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대란 다시오나]<下>정규직·신규채용…안전지대가 없다

  • 입력 2008년 11월 12일 02시 56분


최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채용박람회에 구직자들이 길게 줄지어 있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최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채용박람회에 구직자들이 길게 줄지어 있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下> 정규직도 신규채용도 안전지대가 없다

“서너달 뒤엔 감원 태풍” 금융권 벌써 수백명씩 희망퇴직

내수 악화에 건설 - 자동차업계 기술직까지 이직 내몰려

“구조조정 한파 이미 시작… 눈치보고 있는 업체 더 많아”

기업 45%만 “올해 채용계획 있다”… 그나마 취소 잇따라

비정규직에게 해고대란이 다가오고 있지만 정규직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은행, 증권계에는 이미 감원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20만 채 이상 미분양 아파트가 쌓여 있어 일부 회사의 부도설까지 나도는 등 주택 건설업계도 인력 구조조정을 피해 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시장과 내수시장이 모두 얼어붙으면서 비정규직과 정규직,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가릴 것 없이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매서운 해고 한파가 불어닥칠 조짐이다. 내년 경영계획을 마무리 손질하고 있는 기업들은 금융위기 이전에 발표한 채용 계획을 취소하거나 유보하는 등 신규 채용시장도 줄어들고 있다.

○ 금융권에는 이미 해고 시작

지난해 7월 코스피가 사상 최초로 2,000 선을 돌파하는 등 유례없는 활황을 맞았던 증권업계는 이제 인력 감원의 진원지로 변했다.

하나대투증권은 12월 하나IB증권과의 합병을 앞두고 12일부터 100∼150명 규모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로 노조와 최종 합의했다. 형식은 희망퇴직이지만 대상이 되는 장기 근속자들은 이미 인사 담당 부서에서 퇴직 권고 또는 용퇴 압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내용상 구조조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다.

다른 증권사들은 아직 발표는 하지 않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인력 감축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대부분의 증권사가 신규 채용을 사실상 중단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아직까지는 증권사들이 인력 감축에 대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지만 요즘 같은 침체 상황이 3, 4개월만 더 지속되면 증권업계에 감원 태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은행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SC제일은행은 지난달 본부 인원 143명을 지점으로 이동시켰고 193명으로부터 희망퇴직 신청서를 받았다. 이 은행 관계자는 “올해 들어 본부 인원이 280여 명 줄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본부 근무인원을 줄일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 밖에 신한은행은 지점 100여 곳을 통폐합할 계획이며 농협중앙회는 본부 인원 20%를 다른 지점이나 사업부서로 옮기도록 했다.

○ 건설 자동차 업계도 감원 바람

부동산경기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는 건설사들도 조만간 감원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대형 건설사인 A사는 기존 간부급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해 총원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건설사 관계자는 “희망퇴직을 실시해도 퇴직금 등이 기대만큼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B사는 최근 토목사업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기술직 직원을 영업파트로 발령 내는 방법으로 이직을 종용하고 있다. 자금난이 심해지면서 퇴직금을 줘야 하는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도 힘들어지자 전공 분야가 아닌 곳으로 발령을 내거나 승진을 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감원을 유도하는 것.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위축된 자동차 관련업계도 같은 처지다. 쌍용자동차는 내년 상반기까지 정규 직원 및 사내 협력업체 직원 350명에 대한 유급휴가를 실시하고 있으며, 사무관리직도 안식 유급휴직제 실시를 검토하고 있다. 이 회사 노사는 최근 퇴직을 희망하는 유급휴직자에게 120일 치 급여를 지급한다는 내용의 희망퇴직 계약서에 합의했다.

금호타이어는 팀장급 이상 장기 근속자를 대상으로 연봉을 100%까지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 신규 채용 시장은 꽁꽁

기존 인력도 줄이는 분위기에서 신규 채용이 활발할 리 없다. 채용정보업체 인크루트가 올해 9월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채용계획을 조사한 결과 올해 안에 채용 계획이 있다고 답한 기업이 전체의 절반(45.6%)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견 기업은 올해 신규 채용을 10.8%, 중소기업은 36.0% 줄일 것으로 조사됐다.

신입사원 채용 계획을 취소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2003년부터 해마다 신입사원을 뽑아 온 GM대우는 올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을 취소했다. 지난해 85명의 신입사원을 뽑았던 한국타이어도 올 하반기 채용을 유보한 상태다.

현대·기아자동차는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내년 사업 계획을 확정짓지 못해 올해 하반기 채용 규모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이 같은 인력 시장 불황 속에 9월 신규 일자리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1만2000명 늘어 7개월 연속 정부 목표치인 20만 명에 못 미쳤고, 12일 발표되는 10월 신규 일자리 증가폭은 금융위기 상황이 반영돼 10만 명을 밑돌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노사 한발씩 양보 고용 안정 꾀해야”

하나銀 임금동결-고통분담으로 위기 대처

올해 노사화합선언 1629건… 작년의 3배

정부대책도 성장성 높은곳 선택-집중 필요

하나은행 노사는 4월 16일 서울 중구 을지로 본점에서 노사화합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김창근 노조위원장은 “은행이 위기에 처하면 고용도 불안해진다”며 “하나은행의 재도약과 비상을 위해 어떤 고통도 감수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임금동결을 선언했다.

당시 하나은행은 정부의 법인세 1조7000억 원 부과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은행이 비정규직 외주화를 시도하다 반발을 샀고 노조가 전 행장을 4차례나 서울지방노동청에 고발할 정도로 노사 갈등이 극심했다. 하지만 노조가 올해 단체행동과 임금인상을 자제하겠다고 밝히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하나은행 장기용 부행장보는 11일 “올해 정규직 900여 명을 채용했는데 이는 시중은행 중 가장 많은 수치”라며 “노사합의를 통해 460여 명의 비정규직 직원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나은행은 최근 8년 만에 적자를 냈지만 구조조정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법인세 문제도 은행의 기대대로 해결됐다.

노조의 임금인상 자제, 기업의 고통 분담 및 경쟁력 강화를 통해 고용을 안정시킨 사례는 적지 않다. 노동부에 따르면 9월 28일 현재 노사화합 선언은 162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노사화합 선언이 늘어난 것은 올해 기름값 폭등,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자금 경색, 내수 부진 및 수출 감소 등 악재(惡材)가 이어지면서 ‘회사가 살아야 나도 산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최근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3%대로 떨어지는 등 경기 침체가 예고되면서 올해 말부터는 고용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임금인상을 미루더라도 고용을 안정시키면서 침체기를 견뎌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도 눈앞에 닥친 고용대란을 막기 위해 일자리 관련 정책을 전방위적으로 쏟아냈다.

정부의 대책은 크게 △고용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SOC) 지출 확대 △비정규직 보호법 개정 등 규제완화를 통한 고용 유도 △청년, 여성, 노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구직 지원 등으로 나뉜다.

정부는 각종 정책을 통해 9월 11만2000명으로 떨어진 연간 신규 취업자를 내년에 20만 명 내외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워 두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상 정부의 대책만으론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는 지적도 많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일시적이고 중복된 것이 많아 원하는 만큼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며 “금융보험, 복지서비스 등 성장성이 높은 산업을 지원해 이를 토대로 고용을 늘리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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