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WCU로 간다]<5>건국대

  • 입력 2009년 5월 14일 02시 57분


양자역학-전자공학 결합 차세대 반도체산업 이끈다

《건국대 물리학과 박사과정의 김진수 씨(32)는 지금 일본 출장 중이다. 일본 오사카대의 가와이 도모지 교수 연구실에서 양자역학의 개념이 적용된 나노 입자와 나노 와이어(wire) 제조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으로서 세계적인 나노 기술 석학으로부터 직접 배울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지난달 29일에는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로저 콘버그 교수가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주제로 200여 명의 건국대 학생을 상대로 직접 특강을 진행했다. 올해 건국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이런 국제화 움직임은 교육과학기술부의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사업에 선정된 이후 파생된 것이다.》

고효율 메모리-태양전지 개발에 필수기술
“인재 확보” 이례적으로 학부전공과정 운영
해외석학과 공동연구 ‘글로벌 랩’도 활기

건국대는 지난해 12월 새 학과와 전공을 개설하는 WCU 사업 제1유형에 1개 사업, 단기로 해외 석학을 초청해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제3유형 사업에 5개 사업이 선정됐다.

WCU 사업과 이미 독자적으로 추진해왔던 ‘건국대(KU) 글로벌 랩(LAB)’ 사업을 연계해 대학의 연구 역량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 건국대의 구상이다.

○ 양자역학 응용 가능한 인력 절실

박배호 교수(물리학)는 2007년 초 안식년 기간에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차세대 반도체를 만들려면 양자역학과 전자공학을 모두 아는 새로운 인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기존 반도체 연구원들 중에는 전자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많아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했던 것이다.

반도체의 고집적도에 따라 양자역학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반도체산업의 큰 흐름이다. 회로 폭이 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 단위로 가늘어지면 고전 물리학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양자역학적인 현상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터널링’ 현상이 대표적이다. 부도체는 원래 전자를 통과시키지 않아야 정상인데 nm의 세계에서는 전자가 부도체도 통과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를 이해하고 응용하는 데 양자역학은 필수다.

박 교수는 연구소에서 느꼈던 점을 바탕으로 교과부에 ‘양자 상(相) 및 소자 전공 인력 양성 및 세계적 선도 연구그룹 구축’을 제안했고, 새로운 학과와 전공을 개설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박 교수의 연구는 D램이나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대체할 차세대 메모리 개발과 고효율의 태양전지 및 발광다이오드(LED) 개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기술이다. 박 교수는 “양자역학을 응용한 새로운 소자가 개발되면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속도가 빨라져 D램이 필요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TV처럼 금방 켜지는 컴퓨터가 가능해지고 휴대전화에도 고성능의 컴퓨터를 내장할 수 있다. 박 교수는 “반도체업계에서는 지금 양자역학과 전자공학을 모두 잘 아는 연구 인력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학부생에게도 해외 연수 기회

통상 연구중심대학은 대학원 과정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건국대는 이례적으로 학부과정과 연계한 ‘양자 상 및 소자 전공’ 과정을 운영한다. WCU 사업 심사에서 감점 요인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제안서에 포함시켰다. 인재 확보와 연구의 연속성을 위해서는 학부 인력의 확보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WCU 사업에 선정된 이후 건국대는 이과대학의 정원을 조정해 학부에서도 ‘양자 상 및 소자 전공’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2010학년도 건국대 물리학부 신입생은 2학년에 진학하면서 ‘양자 상 및 소자 전공’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신설 전공을 선택한 학부생은 WCU 사업으로 초청된 해외 석학이 몸담았던 해외 기관에 교환 학생으로 가는 기회도 갖게 된다.

대학원 과정은 학부 과정보다 1학기 앞선 올해 2학기부터 운영된다. WCU사업비 지원으로 대학원 과정 학생은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되고 매월 50만 원(석사 과정)∼100만 원(박사 과정)의 생활비도 지원받는다.

해외 석학과의 연구는 올해 초부터 진행되고 있다. 가와이 오사카대 교수는 3월 초 입국해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물리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연구를 지도하고 있고, 오사카대 조교수 1명을 별도로 초빙해 공동 연구에 참여시키고 있다. 7월 입국할 예정인 다른 석학들도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온라인 토론에 참여하는 방식 등으로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학생들의 응용기술 개발을 위해 교내 새천년관 1층에는 ‘클린룸’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각종 실험기기와 장비가 들어오고 신발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장치, 손발을 소독하는 장치 등이 설치됐다.

