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대입논술, 이것만은 알아두자]2008 대입논술 해설

  • 입력 2008년 3월 17일 02시 53분


▼2008학년도 한양대 인문계 정시논술▼

(문제는 스카이에듀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수도권 집중화, 왜 무엇이 문제인가

문항1

제시문 (나)에서 주장하는 ‘수도권 집중화’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문 (가)와 (다)를 통하여 비판하는 문제입니다.

(가)는 통신과 철도의 발달이 물리적 거리감을 축소시키고, 국가 간 커뮤니케이션을 확대시켜서 인간 활동의 시·공간적 압축을 가져왔다는 내용입니다. 한편, (다)는 시공간의 압축으로 과거에는 지방에서 이루어지던 기능들이 서울로 집중하는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에서 명백하게 과거에 없다가 새롭게 등장한 집중화 현상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나)는 ‘틀렸다’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너무 싱겁게 풀려버린 셈인데, 상황이 그렇게 간단해 보이진 않습니다. (나)의 이야기도 분명히 맞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KTX가 등장하면서 서울과 지방이 1일 생활권이 되었고,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서울과 지방 간 원격 커뮤니케이션이 용이해져 지방 거주에 대한 거부감은 옛날보다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실시해온 행정수도 건설이나 공공기관 이전 등 분산화 정책도 이런 교통·통신 기술의 발전 덕분에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됐습니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서울 인구의 수십 만 명 정도가 지방으로 빠져나간다면 분명히 집중화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제 문제가 복잡해졌습니다. 집중화가 해소되면서 동시에 강화되는 모순적인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순의 해결 방법은 개념을 세분하는 것입니다. 집중화에도 여러 차원이 있어서 어떤 차원에서는 집중화가 강화되었는데, 또 다른 차원에서는 집중화가 완화되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이지요. (나)에서 언급된 집중화를 ‘인구’로 분류하고, (다)에서 언급된 집중화를 ‘기능’으로 분류하면 해결이 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인구는 분산되었지만 기능은 거꾸로 집중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다)에서 말하는 기능이 도시가 가지는 모든 기능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활용품을 구입하거나, 영화 관람을 하거나, 학기 중에 학원을 다니는 것 등과 일상적인 기능은 여전히 서울이 아니라 해당 지방도시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대다수의 기능은 여전히 인구 이전과 함께 지방으로 함께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이제 정리해 보죠. (가)에서 말하는 시공간의 압축으로 (나)에서 말하고 있는 관공서나 공공기관 이전과 같은 분권화 및 인구분산정책은 용이하게 수행될 수 있게 되었지만 (다)에 언급된 것처럼 일부 기능은 오히려 과거보다 서울에 집중되었습니다. 따라서 (나)에서 말하는 집중화 해소는 일정한 한계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항2

지문 (가)와 (나)의 핵심 주장을 요약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에 나타난 갈등 상황을 극복할 방안을 제시하라는, 비교적 간단한 문제입니다.

(가)는 사회탐구 ‘정치’ 과목에서 보는 내용과 비슷하네요.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데 이 욕망을 충족시켜 줄 사회적 가치는 한정되어 있어서 필연적으로 갈등이 발생한다는 내용입니다. (나)는 (가)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려면 사회적 가치에 대한 권위적 배분이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 개인과 집단이 사적인 타협에 의해서 스스로 해결한다면 사회의 권위적 개입 없이도 갈등이 해소되겠지만 복잡한 사회에서는 그것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말미에서 이러한 권위적 결정 메커니즘이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정당성 없는 권위적 결정은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할 것이고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증폭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에 나타난 갈등 상황은 무엇인가요? 농장주와 노동자들의 갈등입니다. (다)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농장주에 의해 비참한 노예처럼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농장주로부터 농장을 빼앗아 노동자들도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갈등 해소의 방법은 (나)의 방법과 어긋납니다. 사회 구성원 전체의 동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만의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바람직한 방법은 농장주와 노동자가 합의한 원칙에 따라, 그들이 권한을 위임한 중립적인 제3자가 결정한 대로 따르는 것이 되겠습니다.

