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성에게 길을 묻다]야마모토 료이치 日도쿄대 교수

  • 입력 2009년 1월 5일 02시 57분


야마모토 료이치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 교수는 “경제위기 해법을 녹색경영에서 찾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야마모토 료이치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 교수는 “경제위기 해법을 녹색경영에서 찾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지구촌 뇌관은 ‘환경’… 금융위기처럼 한순간 폭발할 수도”

《지구촌을 휩쓴 경제위기로 세계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듯하다. 세계가 이 터널을 벗어나 다시 성장을 꾀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에코이노베이션의 창시자이자 지구온난화 방지 전도사인 야마모토 료이치(山本良一·63) 도쿄(東京)대 생산기술연구소 교수는 ‘녹색경영’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20세기의 기능 만능주의를 버리고 환경과 인간 위주의 가치관을 회복해 공존과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 지난해 12월 하순 도쿄대 고마바(駒場) 캠퍼스 내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

“기후변화로 30년내 국제분쟁 일어날 가능성

환경 보존하는 ‘質의 성장’만이 인류가 살길

한국, 식량-에너지 자급자족 전략으로 바꿔야

李대통령 ‘녹색성장 계획’ 발빠른 대응 주목”

―미국발 금융위기로 각국이 고통을 겪고 있다.

“금융위기는 인간의 탐욕을 좇는 자본주의가 한계에 도달해 자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도 마찬가지다. 개인이나 국가의 욕심만을 좇아 마음껏 화석연료를 사용하다가는 지구환경은 어느 순간 임계치에 이르러 폭발하게 된다. 그나마 금융구조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니 힘을 합치면 어느 정도 고쳐낼 수 있지만 지구환경은 일단 붕괴가 시작되면 돌이킬 수가 없다. 지금이야말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성장과 환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게 가능한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경제성장이 무엇을 말하는지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자원이나 환경을 마구 써버리는 일’을 뜻한다면 그런 성장은 멈춰야 한다. 지구는 유한하기 때문이다. 반면 양 대신 질을 성장시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식이나 문화, 복지에서의 성장 등이 그것이다. 가령 우주의 저 멀리에 뭐가 있나. 생명의 기원은 무엇인가를 파헤치는 것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되 환경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가 우려된다.

“단기적으로는 그렇겠지만 길게 보면 오히려 환경 에너지 분야에 대한 집중투자나 규제완화, 적극적인 재정 투입 등으로 불황을 타개하려는 흐름이 형성될 거다. 이미 세계가 새로운 모델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불황, 온난화, 에너지 안전보장의 문제를 동시에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10년간 클린에너지 분야에 전략적으로 투자해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주목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그린 성장’을 새로운 경제성장 전략의 패러다임으로 삼고 향후 10년간 1조 달러의 시장을 창출하겠다고 했다. 한국은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대응이 빠르다. 세계적인 그린 성장을 둘러싼 경쟁 속에서 한국이 일본을 추월할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역할은….

“20년 내에 에너지 수출국이 된다면 일본은 환경선진국이라고 자랑할 수 있다. 그것이 원자력이든 태양광이든 화석연료가 아닌 에너지를 개발하고 이 기술을 세계에 공여해야 한다. 또 일본은 에코 상품을 세계에 수출함으로써 공헌할 수 있다. 단, 에코 상품으로 돈을 벌겠다고 나서면 안 된다. 이윤은 낮추고 개발도상국에 기술을 공여하는 식이 돼야 한다.”

―한국은 아직도 발전대열에 선 나라다.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도 일본과 같은 방향으로 키를 돌려야 할 것이다. 한국은 일본과 조건이 비슷하다. 국토는 작고 사람은 많은데 인구는 줄고 있다. 최소한 식량과 에너지를 자급자족하고 품질 높은 지식집약적 산업과 문화를 수출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의 한국 성장모델은 10∼20년 전 일본과 같은 낡은 것이었다. 수출입국은 어딘가에서 한계에 이른다. 이미 중국 등 개발도상국의 부상으로 단순제조업은 비용과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없다. 친환경으로 차별화해야 한다.”

―전 사회를 친환경으로 전환하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비용은 곧 새로운 산업의 창출이라고 보면 된다. 2050년까지 세계의 온실가스를 50% 줄이기로 한 세계의 합의 내용을 실천하는 데 48조 달러의 비용이 들지만 이는 48조 달러어치의 거대한 환경에너지 산업의 출현을 뜻하기도 한다. 현재 66억 명인 세계인구는 2050년이면 90억 명이 된다. 조화롭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좋은 얘기지만 현실에서 인간이나 국가는 매우 이기적이다.

“20세기 국가정책은 성악설에 기초했지만 21세기는 성선설에 입각해 행동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다. 경제도 환경 문제도 글로벌화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나라가 이기적인 이유에서 이산화탄소 감축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이는 스스로 자기 목을 죄는 게 된다. 미국 설빙데이터센터(NSIDC) 연구에 따르면 여름 북극 해빙이 소멸되면 북극권 온난화가 가속화하고 중위도의 비바람 경로가 변해 겨울 서남 유럽의 강우량이 늘고 미국 서부는 강우량이 줄며 북대서양 담수화 유입 등으로 지구 규모의 순환이 흐트러지게 된다. 글로벌 환경하에서는 자기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행동을 하면 거꾸로 큰 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먼저 지구를 오염시켜 놓고 ‘이제는 환경’을 내세우는 건 불공평하다고 지적한다.

