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자금 자기 돈처럼 투기…자금출처 노출 우려 살해청부”

  • 입력 2008년 9월 27일 03시 01분


경찰, 前 대기업직원 영장 재청구키로

모 대기업 총수의 개인자금 180여억 원을 관리하던 A그룹 전 자금담당부장 이모(40) 씨가 살해 청부를 한 것은 경찰이 24일 발표한 것처럼 조직폭력배에게 맡겼던 80억 원을 떼이게 되어서가 아니라, 자금 출처 등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26일 서울지방경찰청과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이 씨는 자신이 관리하고 있던 A그룹 회장의 개인자금으로 박모(38·구속기소) 씨와 함께 온천개발사업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지면서 박 씨가 “사업 및 자금 관련 내용을 폭로하겠다”며 이 씨를 협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23일 협박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 씨의 공소장에 따르면 박 씨는 2006년 7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이 씨에게서 170억 원을 투자받아 이 중 105억 원으로 인천 강화군 일대의 토지를 사들였고, 두 사람은 이 지역의 온천개발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초 이 씨가 박 씨를 사업에서 배제하자 이에 앙심을 품은 박 씨는 전화로 “일만 시켜먹고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 네가 자금 운용과 관련해 나에게 얘기해준 것을 모두 폭로하는 등 가만두지 않겠다”며 이 씨를 협박했다.

검찰은 보강 수사과정에서 “이 씨가 평소 서울 강남의 B, S 등 고급 술집을 드나들면서 자금에 관한 얘기를 하고 다녔으며, 심지어 A그룹 회장 행세를 한 적도 있다”는 관련자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 27일 새벽 서울 강남구 논현동 도로에서 이 씨의 부탁을 받은 정모(37) 씨가 오토바이 퍽치기 수법으로 박 씨를 살해하려 했던 것은 박 씨가 갖고 있던 모종의 자료를 빼앗으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박 씨는 사건 당시 이 씨가 평소 자금과 관련해 언급했던 내용이 담긴 자료와 수표 1억1000만 원이 들어 있는 가방을 갖고 있다가 이 씨의 청부를 받은 정 씨에게 빼앗겼다.

한편 검찰은 박 씨와, 2차 살해 청부 과정에서 박 씨를 납치 감금했던 윤모(39) 씨를 23일 각각 협박,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또 박 씨를 살해하려다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힌 정 씨 등 3명을 강도상해혐의로 26일 구속기소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 씨에 대해서도 경찰은 조만간 구속 영장을 다시 신청할 계획이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살인을 부탁한 적이 없으며 박 씨와 나 사이의 갈등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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