○ 노벨상 수상자 2명 참여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로저 콘버그 스탠퍼드대 교수는 한예선 교수(신기술융합학과)가 연구책임자로 있는 WCU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각종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밝히는 연구를 공동으로 수행한다.

콘버그 교수는 WCU 사업에 참여하기 전에 이미 건국대와 인연이 있었다. 건국대가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건국대(KU) 글로벌 랩’ 사업에 따라 2007년 4월 건국대 석학교수로 임명됐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루이스 이그내로 교수(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도 건국대 글로벌 랩에 참여한 것이 인연이 돼 WCU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건국대 의과대학과 생명과학대학 교수들과 함께 혈관성 치매 진단 및 치료법과 인지기능의 개선을 유도하는 ‘뇌 비아그라’ 개발 연구를 수행 중이다.

건국대가 ‘양자 상 및 소자 전공’으로 WCU 제1유형 사업에 선정되는 데도 글로벌 랩에 참여했던 외국 교수의 공헌이 컸다. 러시아에서 화합물 반도체 태양전지를 선도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아이오페연구소의 연구소장이었던 조레스 알페로프 교수가 양자역학 연구 방향의 큰 흐름을 잡는 데 기여했던 것.

오명 총장은 “세계적인 석학과의 공동연구는 대학의 연구 실력을 단시간 내에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해외 석학 연구진과 건국대 연구진 사이에 형성될 학술적 인맥 등을 고려하면 해외 석학 초빙 효과는 앞으로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허탁 산학협력단장 ▼
“연구원 5곳지정 전폭지원…5년동안 100억 받는곳도”

“건국대는 연구 역량을 높이기 위해 연구활동의 국제화, 연구성과의 특성화, 연구성과의 극대화, 연구지원의 내실화 등 4가지 발전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

건국대 허탁 산학협력단장(사진)은 12일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사업에 6개 과제가 선정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건국대가 이 같은 발전전략에 따라 다양한 제도를 운영한다고 소개했다. 대표적인 것이 ‘건국대 글로벌 랩’으로 현재 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초빙해 3개의 글로벌 랩을 운영하고 있다.

건국대 브레인 풀 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글로벌 랩이 노벨상 수상자와 같이 이미 명성을 쌓은 학자를 초빙하는 프로그램인 데 비해 브레인 풀은 박사 후 과정에 있는 젊고 유능한 인재를 초청해 건국대에서 연구를 하도록 하는 제도다. 허 단장은 “젊고 유능한 인재는 자신의 경력을 관리하기 위해 연구 성과에 욕심을 낸다”며 “적은 초빙 비용으로도 훌륭한 성과를 공유할 수 있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선진연구기관이나 대학과 교류를 하는 글로벌 커넥트 사업도 있다. 그는 “이런 모든 제도와 활동은 ‘연구 네트워크의 국제화’로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내 유수의 대학들을 제치고 핀란드의 세계적인 연구소인 VTT국립기술연구센터의 한국지사격인 ‘VTT한국연구센터’를 건국대로 유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곳에서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등 정보기술 분야의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 항공우주분야에서는 지난해부터 세계 최대 헬리콥터 생산업체인 ‘유로콥터’와 함께 차세대 헬리콥터를 개발하는 공동 연구를 수행 중이다. 최근에는 태양전기 개발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앞서는 독일의 프라운호퍼 연구소도 유치했다.

건국대는 연구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대학으로는 이례적으로 교책연구원을 5곳 지정해 집중지원하고 있다. 바이오분야의 의생명과학 연구원, 항공분야의 지능형 운행체 연구원, 정보기술분야의 유비타 연구원 등이다. 인문과 경제분야로는 인문학 연구원과 부동산도시 연구원이 있다. 허 단장은 “교수 개인을 상대로 과제와 논문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과 별개로 교책연구원을 지원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연구 역량을 높이기 위해 건국대가 그만큼 노력을 한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교책연구원 중에는 5년간 100억 원 이상의 연구비를 지원받는 곳도 있다.

허 단장은 “건국대의 WCU 사업은 자체 연구발전 계획과 어우러져 우리 대학이 국제적인 연구 네트워크를 갖추는 데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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