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870살 은행나무를 살려라”

  • 입력 2008년 4월 8일 02시 53분


서울 도봉구 방학동 연산군 묘역 앞에 고풍스러운 은행나무(사진)가 있다. 높이 25m, 둘레 10.7m.

수령(樹齡)은 870년으로 추정된다. 1968년 서울시가 보호수 1호로 지정했는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됐다.

이 나무는 길이 1.2m의 하지(下枝·아래로 향한 가지)가 있어 예로부터 아들을 낳게 해 주는 나무로 사랑받았다.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는 불이 난다는 전설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1년 전인 1978년에 화재가 났다.

봄을 맞아 이 나무에는 어김없이 움이 트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는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는 동네 주민의 정성이 배어 있다.

한때 고사(枯死)될 뻔했던 방학동 은행나무는 조만간 ‘은행나무 정자마당’이라는 새 집의 주인이 된다.

도봉구는 863m²였던 은행나무의 공간을 2066m²로 늘리는 공사를 5월 말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7일 밝혔다.

이 나무에 이상이 생긴 것은 1990년대 초반. 급기야 1995년 병에 걸려 가지가 마르고 잎이 시들자 “나무를 살려 달라”는 민원이 구청에 쇄도했다.

도봉구는 네 차례에 걸쳐 썩은 가지를 제거하고 영양제를 주사했지만 효과가 적었다.

문제는 나무 좌우의 아파트와 빌라였다. 콘크리트에 막혀 뿌리가 뻗지 못하고,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배수가 원활하지 못했다.

구청은 지난해 4월 오른편에 있던 빌라 두 동(棟) 12가구를 매입한 뒤 철거했다. 올해는 나무 왼편의 신동아 3단지 아파트 담장을 허물기로 주민들과 합의했다. 몇몇 주민은 사생활 침해를 우려해 반대했지만 전체 210가구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했다.

구는 담장을 허문 자리 633m²를 은행나무와 연결된 녹지로 만들 계획이다. 이 면적을 합치면 은행나무 정자마당은 2066m²로 늘어난다.

도봉구 관계자는 “최근 들어 배수와 통풍이 잘되지 않아 뿌리에 이끼가 끼는 등 생육이 썩 좋지 않았다. 장애물을 모두 없애면 예전처럼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10여 년 전부터 매년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드리고 동네잔치를 연다. 구는 은행나무 북쪽 100m 떨어진 곳의 연산군 묘역과 합쳐 근린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주민의 힘으로 나무를 지켜낸 사례는 또 있다.

송파구 문정동 주민들은 시 보호수인 느티나무 2그루(수령 530년) 옆에 예정된 문정1동 주민센터 건립 계획을 백지화시켰다.

송파구는 주민의 뜻을 받아들여 지난해 11월 보호 데크를 설치하는 등 느티나무 주변을 정자 마당으로 조성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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