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언어영역 (2) 현대시

  • 입력 2008년 4월 28일 02시 59분


시는 결국 짧은 이야기… 서사적으로 이해하자

《수험생들은 언어영역 문학제재 중 시(詩)가 제일 어렵다고 말한다. 시가 고전시가와 복합지문으로 출제되면 더욱 어렵다고 한다. 왜 그럴까? 첫째, 시에 대한 정확한 이론적인 배경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출제자의 의도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셋째, 문두(問頭)와 <보기>, 답지(答肢)를 정확하게 독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문 자체에 대한 해석보다도 이 세 가지 과제를 먼저 해결해야 문제가 풀린다. 이 중 둘째와 셋째는 서로 통한다. 시 접근법 공부의 필수 요소는 함축적 의미, 객관적 상관물, 역설, 반어 등의 용어를 비롯한 이론 공부다. 수능 언어영역 가운데 현대시의 접근법에 대해 2회에 걸쳐 알아보자.》

시 감상의 두 번째 원칙-서사화(敍事化)

시(詩)가 별거냐. 소설(小說)과 같다. 인물(人物), 사건(事件), 배경(背景), 제목(題目)을 중심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른바 서사화(敍事化)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 수험생들은 은근히 국어 교과서를 등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교과서에는 우리가 그토록 힘들어하는 시에 대한 감상방법이 잘 나와 있다. 1학년 때 배우는 국어(상) 교과서로 돌아가 보자. 6단원은 ‘노래의 아름다움’으로 ‘청산별곡’ 외 5편의 시가 실려 있다. 더불어 학습의 요체로 시 감상의 핵심은 음악성, 형상성, 함축성 등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세 가지가 시의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그리고 심화학습에는 백석의 시 ‘여승(女僧)’이 실려 있다. 이 시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몇 개의 학습활동 문제가 제시되어 있다. 이것을 통해 시 감상의 실제를 한번 보자. 서사화의 예이다.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 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섭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 ‘여승(女僧)’

이 시는 1936년 시집 ‘사슴’에 수록된 작품으로 역순행적 방법으로 시상을 제시한다. 한 여승의 비극적인 삶을 소재로 여승의 이미지를 일제의 수탈로 인해 파괴된 가족 공동체의 모습과 연결한다. 1연은 여승의 현재 모습이며 2∼4연은 한 여인이 여승이 되기까지의 삶의 궤적을 더듬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 대한 서지적인 이해가 없더라도 다음과 같은 학습활동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에 대한 이해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학습활동]

이 시의 내용을 시간 순서에 맞게 이야기로 재구성해 보자.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힘들고 가난하게 살던 일제강점기에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의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고 여인은 어린 딸과 함께 금광이 있는 산 속 마을에서 옥수수를 팔며 힘들게 살았다.(2연) 그런데 십 년이 지나도록 돈을 벌러 간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마저 죽고 말았다.(3연) 더 이상 힘겹고 외로운 생활을 견딜 수 없었던 여인은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었고,(4연) 여전히 쓸쓸한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1연)

이는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시를 ‘서사적’으로 이해하는 한 방법이다. 시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구성 요소 즉, 인물·사건·배경(소재)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시는 한 마디로 ‘운율을 가진 소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시를 학술용어로 ‘이야기 시’라고 하는데, 이런 시는 이야기 자체의 전달이 목적이 아니라 그 이야기의 정서 환기력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서정시의 하나로 본다. 물론 시가 다 이야기 시는 아니고, 이것이 시 해석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출발이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가 비롯된다. ‘불경처럼’ 이란 말을 보자. 조선시대 이후 불교가 핍박을 받는 종교였다는 사실, 천한 사람을 위무하는 종교라거나 하는 사실, 삶이 바로 고해라는 불교 교리가 서로 중첩되면서 거기에서 ‘서러움’의 정서가 환기된다는 사실은 좀 더 깊숙한 감상을 필요로 한다. 더불어 ‘금덤판-금광(金鑛)’에서 김유정의 소설 ‘금 따는 콩밭’이나, 이기영의 ‘광산촌’,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나타나는 ‘황금광 시대’를 떠올린다면 시 해석이 완성된다.

시 감상의 세 번째 원칙-문두(問頭)와 답지(答肢)에 주목!

시에 대한 문제를 풀 때에는 세세한 시구의 이해나 비유와 상징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사실 시어를 보면서 시해석의 필수인 “이것은 긍정적 시어네?(+), 이것은 좋지 않은 것이구나.… 부정적 시어(―)” 이 정도는 편하게 할 수 있으나 비유와 상징 등을 스스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시험을 대비한 해석이라면 그런 것들은 시험지에 충분한 힌트가 주어진다. 특히 “∼적절하지 않은 것은?” 등의 부정 질문이라면 답지 5개 중 4개는 맞는 것이니 해석에 도움이 된다. 더군다나 <보기>가 있다면 더더욱 고마운 일. 반드시 문제를 먼저보아야 출제자의 의도와 해석의 방향을 가늠한다. 2008학년도에 김수영의 ‘사령(死靈)’을 소재로 출제된 부정 질문의 문제를 보자.

