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 프로그램 유행어 달달∼… 디카 들고와 “사진 찍어줄까?”… 연예인 소품 만들어 필통에 매달고… 새 학기 ‘최우선 과제’ 새 친구들 눈길을 끌어라!
“안녕. 난 1학년 때 ○반이었던 김○○라고 해. 내 취미가 사진 찍는 거거든. 내가 찍으면 정말 예쁘게 나와. 지금 한번 찍어줄까?”(김 양)
“아, 그래! 좋아(웃음).”(친구)
“고마워. 자, 찍는다…. 잘 나왔지? ‘뽀샵질’(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조작하는 행위) 예쁘게 해서 오늘 내 미니홈피에 사진 올려놓을 테니까, 꼭 와서 봐(웃음).”(김 양)
새 학년이 시작된 2일. 서울의 한 중학교 2학년 김모 양(14·서울 은평구)은 쉬는 시간마다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같은 반이 된 낯선 아이들을 찾아가 “사진을 찍자”고 했다. 혹시 홀로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가 있으면 그 친구 옆에 찰싹 붙어 함께 ‘셀카’(셀프카메라)를 찍는다. 정녕 중요한 작업은 그 다음. 자신의 미니홈피 주소를 포스트잇에 적어 그 친구에게 건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 양은 정말 취미생활을 위해 사진 찍기에 열중하는 걸까? 천만의 말씀. 별도의 두 가지 목적이 있으니, 첫째는 사진을 찍어놓으면 반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을 단시간 내에 외울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미니홈피를 방문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양은 “하루 3명 남짓이던 내 미니홈피 방문자수가 이틀 만에 하루 15명으로 늘었어요”라면서 “새 학년이 시작된 지 1주일도 안 되었는데 벌써 대부분의 친구가 내 이름을 알아요”라고 말했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이면 교실에서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 위한 학생들의 치밀한 ‘작전’이 시작된다. 특히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중학교 1학년 사이에선 빠른 시간 내에 학급 내 교우관계를 넓히는 게 ‘우선 과제’다. 이를 위해 일부 학생은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오는 유행어 익혀두기’ 같은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왜 학생들은 학년 초에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친구들을 재빨리 사귀어 두어야만 ‘왕따’(집단따돌림)의 대상이 되지 않고, 둘째, 3월 초 진행되는 반장선거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되며, 셋째, 공부 잘하는 아이와 빨리 친해지면 노트를 빌려 보는 등 학업에 도움을 받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김 양은 “학년 초 아이들과 빨리 친해져야 어떤 애가 나한테 도움이 될지를 얼른 파악할 수 있어요”라면서 “공부 잘하는 아이와 먼저 친해져 인맥을 쌓아놓으면 그 친구가 학급회장이라도 되면 저를 봉사부장에 임명해줄 수도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중고교생들에 따르면 4월에 가는 봄 소풍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친구들을 사귀어 놓아야 한다. 봄 소풍에서 친구들에게 한번 소외당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턴 ‘회복’이 어렵다. 최소 4명쯤은 친구로 만들어 놓아야 향후 1년간 각종 교내 행사나 친구 집에 모여서 하는 시험공부에서 따돌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1이 된 류모 양(13·서울 강동구)을 보자. 류 양은 중학교 입학 첫날, 시선 처리부터 작은 행동 하나하나까지 철저히 계산해 움직였다. 우선 좋은 첫인상을 주기에 유리한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정해진 등교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류 양이 일컫는 명당은 2분단 3번째 줄 오른쪽 자리. 2분단은 창가와 적당히 떨어져 있어 얼굴이 화사하게 보일뿐더러, 3번째 줄은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아이가 앉기에 적당한 위치’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 위치에 앉아 자신에 이어 두 번째로 등교하는 친구를 기다린다. 그 아이가 들어오는 순간 시선은 친구의 셔츠 첫 번째 단추를 향하고 고개는 왼쪽으로 살짝 기울인 상태에서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손을 흔들 땐 얼굴 부근까지 손을 들어올린 후 4, 5회를 흔든다. 이런 인사법을 전날 집에서 거울을 보며 연습했다는 류 양은 “좋은 첫인상은 중학교 3년의 내 이미지를 결정지을 수 있는 만큼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반 친구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는 ‘물량공세’도 방법. 하지만 이때도 꼭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고 학생들은 귀띔했다. 다음은 서울 서대문구의 한 중학교 2학년인 이모 군의 설명.
“한꺼번에 많은 친구들을 매점에 데리고 가서 큰돈을 쓰면 친구들 사이에서 ‘물주’로만 인식될 수도 있어요. 단순히 돈이 많고 튀는 것을 좋아하는 애로 인식돼서 ‘왕따’를 당하기 쉽죠. 한 번에 한두 명 이상에게 사주면 안 돼요. 몇 번 사주고 친해진 뒤엔 친구들한테 때론 ‘빌붙는’ 뻔뻔함도 보여야만 진짜로 친해질 수 있어요.”
여학생들의 경우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대화의 소재는 역시 ‘연예인’과 ‘패션’이다. 일부 학생은 ‘연예인 소품’을 활용해 자신의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고 교우관계를 넓힌다. 중2 김모 양은 새 학년이 시작되기 직전, 인터넷에서 인기 아이돌 그룹 빅뱅 멤버들의 캐릭터 그림을 구한 뒤 이를 코팅해 링을 끼는 작업을 거쳐 열쇠고리를 만들었다. 이 ‘수제’ 열쇠고리를 필통에 매달아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노출한 김 양.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빅뱅의 팬인 반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 “반가워. 너도 빅뱅 팬이니?” 하고 말을 건네는 게 아닌가!
김 양은 “사실 저는 빅뱅의 팬이 아니지만 아이들을 유인하기 위해선 ‘대세’를 따라야 한다”면서 “유행 머리스타일을 하거나 교복을 예쁘게 ‘튜닝’(개조)해 입는 것도 아이들이 내게 동질감을 갖도록 만드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새 학기 새 친구 사귀기 Tip▼
[1]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귀겠다는 생각을 가지라! 낯선 환경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소극적인 자세로 누군가 다가와 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금물. ‘3월 둘째 주까지 새로운 반친구들을 몇 명 사귀겠다’ 등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먼저 다른 친구에게 한 번이라도 말을 걸어보도록 하자.
[2] 친구들과 나와의 공통점을 찾아라! 3월 한 달은 새로운 반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탐색하는 기간이다. ‘반에서 발표를 제일 많이 하는 친구가 누구인지’ ‘새로 사귄 친구가 누구며 첫인상이 어떤지’ ‘누가 제일 공부를 잘할 것 같은지’ ‘친구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은 누구인지’ 등 반 친구들의 특징을 관찰해 보자. 그리고 그중 사귀고 싶은 친구와 나의 공통점을 찾아보자. 공통점을 소재로 말을 건네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다. 친구의 이름을 기억했다가 처음 말을 건넬 때 이름을 부르면 친밀감은 더욱 높아진다.
[3] 친구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의 표현을 하라! 적극적인 생각과 공통점 찾기가 ‘관계 맺기’의 시작이라면,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청과 공감의 표현’이다. 친구가 이야기를 할 때에는 친구를 쳐다보면서 이야기에 집중한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오, 그래서?’하며 맞장구를 쳐주면서 자신이 친구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고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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