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제 덫에 걸렸나

  • 입력 2009년 3월 31일 02시 54분


‘연철호에 500만 달러’ 먼저 털어놓아

검찰 압박하려던 카드가 부메랑으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검찰 수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 거액을 건넨 사실을 왜 먼저 털어놓았을까.

박 회장은 농협의 자회사인 휴켐스 인수 과정에서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 측에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대검 중앙수사부의 조사를 받던 지난해 12월경 검찰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 조카사위 연철호 씨(36)에게 500만 달러를 건넸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박 회장의 첫 진술 이후 박 회장 측에서 노 전 대통령 및 그 주변 인사에게 거액이 흘러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광범위한 계좌 추적을 통해 이 돈의 정확한 용처 등을 조사 중이다.

검찰 안팎에선 박 회장이 검찰의 신문 전에 연 씨와의 금품거래 내용을 이례적으로 먼저 공개한 것은 다목적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선 자신을 수사하면 전직 대통령 주변으로 수사가 옮아갈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라는 지적도 있다.

박 회장이 자신에 대한 수사가 곧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임으로써 검찰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자신과 관련한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누그러뜨리는 일종의 ‘거래’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 회장은 구속 전에 주변에 “내가 대통령 후원자인데 누구에게 돈을 주었겠느냐”는 말을 했다는 후문이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박 회장이 ‘전직 대통령 측에도 돈을 건넸는데, 수사할 수 있겠느냐’면서 자신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막기 위해 그런 진술을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관계 고위급 인사와 친분이 두터웠던 박 회장의 과시욕일 수 있다. 전직 대통령 측과 금품 거래를 할 정도임을 과시해 검사 앞에서 자신의 위상을 보여주려고 했을 수 있다.

그러나 박 회장의 ‘비장의 카드’가 이제는 되레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분석이 많다.

박 회장 진술의 진위를 떠나 이미 검찰은 박 회장은 물론 자신과 친분이 두터웠던 인사들을 소환 조사했으며, 이제는 노 전 대통령 주변 인사들에게까지 검찰 수사의 칼날이 향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박 회장의 진술이 공개된 상황에서 검찰도 더는 이를 묻어둘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특검 도입 얘기도 나오고 있다. 검찰도 홍콩에 개설돼 있던 박 회장의 비자금 계좌에 대한 자료가 입수되는 대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 방침이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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