17.<보기>를 참고하여 (나)를 이해하고 보인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 기〉

김수영은 1955년 6월 성북동에서 서강으로 이사하였다. 서강에서의 생활은 피폐해진 그의 몸과 마음을 점차 회복시키고, 그로 하여금 오랜만에 안정을 누리게 했다. 그가 이전과는 달리 생활에 대한 긍정을 시에 담아내었던 것도 그러한 안정과 관련이 깊다. 하지만 생활에 대한 시인의 긍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줄곧 이상과 현실을 문제 삼으면서 일상에 매달려 살아가야 하는 자의 설움과 비애를 느껴 왔던 시인은 다시 생활의 안정 속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겨 내려고 애를 썼다. 이러한 서강에서의 생활은 1959년에 발표된 ‘사령(死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①‘자유’는 시인이 추구하던 이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어.

②‘고개 숙이고 듣는 것’은 이상을 묵묵히 실천하려는 태도를 보여 주는 것이겠어.

③‘고요함’은 생활의 안정 속에 빠져 있는 시인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겠군.

④‘욕된 교외’는 서강에서의 생활에 대한 시인의 성찰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

⑤‘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일상에 매달려 살아가야 하는 자의 설움과 비애를 함축하는 말이겠군.

이를 보면 ‘사령’에 대한 이해가 훨씬 쉽다. 설령 이 시를 배우지 않았어도 이 문제를 먼저 읽으면 해석의 반은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수능 문제에서는 시를 ‘감상(鑑賞)’하기보다는 주어진 기준에 따라서 ‘독해(讀解)’하기를 원하므로 문두, 답지, <보기>가 훌륭한 힌트가 된다.

시 감상의 네 번째 원칙-초점이 무엇인가

시의 초점은 흔히 인물 아니면 사물, 혹은 상황이다. 어느 것인지 파악하려면 먼저 함축적인 의미를 고려하지 말고 표면적인 의미대로 읽어 감상을 해 본다. 시의 내용상 역사적 상황과 관련되는 시인가, 개인적인 삶과 관련되는 시인가를 생각해 본다.

만약 인물 중심의 시라면 현재 화자가 어떤 상황에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 후에 인물의 정서를 파악하고, 표현 기법을 파악하며 다른 작품과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는 마지막 연에 주제를 두는 경우가 많기는 하나 시는 가급적 연 단위로 읽어 가고, 그동안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발견해 가야하며, 이미지의 연계성이나 시어의 내용적 연계성을 관찰해야 한다. 만약 사물 중심의 시라면 사물의 특징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화자의 태도를 파악하며 그 후에 표현 기법과 다른 작품과의 연관성을 파악하면 된다. 자연물이 소재가 되어 있는 시는 대부분 그 자연물을 통해서 화자의 내면을 표현하거나 인간사를 표현하고 있다.

시의 초점 예시
대상 중심의 시인물 중심의 시
갈대-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고향길-신경림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아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 마시고
가위소리 요란한 엿장수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감석 깔린 장길은 피하려네
내 좋아하던 고무신집 딸아이가
수틀 끼고 앉았던 가겟방도 피하려네
두엄더미 수북한 쇠전마당을
금줄기 찾는 허망한 금점꾼되어
초저녁 하얀 달 보며 거닐려네
장국밥으로 깊은 허기 채우고
읍내로 가는 버스에 오르려네
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이에게만
삶은 때로 애닯기도 하리.
긴 능선 검은 하늘에 박힌 별 보며
길 잘못 든 나그네되어 떠나려네

결론

결국 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 문학을 감상할 때 적용해야 할 기본 원리들을 충분하게 숙지해야 하며, 주제나 소재, 시적 화자의 정서나 태도가 비슷한 작품끼리 모아서 학습을 해야 한다. 모든 시의 모티브는 대상(對象)의 부재(不在)나 결핍(缺乏) 상황에 있음을 명심해야 하며, 모든 문제의 출발은 시적 화자의 정서(情緖)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풀 때에는 어떠한 문제나 주제(主題)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물론 시는 근본적으로 심상(心象)을 중심하므로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은 필수이다. 시도 비문학처럼 제시문에서 근거를 찾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시 감상의 체크 포인트
○ 시적 자아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 -상황(狀況)
○ 거기서 무얼 보고(하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사고(思考)
○ 시적 자아는 어떤 처지(입장)에 놓여 있는가? -상황(狀況)
○ 그 처지에서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가? -생각
○ 대상을 보고 있다면 어떠하다고 생각하는가? -정서(情緖)

이만기 엑스터디 언어영역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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