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격려 편지’ 교사-초등생 빗발치는 항의 전화로 곤욕

  • 입력 2008년 6월 28일 02시 58분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이명박 대통령에게 광주의 초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격려 편지를 보냈다가 항의전화와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있다.

27일 광주 S초등학교에 따르면 이 학교 6학년 담임인 A(26) 교사와 학생들이 23일 이 대통령에게 격려 편지를 보낸 사실이 공개되면서 학교에 수십 통의 항의전화가 걸려 왔다.

항의전화를 한 사람들은 대부분 학부모라고 밝힌 뒤 해당 교사의 정치적 편향성과 자질을 문제 삼았다.

이 학급 학생 중 일부는 일기를 통해 “친척 등으로부터 편지를 보낸 것이 잘못됐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편지 내용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면서 포털 사이트에는 교사와 학생들을 비난하는 댓글이 계속 올라온다.

한 누리꾼은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쓴 편지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선생짓 하려거든 제대로 하세요”라고 말했다.

일부 누리꾼은 “문장, 맞춤법, 어휘선택을 보면 아이들이 쓴 것이 아니란 것이 드러난다” “진실을 말해야 하는 선생이…네 배후 세력이 누구냐”며 조작설까지 제기했다.

A 교사는 “국어시간에 ‘알맞은 근거를 들어 주장하기’란 단원과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연계시켜 수업을 진행했다”며 “어린이 기자들을 뽑아 광우병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토론을 벌인 뒤 전체 의견을 수렴해 편지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대통령에 대해 심한 욕을 하고 심지어 ‘대통령이 일본인인데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해 한국인을 죽이려 한다’는 괴소문까지 돌아 진실을 알리고자 했다”고 해명했다.

A 교사는 이어 “‘대통령님 힘내세요’, ‘대통령님을 믿습니다’라는 응원 문구는 아이들이 국민의 마음을 이해해 달라는 취지로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포털 사이트에 수많은 악성 댓글이 달려 학생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으면 청와대에서 편지 공개 여부를 물어왔을 때 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담임교사의 양해를 얻어 비실명으로 공개한 것인데 이런 파장이 생겨 마음이 아프다”며 A 교사의 뜻을 받아들여 게시물을 삭제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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