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하나를 살 때도 나름의 규칙과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어요. 필기하는 데 쓸 건지, 친구들과 쪽지를 주고받을 때 쓸 건지에 따라서 브랜드가 달라져요. 필통이랑 파우치 같은 건 수업시간에도 확연히 보이는 거니까 펜보다 조금 더 투자해야 돼요. 그래서 서울 명동이나 동대문에서 명품 로고가 박혀 있는 ‘짝퉁’을 사요.”(김모 양)
서울의 한 고등학교 2학년 김모 양(17·서울 서대문구)은 지난 주말 시내의 한 대형서점에서 ‘새 학기 필기구 리모델링’을 했다. 김 양이 산 펜은 총 8가지. 필기용 펜은 B 브랜드에서 나온 검은색과 빨간색 펜 두 개. 가격이 싸고 오래 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친구들에게 편지나 쪽지를 쓸 때 사용하는 펜은 좀 더 다양하다. H○○ 펜은 굵기가 0.3mm여서 글씨가 작고 예쁘게 써지고, S○○ 펜은 색이 다양해 굵은 글씨를 쓰거나 편지지를 꾸밀 때 사용한다. 수학시간에 쓸 검은색 제도용 샤프는 필수. 이외에 꼭지 부분에 캐릭터 인형이 달려 있는 샤프는 ‘기분전환용’이다. 필통과 파우치는 특별히 명동에서 ‘샤넬’의 짝퉁을 6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
학생들은 신학기를 맞아 자신만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Must have Item·꼭 가져야만 하는 품목)’을 장만하느라 분주하다. 기존에 있던 필기구를 버리고 새로 구입하면서 새 학기를 ‘상큼하게’ 시작할 수 있고 공부에 대한 의지도 새로이 다질 수 있다는 것이 학생들의 설명이다.
필기구만이 아니다. 중고교 때 여학생은 부쩍 외모에 관심이 많아지기 마련. 그래서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내던 유명 브랜드의 파우더, 립글로스 등에 과감히 세뱃돈이나 모아둔 용돈을 ‘다걸기(올인)’한다. 일부 학생은 머리세팅을 위한 휴대용 ‘고데기’를 사기도 한다.
외모를 꾸미기 위한 노력은 여학생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올해 고3이 되는 정모 군(18·서울 강동구)은 최근 학교 사물함에 비치할 헤어 왁스와 스프레이, 향수를 샀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바로 학원에 가야 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세 가지 품목을 구입하는 데 들어간 총액은 8만 원. 정 군은 “고3이 됐다고 매일 머리도 감지 않고 초췌한 모습으로 냄새를 풍기며 돌아다니기는 싫다”며 “깔끔한 모습으로 꾸미는 것도 일종의 ‘자기관리’”라고 말했다.
학교생활을 편하게 하기 위해 구입하는 ‘아이템’도 있다. ‘삼선슬리퍼’가 대표적인 예. ‘어떤 실내화를 신어야 한다’는 교칙이 별도로 없을 경우엔 반드시 장만해야 할 필수 아이템이다. 하지만 슬리퍼를 ‘순정’(‘구입했을 때 그대로의 모양’을 뜻하는 신세대 은어)으로 신고 다니는 것은 센스 없는 행동이다. 학생들은 3000원 안팎의 슬리퍼를 구매한 후 곧바로 ‘튜닝’에 들어간다. 튜닝 방법도 다양하다. 주로 사용하는 장비는 유성 매직펜이나 아크릴 물감. 이를 이용해 학생들은 삼선슬리퍼 위에다 ‘구치’나 ‘루이뷔통’ 같은 명품 패션브랜드의 로고를 그려 넣으면서 이른바 ‘명품 슬리퍼’를 만든다. 경기 성남시의 한 여학교에는 명품 ‘프라다’의 로고를 그려 넣은 슬리퍼를 함께 신고 다니며 우애를 과시하는 이른바 ‘프라다 슬리퍼 패밀리’도 존재한다.
신학기를 맞아 핑크색 삼선슬리퍼를 장만한 고2 이모 양(17·서울 은평구). 색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뭔가 심심하다고 느껴 삼선슬리퍼를 구매한 뒤 튜닝에 들어갔다. 우선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슬리퍼의 하얀색 부분을 핑크색으로 칠한 이 양. 이후 슬리퍼 튜닝을 하도 잘해 교내에서 ‘슬리퍼 장인(匠人)’으로 불리는 친구에게 초콜릿과 음료수를 건네고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슬리퍼에 그려 넣을 수 있었다. 이 양은 “가뜩이나 교복 모양도 똑같은데 슬리퍼마저 똑같은 걸 신고 다니면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없다”며 “3000원짜리 슬리퍼 튜닝은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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