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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9월 14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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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의 시작
‘춘향전’에서 춘향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목숨 걸고 지켜낸 정절의 여인으로 그려진다. 지고지순하다는 것은 그 사랑이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서방님, 내 말씀 들으시오. 내일이 본관 사또 생신이라, 취중에 주망(酒妄)나면 나를 올려 칠 것이니, …(중략)…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들어가서 장폐(杖斃)하여 죽거들랑, 삯군인 체 달려들어 둘러업고, 우리 둘이 처음 만나 놀던 부용당의 적막하고 요적한 데 뉘어 놓고, 서방님 손소 염습하되, 나의 혼백 위로하여 입은 옷 벗기지 말고 양지 끝에 묻었다가, 서방님 귀히 되어 청운에 오르거든, 일시도 둘라 말고 육진장포 개렴(改殮)하여, 조촐한 상여 위에 덩그렇게 실은 후에, 북망산천 찾아갈 제, 앞남산, 뒷남산, 다 버리고 한양으로 올려다가 선산 발치에 묻어 주고, 비문에 새기기를 ‘수절 원사 춘향지묘(守節怨死 春香之墓)’라 여덟 자만 새겨 주오.
[고등학교 문학, ‘춘향전’에서]』
옥중에서 춘향이가 이 도령에게 한 유언이다. 이 도령은 출세하여 온 것이 아니라 집안이 망하여 거지가 되었다고 했다. 목숨을 걸고 정절을 지켰건만 이 도령은 자신을 구해줄 아무런 힘이 없다. 춘향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도 춘향이는 변심하지 않는다. 이제는 정절을 버릴 만도 하건만 춘향은 죽음을 각오한다. 그리고 이씨 집안의 선산 발치에라도 묻어달라고 한다. 애초에 춘향의 사랑이 신분 상승을 의도한 것이었다면 할 수 없는 말이다.
○ 그것뿐일까?
사실 이 도령은 암행어사였다. 이 도령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신분을 숨겨야 했던 공무상의 이유였는지, 아니면 ‘이렇게 패가망신했는데도 여전히 나를 사랑할 테냐’는 식으로 춘향을 떠보려는 것이었는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춘향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는 것.
이런 강인함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문제를 춘향이라는 한 여성의 특성으로만 바라본다면 이해는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조선시대’라는 가부장적 사회구조의 산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정절은 조선사회의 여성들에게 요구되던 이념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요구를 따르게 하려면 그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 한다. 춘향은 정절을 지킨 대가로 신분상승이라는 보상을 받는다.
『이때, 어사또는 좌우도(左右道) 순읍(巡邑)하여 민정을 살핀 후에 서울로 올라가 어전(御前)에 숙배(肅拜)하니, …(중략)… 즉시 이조 참의(吏曹參議) 대사성(大司成)을 봉하시고, 춘향으로 정렬 부인(貞烈夫人)을 봉하시니, 사은(謝恩) 숙배하고 물러 나와 부모전에 뵈온대, 성은(聖恩)을 축수(祝壽)하시더라.[고등학교 문학, ‘춘향전’에서]』
○ 사례 하나 더
『심청이 반겨 듣고,
“나는 이 동네 사람인데, 우리 아버지가 앞을 못 보셔서 ‘공양미 3백 석을 지성으로 불공하면 눈을 떠 보리라’ 하기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장만할 길이 전혀 없어 내 몸을 팔려 하니 나를 가는 것이 어떠하실는지요?”사가는 것이 어떠하실는지요?”
[고등학교 문학, ‘심청전’에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심청이의 효성은 놀랍다.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이 참된 효도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심청의 결단은 초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비 대신 죽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러한 심청의 효성은 보상을 받는다.
『천자께서 몸을 숨겨 가만히 살펴보니 예쁜 용녀가 얼굴을 반만 들어 꽃봉이 밖으로 반만 내다보더니, 사람 자취 있음을 보고 도로 헤치고 들어갔다. 천자께서 보시고 문득 몸과 마음이 황홀하시어 의아한 생각이 들어 아무리 서 있어도 다시는 기척이 없었다. …(중략)… 천자 ‘배필을 정하리라’ 결심하시어 혼인을 하기로 작정하시고 태사관으로 하여금 날을 잡으라 하니 5월 5일 갑자일이었다.[고등학교 문학, ‘심청전’에서]』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춘향의 정절, 심청의 효성이 과연 현실적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시 사회에서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적 이념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시대적 이념은 양반들에게는 백성들에 대한 교화적 의미로, 일반 백성들에게는 언젠가는 보상받을 수 있는 도덕적 가치로 널리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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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규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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