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보성초교 교장 메모로 되돌아본 전교조의 이중잣대

  • 입력 2009년 2월 13일 02시 59분


2003년 “여교사에 차심부름” 벌떼공격

2009년 조합원 성폭력 의혹엔 침묵만

2003년 충남 예산군 보성초등학교 교감이었던 H 교장은 11일 “그 일에 대해 더는 할 말이 없다”며 서둘러 기자의 전화를 끊었다.

H 교장은 당시 J 임시교사에게 “(교장 선생님 드시도록) 차를 타오라”고 했고, J 교사는 남녀차별이라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남지부를 통해 서면 사과를 요구했다.

전교조의 집요한 사과요구가 이어지면서 이 학교 S 교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H 교장으로부터 기자의 전화 얘기를 전해 들은 듯 S 교장의 부인은 지인을 통해 이런 말을 전해왔다.

“그때와 달리 ‘이번 일’에는 전교조가 너무 조용한데 왜 할 말이 없겠는가. 하지만 유족에게 남은 상처가 너무 크다.” ‘이번 일’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간부 K 씨가 전교조 교사 A 씨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을 말한다.

지난해 5주기 추모식에서 유족 대표로 나선 S 교장의 동생은 “그럴듯한 참 교육으로 위장된 (전교조의) 그 내면에는 도덕이나 교육윤리는 찾을 수 없었으며 오직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협박만이 난무했을 뿐”이라고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S 교장은 전교조 예산지회장이 처음으로 학교를 찾은 3월 21일부터 자살을 선택한 4월 4일까지 자신이 겪은 상황을 ‘사건일지’처럼 다이어리에 꼼꼼히 기록했다.

‘2003. 3. 21 오전 10시경. 전교조 예산지회장 내교(來校). J 교사에 대해 질문. 30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다.’

‘22일 오전 11시 30분경. 전교조 충남지부장과 사무처장 ○○○, 초등위원장 ○○○로부터 전화. 묻는 말에 똑바로 답하라. 허위로 밝혀질 때는 용서하지 않겠다. 그런 말은 법정에 가서 하라…우리가 곧 갈 것이다.’

S 교장은 이 메모 옆에 ‘공갈 협박’이라고 썼다.

‘26일 오후 3시경. 전교조 충남지부 사무실에서 ○○○ 장학사, 보성교장(본인), J 교사, 전교조 사무처장 ○○○이 만남.’

그는 이때 전교조 사무처장으로부터 J 교사의 원상복귀와 함께 “사과문을 써라. 교장 교감 연서명으로”라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27일에는 J 교사에게 전화로 복직 의사를 물었고, 28일에는 직접 J 교사를 찾아가 복직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왔다”고 썼다.

29일자 메모에는 ‘J 교사의 (재임용) 임명장을 우편으로 발송’했고, 30일자 메모에는 ‘J 선생님과 통화. 출근하겠다고 함’이라고 적었다.

그의 메모는 ‘4월. 지방지에 (기사) 나옴’이라는 내용으로 끝났다.

발견 당시 J 교사와 관련해 쓴 4쪽에는 빨간 띠지가 붙어 있었다.

충남교육청 관계자는 “전교조의 문제제기가 과도해 S 교장이 자살한 것인지 인과관계는 여전히 미지수”라면서도 “전교조가 자기 조합원도 아닌 임시교사를 위해 활발히 움직인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법원은 S 교장의 서면 사과를 받기 위해 예산교육청을 항의 방문했던 당시 전교조 충남지부 간부와 전교조 소속 보성초교 교사에게 각각 벌금형을 확정했다.

6년 후. ‘차 심부름 요구’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지만 전교조는 두 달이 지나도록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지도부가 나서서 사건을 은폐하려다 피해 조합원의 항의를 받았다.

전교조는 9일 뒤늦게 자체 진상조사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가 이튿날 곧바로 활동을 중단했다.

민주노총은 11일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사건 재조사에 착수했지만 이번에도 전교조는 참여하지 않았다.

피해자 측이 ‘2차 피해’를 우려해 전교조의 진상조사를 원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전교조 지도부의 성폭력 은폐 의혹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한 조합원은 “이번 일은 조직보호 논리를 앞세울 수 없는 폭력과 인권에 관한 문제”라며 “누가 은폐를 지시했는지 등에 대한 정확한 진상을 알지 못한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12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전교조 문제 대토론회’에서도 전교조의 침묵은 도마에 올랐다.

이계성 올바른교육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예전에는 이런 일에 벌 떼처럼 일어나던 전교조가 민주노총이 개입하니 말 한마디 못하고 있다”며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 조합원에게 혼자 감옥에 가라고 몰아붙인 몹쓸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피해자 측 대리인에 따르면 전교조 간부 P씨와 여성 간부 S 씨, 성폭력 가해자 K 씨가 피해자를 찾아와 ‘(S 씨가 부탁한 게 아니라) 우연히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숨겨준 것처럼’ 진술하라고 윽박질렀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동아일보 사진부 김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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