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결전의 1년” 미용실의 삭발 행렬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9일 03시 00분


“반(半)삭발해주세요.”

지난달 마지막 주말. 올해 고3이 되는 류모 군(18·경기 부천시)은 겨울방학 중 개학을 일주일 앞두고 삭발을 했다. 현재 그의 머리카락 길이는 1.3∼1.8mm.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결연한 의지를 다지기 위해 감행한 행동이다.

“요즘 학교 앞 미용실엔 여학생보다 남학생이 더 많아요. 머리카락 짧게 자르고 공부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죠. 고3에게 개학식은 수능과의 전쟁 선포식과 다름없어요. 개학 후 살펴보니 저처럼 빡빡 깎은 학생이 한 반에 5명은 되더라고요.”(류 군)

류 군은 한시도 손에서 떼어 놓지 않았던 휴대전화를 개학을 앞두고 ‘일시정지’시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 시간에 60개 이상의 문자메시지를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류 군이지만 휴대전화를 정지시키자 함께 PC방에 어울려 다녔던 친구들과도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친구들은 ‘변했다’ ‘그러다 진짜로 서울대 가겠다’며 비아냥거리지만 개의치 않아요. 현재 성적이 중하위권인데 더 떨어지면 안 되잖아요?”(류 군)

올해 대입 수험생이 되는 학생 중엔 겨울방학 전과는 확 달라진 모습으로 학교에 나타나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남학생마냥 머리를 짧게 자른 여학생부터 수업시간에 졸지 않고 집중하겠다며 쉬는 시간마다 집에서 챙겨온 침낭 속에 들어가 토막 잠을 자는 남학생까지.

올해 고3이 되는 최모 양(18·경남 진주)은 등교하자마자 ‘전투태세’를 갖춘다. 먼저 수십 개의 실핀으로 머리카락을 고정시킨다. 한 올의 머리카락도 흘러내리지 않도록. 추위 탓에 정신이 분산되지 않도록 따스한 수면양말과 수면바지도 챙겨온다. 등교 후 ‘학업 모드’로 변신하는 최 양.

“외모에 대한 집착은 버렸어요. 가방에 꼭 넣고 다니던 손거울, 립글로스, 파우더도 다 버렸어요. 1분 1초가 아깝다며 겨울방학 보충수업 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만 머리를 감고 다닌 친구도 있어요. 단 1점이라도 올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요?”

하루 수면을 4시간 이하로 확 줄인 적잖은 학생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에 들어간다. 일부는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다’며 사물함 위에 올라가 토막잠을 자기도 한다. 차가운 바닥을 피해 온풍기의 바람을 쐬며 잘 수 있는 사물함 위는 명당. 이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일부 학생은 차가운 복도 바닥에 신문지 또는 참고서를 겹겹이 깔아 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대입 의지를 다지기 위해 목표 대학을 상징하는 물건을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는 학생도 있다. 큼지막한 대학 로고가 그려진 노트, 필통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수시로 들여다보며 공부하는 학생은 평범한 편. 대학로고 스티커를 새로 받은 고3 교과서 표지에 모두 붙여 놓은 학생도 있다.

올해 고3이 되는 노모 양(18·서울 강남구 역삼동)은 “아예 특정 대학의 배지를 교복 이름표 위에 달고 다니는 친구도 있다”면서 “올해 서울 소재 명문대에 합격한 선배의 교복, 책, 노트, 필기구는 서로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일 정도”라고 전했다.

고3이 되는 임모 양(18·경기 부천)은 A4용지에 쓴 한 달 학업계획서를 책상 위에 붙여 놓고 공부한다. 학업계획서엔 자기 성적, 각오, 목표 대학이 큼지막하게 씌어 있고, 4주간의 학습계획이 낱낱이 적혀 있다. 임 양은 지난달 한 교육업체가 진행하는 행사에 응모해 1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6개월 무료 대입 컨설팅 기회를 얻었다.

“이렇게 써 붙여 놔도 전혀 창피하지 않아요. 나태한 제 모습을 바꿀 수만 있다면요. 지난주 처음 컨설턴트에게 상담을 받았어요. 1시간 동안 컨설턴트의 말을 토씨도 빠짐없이 다 받아 적었죠. 마치 신의 계시를 받는 것처럼…. 그때 전문가와 함께 작성한 이 학업계획서가 제겐 목표대학 합격에 이르는 생명줄이나 다름없어요.”(임 양)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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