문항3

문제의 요구는 ‘문화 소비에 대한 지문 (가), (나), (다)에 나타난 학자들의 견해를 비교하고 지문 (라)에서 제시된 도표를 활용하여 학자 B와 C가 학자 A의 견해를 각각 어느 정도 타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지를 논술하라’는 것인데, 풀이가 복잡하고 난도도 상당히 높은 문제입니다.

(가)의 학자 A는 사회 경제(구조)적 혹은 계급적 요인이 문화 소비의 차별화를 낳는다고 주장합니다. 문화 소비를 결정하는 개인의 선호도가 각자의 계급적 처지에 따라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즉 계급이 같다면 소비 행태가 비슷하고, 계급이 다르면 소비 행태에 차이가 난다는 뜻인데, 이는 한마디로 ‘계급 내 동질화’와 ‘계급 간 차별화’로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학자 B는 미디어와 거대 문화 자본의 발달로 계급 간, 국가 간 문화 소비가 동질화된다는 것입니다. (다)의 학자 C는 개인주의적 사회 변화가 문화 소비의 다양화를 가져온다고 봅니다.

이상을 다시 정리하면 (가)는 문화 소비에 계급 내 동질화 및 계급 간 차별화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나)는 계급 간, 국가 간 동질화가, (다)는 개인 간 차별화(혹은 다양화)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즉 (나)는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 나아가 전 세계 모든 사람의 소비 행태가 똑같아진다고 하고, (다)는 거꾸로 모든 사람의 소비 행태가 다르다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는 한편으로는 (나), 다른 한편으로는 (다)의 주장과 ‘유사한’ 주장(똑같은 주장이 아닌)을 하고 있는데, 동질화와 차별화를 동시에 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몽땅 똑같다’(나) → ‘몽땅 다르다’(다) → ‘이렇게 보면 똑같고(계급 내 동질화), 저렇게 보면 다르다(계급 간 차별화)’(가)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주어진 제시문의 순서대로, 즉 (가) → (나) → (다)의 순서대로 논할 수도 있겠지만, 순서를 바꿔서 (나) → (다) → (가)의 순서대로 논할 수도 있겠습니다.

두 번째 문제를 봅시다. ‘지문 (라)에서 제시된 도표를 활용하여 학자 B와 C가 학자 A의 견해를 각각 어느 정도 타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지를 논술하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 특이한 점은 학자 A의 견해를 비판하되, ‘어느 정도 타당하게’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학자 B와 C의 관점에서 볼 때, 학자 A의 주장에 대해 비판을 할 수 있지만, 또한 학자 B와 C의 견해에도 약점이 있다는 점을 전제한 물음으로 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비판의 타당함을 논하는 동시에 학자 B와 C 견해의 약점이나 불충분함을 종합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도표 ①의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을 보면, 영화와 스포츠 관람 횟수가 가장 많은 반면, 자본가는 가장 적습니다. 프티 부르주아는 영화는 많이 보지만 스포츠는 선호도가 낮습니다. 즉 계급별로 문화 상품의 종류에 따른 선호도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도표 ②를 보면, 모든 계급의 선호 상품 1, 2위가 전시회와 영화로 동일해졌습니다. 계급을 불문하고 선호도가 가장 낮은 문화 상품 1위는 오페라입니다. 계급 간 문화 소비 실태가 비슷해진 것이지요. 이는 (나)의 ‘문화 소비의 동질화’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가)의 ‘계급 간 차별화’를 비판할 근거가 됩니다.