“과거의 책임에 대해서는 분명 그렇다. 선진국이 80%, 개도국은 20% 정도 될까. 하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공동의 책임이 있다. 현재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미국만큼 많다. 우선은 1인당 연간 배출량을 똑같이 하고 선진국은 지금까지 내놓은 분량에 대해서는 배출권을 사거나 기술을 공여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작은 득실을 따지다 보면 자칫 모두가 패자가 된다.”

―일본에서 ‘에코가에’란 선전이 많다. 환경을 위해 가전제품을 에너지 절약형으로 바꾸라는 뜻이다. 쓰레기도 생기고 낭비도 심한 것 아닌가.

“라이프사이클 어세스먼트(LCA)를 모르고 하는 생각이다. 책상이나 의자처럼 진보가 없는 것은 길게 쓰는 게 좋지만 기술이 진보하는 제품은 단기에 바꾸는 쪽이 좋다. 에어컨은 5년, 냉장고는 10년 정도 사용했으면 바꿔줘야 한다. 쓰레기는 모두 재활용할 수 있다. 크고 길게 봐야 한다.”

―대개의 환경론자들과 달리 선생은 원자력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원자력은 효율 높은 저탄소 에너지다. 미래 에너지로서 원자력을 기피하는 사람들은 온난화지옥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의 문제는 핵확산 우려와 폐기물 관리인데 이는 세계가 협조해 잘 관리한다면 해결될 수 있다. 지구온난화가 불러올 파국의 심각성을 안다면 원자력은 적극 활용돼 마땅하다.”

―한국에도 번역 출간된 ‘기후변동+2℃(지구온난화 충격리포트)’는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07년 이를 업데이트한 ‘온난화지옥’, 지난해 12월 초 다시 ‘온난화지옥 버전2’를 펴냈는데….

“위기가 더 빨리 다가오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속속 나왔기 때문이다. NSIDC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북극 해빙의 면적은 관측사상 최소 기록이던 지난해에 비해 면적은 약간 늘었지만 체적에서는 지난해보다 줄었다. 미국해군대학원 연구에서는 이 같은 체적감소경향이 계속되면 5년 뒤인 2013년 여름 북극해빙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예측한다. 이는 기후변동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속도다.”

―지구온난화의 장래를 어떻게 보고 있나.

“결국 안전보장 문제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독일 지구환경변동학술자문위원회는 2007년 ‘안전보장상의 리스크로서 기후변동’이란 보고서를 연방정부에 제출했다. 15∼30년 내에 기후변동에 따른 물 부족이나 곡물수확량 감소로 지역분쟁이나 환경난민 등 안전보장상의 위험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으며 국제분쟁예방을 위한 예산 지출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기후전쟁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기후변동이 어떻게 지역분쟁이나 국가 간 분쟁으로 파급될 수 있는지 보려면 최근 저명한 군사평론가인 캐나다의 그윈 다이어 씨가 내놓은 ‘기후전쟁’이 참고가 된다. 이 책에서는 사이클론 탓에 매년 100여만 명이 사망하는 방글라데시가 터부시해 온 ‘지구공학’에 손을 대는 것으로 돼 있다. 물을 둘러싼 이스라엘과 이란,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 식량위기에 의한 중국 내전과 러시아와의 국경분쟁도 등장한다. 시대 배경으로는 불과 10∼20년 뒤를 잡고 있다. 이런 일이 모두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상상력을 자극해 주는 측면이 있다. 온난화는 안전보장 문제로서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인류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야마모토 료이치는

환경-성장 조화 ‘에코이노베이션’ 창시자

‘녹색경영의 전도사’라 불리는 그지만 원래 야금학을 전공한 재료공학자였다.

1990년 친환경소재를 연구하는 ‘에코 머티리얼(eco-materials)’ 핸드북을 감수하면서 환경에 눈을 떴다. 그 뒤 제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하는 ‘라이프 사이클 어세스먼트(LCA)’ 연구를 시작했고 에코 디자인을 창시했다.

도쿄대 교수 말고도 일본 LCA학회장, 환경경영학회장 등 현재 29개 직함을 갖고 있다. 이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해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요즘 그가 가장 중시하는 활동은 친환경상품 매매를 권하는 ‘국제 그린 구입 네트워크’. 올 10월 서울에서 에코 상품전시회와 함께 국제학술회의도 열 계획이다.

○ 주요 약력 △1946년 이바라키(茨城) 현 출생. △1969년 도쿄대 공학부 야금학과 졸업 △1974년 도쿄대 대학원 공학계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1974년 독일 막스플랑크 금속연구소 객원연구원 △2001년 도쿄대 국제산학공동연구센터장 △현재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