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무개념 판사…“합의보는데 필요” 성폭행범에 피해여성 개인정보 통째 건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4일 03시 00분


檢 “해당판사-법원직원 조사”

현직 법관과 법원 직원이 성폭력 범죄 가해자에게 피해 여성의 연락처 등 신상정보를 유출해 ‘2차 피해’를 야기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13일 검찰과 법원에 따르면 김모 씨는 찜질방에서 잠을 자던 여성 A 씨의 몸을 더듬은 혐의(강제추행)로 기소됐다. 이 사건의 재판을 맡은 서울서부지법의 B 판사는 8월 초 열린 첫 공판에서 김 씨에게 “왜 피해자와 합의를 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김 씨가 “A 씨의 연락처를 알지 못해 합의를 볼 수 없었다”고 답하자 B 판사는 김 씨에게 “(재판 관련 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형사과를 찾아가 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재판이 끝난 뒤 B 판사의 이야기대로 법원 형사과를 찾아가 자신에 대한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요청했다. 법원 직원 C 씨에게서 기록을 통째로 넘겨받은 김 씨는 이 기록에 적힌 A 씨의 주소로 연락해 합의해 줄 것을 요구했다.

성추행을 당한 기억으로 괴로워하던 A 씨는 갑작스러운 김 씨의 연락에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A 씨는 8월 말 자신의 개인정보를 김 씨에게 알려준 법원 관계자들을 처벌해 달라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서울서부지검은 성범죄 피해자의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사안의 성격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해 형사2부(부장 이형철)에 사건을 배당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검찰은 조만간 A 씨의 개인정보 유출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해 B 판사와 C 씨를 불러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본보는 서울서부지법 공보판사를 통해 B 판사의 반론을 들으려 했지만 B 판사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서울서부지법 측은 “성폭력범죄처벌법상 피해자의 신원정보 누설은 금지돼 있지만 피고인의 기록 열람·등사권도 형사소송법상 권리인 만큼 B 판사 등의 행동이 반드시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보였다.

한편 B 판사 등 법원 관계자들이 실제로 형사처벌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검찰은 2007년에도 성범죄 사건 피고인이 법원 직원을 통해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알아내 협박편지를 보낸 사건이 일어나자 수사를 벌인 적이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된 법원 직원이 소환에 응하지 않자 법원과의 마찰을 우려해 입건유예 조치를 취한 채 사건을 종결한 바 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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