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 “성적으로 볼수없는 잠재력 확인했다”

입력 2009-07-13 02:59수정 2009-09-2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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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IST 입학사정관 현장 면접 동행취재
면접 고3생 “내 생각 많이 물어 거울앞에 선 느낌”

“인류에게 일어난 가장 중요한 일 세 가지와 그 이유를 말해보세요.”

“우선 불의 발견이에요. 불로 인간을 공격하는 동물을 퇴치할 수 있었고 그래서 종족 번식도 가능했죠. 화식(火食)으로 위생적인 식생활도 가능해졌어요.”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가운데 7일 KAIST 입학사정관 면접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2010학년도 입시에서 학교장 추천으로 일반 고교생 150명을 선발하기로 한 KAIST는 지난달 8일∼이달 10일 사정관 43명을 동원해 전국 651개(고교당 1명) 고교에서 현장면접을 끝냈다.

KAIST 이인호 김보정석좌교수와 오영석 교수는 이날 한 조를 이뤄 전북 전주시 기전여고를 찾았다. 오후 2시에 도착해 교장(15분)과 교사(25분)를 면담한 뒤 50분 동안 3학년 A양(18)을 면접했다. KAIST는 학교에서 학생지원서와 교장추천서 담임의견서, 생활기록부는 미리 받았지만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성적표는 1차 합격 이후에 내도록 했다. 그래서 사정관들은 A 양의 성적을 모르는 상태.

오후 2시 40분 A 양이 상담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자 우선 오 교수는 “긴장되면 더욱 긴장해도 좋아요. 그래야 실수를 많이 하지”라며 농담을 던졌다. 학생이 긴장을 풀어야 숨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우스갯소리를 한 것.

인생에서 가장 기억나는 일 세 가지를 묻는 질문에 A 양은 7세 때 미국 생활을 했던 경험과 중학교 2학년 때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라는 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는 KAIST에 지원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뇌 과학자가 돼서 우울증 같은 뇌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싶다”고 답변했다. 인생의 가장 기억나는 일의 마지막으로 고교 2학년 때 경험을 말하려던 A 양은 한동안 말없이 흐느꼈다. 이 교수가 “다시 기억하니 너무 속상해? 괜찮아,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인데 뭐”라며 진정시키자 말을 이었다.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와 인생에 대해 고민했어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 의욕을 잃었는데 성적이 떨어지니 다시 그것이 고민거리가 됐어요. 자퇴할 생각을 했죠.”

인류에게 일어난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로 A 양은 불의 발견 외에 두 가지를 더 말했다. A 양이 이 질문을 받고 한동안 생각에 잠기자 사정관들은 음료수를 마시면서 충분히 생각한 뒤 대답하라고 했다. “두 번째는 컴퓨터예요. 인터넷은 여론 형성을 가능하게 하고 전주 같은 곳에서 서울 유명 학원 강의도 들을 수도 있게 해주죠. 열정도 중요해요. 인류의 발전을 가져온 호기심은 열정이 만들어 냈죠.”

이 교수가 지금 한 얘기를 영어로 해보라고 요구하자 A 양은 비교적 유창하게 영어로 답변했다. A 양의 텝스 점수는 854점이다.

A 양은 “지식보다는 경험과 생각을 묻는 질문이 많아 거울 앞에 선 것처럼 나 스스로가 완전히 드러나는 느낌이었다”며 “지식을 달달 외워 답변할 수 없는 이런 면접이 정착되면 고교생들의 학교생활도 많이 바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성적으로 볼 수 없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는 데 효율적인 제도라고 본다”며 “모든 대학이 할 수는 없을 것이며 사정관의 전문성과 기술, 책임의식 등이 제도의 성패를 가름할 것”이라고 말했다. KAIST는 651명 가운데 1차 합격자 300명을 선발한 뒤 23일 심층면접을 다시 거쳐 8월 7일 최종 합격자 150명을 선발한다.

전주=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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