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딸아, 또 울고 말았구나”

  • 입력 2009년 3월 12일 02시 59분


1년 전 시신이 토막 난 채 발견된 이혜진 양의 아버지 이창근 씨가 10일 경기 의왕시의 청계공원묘지에 있는 딸의 묘비 앞에 앉아 비석을 매만지고 있다. 의왕=유덕영 기자
1년 전 시신이 토막 난 채 발견된 이혜진 양의 아버지 이창근 씨가 10일 경기 의왕시의 청계공원묘지에 있는 딸의 묘비 앞에 앉아 비석을 매만지고 있다. 의왕=유덕영 기자
■ 혜진양 피살 1년… 마르지 않은 아빠의 눈물

《절대 울지 않겠다고 했다. 애써 웃음 지으며 가파른 산길을 올라 딸의 묘비 앞에 섰다. 그리곤 맨손으로 차가운 묘비를 연방 문질렀다. “이틀 전에 와서 깨끗이 닦았는데, 비가 와서 다시 더러워졌네요.” 이내 말을 잊었다. 울지 않겠다던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묘비에 새겨진 딸의 이름을 몇 번이나 손가락으로 따라 써 내려갔다. 한참을 울던 그는 힘겹게 일어나 딸의 묘비를 등지고 내려왔다. “미안합니다. 이게, 어떤 기분인지 아세요?”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묘비 이름 몇번이고 따라 쓰다 눈물 왈칵

“요즘도 꿈에 보여…” 직장 그만둬 생계 막막

10일 경기 의왕시 청계공원묘지에 묻힌 딸을 찾았던 이창근 씨(48). 지난해 3월 11일 토막 살해된 채 발견돼 전 국민에게 충격을 줬던 이혜진 양(당시 10세)의 장례를 치른 지 1년이 됐다.

“조금 나아졌느냐”는 질문에 이 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요즘도 혜진이가 집에 있는 꿈을 꿉니다.”

밥을 먹을 때나 술을 마실 때, TV를 볼 때나 누워있을 때, 혜진이 생각이 순간순간 떠오른다.

“예전에는 퇴근할 때쯤 혜진이가 골목 어귀에서 나를 기다렸어요. 그러면 같이 동네 슈퍼로 가서 먹을 것을 사줬어요. 비싼 거 먹으라고 해도 꼭 빵하고 우유 같은 것만 골랐는데…. 지금도 옆에서 조잘거리던 기억이 생생해요.”

줄곧 어둡기만 하던 이 씨의 얼굴은 딸과 함께 보낸 얘기를 할 때만큼은 생기가 돌았다.

이 씨는 혜진이가 사달라고 한 휴대전화를 사주지 못했던 것이 아직도 후회스럽다고 했다.

“친구들이 다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면서 사달라고 졸랐어요. 비싸서 바로 사주지 못하고 중학교 가면 사주려고 했죠. 그때 사줬으면, 그래서 그때 연락만 됐으면….”

딸을 잃은 후 이 씨의 삶도 많이 달라졌다. 가장 먼저 술과 가까워졌다. 비닐 인쇄공장에 다니던 이 씨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밀려드는 딸 생각에 일하다 말고 울기도 했다. 일은 대충 넘어가기 일쑤였고, 결국 지난해 11월 공장을 그만뒀다.

식사도 거의 하지 않았다. 잠도 오지 않아 새벽이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키가 165cm인 이 씨는 요즘 몸무게가 40kg 정도로 1년 새 10kg 넘게 줄었다. 여기에 부인도 다니던 식당 일을 그만두면서 생계가 막막해졌다.

이 씨는 그냥 있을 수 없어 막노동을 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허약해진 몸으로는 힘을 쓸 수 없었다. 철근과 벽돌을 짊어져야 하는 일은 그에겐 버거웠다. 수입이 없어지자 전기요금, 가스요금이 밀리면서 독촉장이 줄줄이 날아들었다. 휴대전화 요금은 석 달째 밀려 전화를 걸지는 못하고 받는 기능만 남았다.

청계공원묘지에서 돌아온 이 씨는 10일 안양시의 집 근처 동사무소에 들러 공공근로 신청서를 냈다. 이날 아침 일찍 부인도 일자리를 찾아보겠다며 집을 나섰다.

의왕=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동아닷컴 서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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