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편지/서명교]“정답보다 네 생각을 말해봐”

동아일보 입력 2010-09-16 03:00수정 2010-09-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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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집에서 우연히 그 집 아들의 산수 문제집을 펼쳐 본 적이 있다. 영국 어린이는 산수를 어떻게 공부하는지 단순한 호기심으로 책을 보는데 필자의 눈을 끈 문제가 있었다.

□+□=5. 이제껏 3+2=□ 같은 종류의 문제에 익숙한 나에게 □+□=5라는 문제는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앞의 문제에는 5라는 하나의 답밖에 없지만 뒤의 문제는 1+4, 2.3+2.7, 또는 31/3+12/3 같은 여러 개의 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어떤 문제에 정답이 여러 개일 수 있다는 점이 새삼 마음에 와 닿았다.

하나의 답을 찾는 공부에 익숙한 내가 케임브리지에 와서 처음 수업을 들었을 때의 일이다. 사회학 분야에서 저명한 교수였는데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제부터 저는 제 시각에 맞추어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제 의견에 동조하기를 기대하지 않으니 언제나 제 논의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질문을 해서 제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명한 교수님의 생각을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강의를 듣는데 질문과 대화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 가지 특이했던 것은 질문이나 대화 내용이 그리 날카롭다거나 정리된 내용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당시 나는 외국 학생들이 잘 몰라도 일단 자기 생각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1년이 지나자 수업시간에 가장 많이 떠든 학생이 몰라보게 다듬어진 주장을 펼치게 된 반면 수업시간에 가장 조용한 나는 별반 다름없는 생각으로 굳어져 있음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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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교수가 내게 한국 학생은 성실한 반면 수업시간에 참 조용한데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과연 우리는 문화적으로 조용한 사람들인가.

그 교수의 말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이 “무엇이든 말해라. 내가 듣고 싶은 것은 정답이 아니라 너희들의 생각이다”였다. 세미나 시간에 영국 친구들은 주제에 대해 잘 몰라도 자신의 생각을 주저 없이 펼치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에 비해 나는 어떤 생각을 말하기 전에 머릿속에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정리한 다음 나의 정답을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

사고하는 힘은 책상에 앉아 혼자 열심히 공부하기보다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더욱 성장한다. 대화를 통해 우리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와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와 상대의 답이 항상 일치하지 않고, 또 누가 맞고 누가 틀리는가를 가려내는 일이 중요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공부를 좀 더 하시죠”라고 말하기보다 “대화를 좀 더 해 보죠”라고 했으면 한다. 정답이 하나뿐이라고 믿는 사람과 사회는 그 답이 남과 다르거나 혹은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혼란스러워한다.

대부분의 대화에는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조금 더 설득력 있는 주장이 있을 뿐이다. 정답이 아예 없을 수도, 혹은 아주 많을 수도 있다.

조금 더 떠드는 사람이 되어서 남과 함께 생각을 다듬어가다 보면 비단 학문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문제의 정답이 여러 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삶에서 하나의 답이 막히면 또 다른 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서명교 英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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