성여중에서 2년 과정을 마친 박 씨는 곧바로 고교 2년 과정도 거뜬히 수료하고 이번에 수능에 도전하는 것이다. 박 씨는 “처음 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중학교 졸업만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공부할수록 욕심이 생기더라”며 “기왕에 온 기회이니만큼 잘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씨는 배움에 대한 욕심이 많다. 최근 컴퓨터를 배우는 데 열심이던 그는 수능을 앞두고서는 서예학원에도 등록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젊어지는 것 같다”는 박 씨는 “좋은 공부를 왜 이제야 시작했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는 현재 한 종합대학 전통의상학과에 수시 지원을 한 상태. 박 씨는 “30여 년간 한복을 지어왔는데 그 경험을 살려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수시든 정시든 원하는 학과에 꼭 붙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선배로 올 초 경인여대 관광일본어과에 진학한 조재구 씨(77·여)는 “시험 날 돋보기, 따뜻한 옷 등이 필요할 수 있으니 반드시 챙겨가라”며 “차분하게 시험을 치러 좋은 성적을 냈으면 한다”고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박 씨는 “내게는 뜻 깊은 경험이고 소중한 도전이기 때문에 크게 긴장하지 않고 마음 편히 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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