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꽃 한송이에 감동? 요즘 그런…

  • 입력 2009년 3월 3일 02시 57분


여친 줄 초콜릿… 남친 줄 지갑… 10여만 원 거금 선뜻 지출

꽃 한송이에 감동? 요즘 그런 애들이 어딨어요

“10월 21일이 여친(여자친구) 생일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냥 지나갔어요. ‘빼빼로데이’(11월 11일)에 괜찮은 선물을 주기로 결심했죠. 평범한 빼빼로 대신 백화점에서 여친이 좋아하는 다크 초콜릿을 샀어요. 길에서 파는 ‘멜라민 초콜릿’을 여친에게 줄 순 없잖아요? 수제 초콜릿 6만 5000원어치랑 수입 초콜릿 8만 원어치를 샀어요. 선물인데 그냥 줄 수 있나요? 포장 코너에서 3만 원 주고 포장도 했죠.”

고3인 정모 군(18·서울 강남구 청담동)이 이날 쓴 돈은 17만5000원. 성인도 선뜻 쓰기 어려운 액수다. 정 군이 무리를 해서라도 여친에게 값비싼 선물을 하고 싶은 이유는 그저 “잘 보이고 싶어서”란다.

역시 고3인 박모 군(18·경기 안양시 동안구)은 여친과 만난 지 100일째 되던 날 ‘안양 1번가’(안양시의 번화가를 지칭)의 한 액세서리 숍에서 자신과 여친의 이름 이니셜을 새긴 커플링(4만 원)을 선물했다. 금은방도 기웃거렸는데 너무 비싸서 바로 나왔다. 그가 여친에게 준 선물 중 가장 비싼 것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산 4만4000원짜리 곰 인형. 박 군의 한 달 용돈은 5만 원이다.

“여친이 하루는 자기 친구가 그 남자친구로부터 ‘트롬 인형’(모 업체의 세탁기 CF에 나왔던 사람만한 인형)을 받았다고 부러워하는 거예요. 살짝 안습(‘안구에 습기 차다’의 준말로 ‘눈물 난다’ ‘씁쓸하다’는 의미)이었어요. 그거 10만 원 넘을 걸요?”

‘투투데이’(사귄 지 22일이 되는 날)를 시작으로 50일, 100일, 200일을 챙기는 건 기본. 커플의 3대 기념일인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와 크리스마스, 생일 선물까지 챙기다 보면 용돈은 금세 바닥난다. 선물에 목숨 건 학생들은 돈 나올 ‘구멍’을 찾기 시작한다.

고2 김모 양(17·서울 중랑구 신내동)은 지난해 겨울방학 동안 시내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시급 40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월급날, 김 양은 A 브랜드에서 남자친구에게 선물할 털모자와 머플러(총 9만5000원)를 샀다. 커플용으로 두 세트를 사니 19만 원. 월급의 절반이 날아갔다.

김 양은 “한 친구는 평소 좋아하는 인터넷 얼짱 생일 때 15만 원짜리 D 브랜드 지갑을 선물했어요. 쉬는 시간에 친구들끼리 ‘오빠(남자친구) 줄 선물 사야 하는데 돈이 얼마 안 모였어’ ‘○○야∼, 나 돈좀 빌려줘. 용돈 받으면 갚을게’ 이런 얘기 많이 해요”라고 말했다.

초콜릿 공세를 펼쳤던 정 군도 ‘찜’해 놓은 커플링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책을 사야 한다’는 고전적인 수법으로 엄마에게 용돈을 더 받았다. 모자라는 돈은 친구가 하는 전단 돌리기 아르바이트의 ‘대타’로 나서서 충당했다. 커플링은 25만 원이었다.

“그 여친이랑 200일 지나 헤어졌어요. 지금은 ‘내가 그때 미쳤었지’ 생각해요. 멋있게 보이고 싶기도 하고 내가 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증명하고 싶어 선물했죠. 옛날 영화에서처럼 장미꽃 한 송이에 감동하고 그런 애들 없어요. 애들이 얼마나 따지는데요.” 정 군의 말이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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