또한, 계급 내 문화 소비가 다양해졌습니다. 도표 ①을 보면, 계급별로 문화 소비의 대상이 확연하게 구별된 측면이 있었습니다. 프티 부르주아는 비교적 다양한 문화 상품을 골고루 소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간계급 역시, 프티 부르주아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문화 소비의 대상이 다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본가와 노동계급은 다릅니다. 자본가는 스포츠 경기를 유독 기피한다는 점에서, 노동계급은 스포츠 경기를 유독 좋아한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본가는 스포츠 경기를 기피한다는 동질성을 갖고 있고, 노동계급은 스포츠 경기를 특별히 선호한다는 동질성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도표 ②를 볼 때, 이런 경향은 바뀌었습니다. 계급별로 선호도의 차이는 있지만, 계급을 불문하고 특별히 선호한다든가 특별히 기피하는 문화 상품은 사라졌습니다. 1960년대의 자본가는 일반적으로 스포츠를 기피했지만, 2000년대 들어 각 개인의 취향에 따라 스포츠를 좋아하는 자본가도 많이 생겨난 것입니다. 노동계급도 마찬가지입니다. 1960년대와 마찬가지로, 어떤 노동계급은 여전히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과거 같았으면 자본가나 즐겨 찾았을 클래식과 전시회를 이제는 노동계급도 어느 정도씩은 즐기게 되었습니다. 노동계급이라 하더라도 각자의 취향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문화 상품을 소비하게 된 것이지요. 이는 (다)의 ‘문화 소비의 다양화’로서 (가)의 ‘계급 내 동질화’를 비판할 근거가 됩니다.

끝으로, ‘어느 정도 타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지’의 ‘어느 정도’에 해당되는 부분을 봅시다. 학자 B와 C가 학자 A의 계급적 경향성을 비판하고 있지만, 만약 어떤 식으로든 계급적 경향성이 남아 있다면 학자 B와 C의 견해는 그 타당성이, 완전히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는 부정될 것입니다. 도표 ①을 보겠습니다. 오페라, 국내외여행, 클래식, 전시회 등의 4개 영역을 보면, 계급적 지위가 높을수록 소비 수준이 높습니다. 도표 ②를 보면, 이 중 국내외여행과 전시회는 경향이 좀 바뀌어, 계급적 지위와 소비 수준이 꼭 일치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페라와 클래식은 계급적 지위에 따른 소비 수준의 차이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습니다. ‘잔존’하고 있다는 것은 그 차이가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고 어느 정도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인데, 도표 ①과 ②를 비교해 보면, 확실히 계급별 소비 정도의 격차가 줄어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해소’되지는 않았지요. 특히 오페라와 클래식이라는 문화 상품의 특성에 주목을 해봅시다. 둘 다 고급문화이지요. 문화적 수준이 웬만한 정도로 높지 않다면 쉽게 즐기기 힘든 장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급문화에서는 여전히 계급적 지위에 따른 소비 수준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이런 점에서 계급적 경향성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전시회를 보면 상황이 다릅니다. ‘전시회’라 하면 주로 ‘미술 전시회’ 혹은 무슨 ‘박람회’일 텐데, 이것 역시 고급문화이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는 계급적 지위에 따른 경향성이 없어졌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시회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오페라나 클래식 등의 고급문화에서는 계급적 지위에 따른 경향성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현 스카이에듀 대표

▼2008학년도 경희대 인문계 정시논술▼

(문제는 스카이에듀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미래사회 바람직한 가족 의미는

문제 개요

경희대 정시논술 논제는 다른 대학과는 조금 다르게 출제됐습니다. 다른 대학들이 정시와 수시의 구별 없이 다문항의 논술을 출제한 데 반해, 경희대는 수시 때와 달리 정시에서는 1500자 분량의 긴 글 한 편을 쓰도록 하는 고전적인 형태를 유지했습니다.

이번 논제의 주제는 ‘가족의 의미’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상당히 무너지고 있지요. 최근에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들 상당수도 이런 가족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본 ‘괴물’도 가족주의적 색채가 짙고, ‘가족의 탄생’, ‘좋지 아니한家’, ‘바람난 가족’ 등을 비롯해 조폭 코미디인 ‘가문의 영광’ 시리즈도 결국 가족애에 대한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가족애가 영화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많은 영화가 제작되고, 관객들이 이런 영화를 본다는 사실은 ‘가족’이라는 주제 자체가 그만큼 우리에게 호소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후기 산업사회 이후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속속 탄생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새로운 유형의 가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이번 경희대 논제에 대해 접근할 때도 이런 사회적 경향을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문제 해설

문제에서는 가족의 의미를 다룬 (가), (나), (다) 각각의 입장에서 (라)에 제시된 새로운 유형의 가족 현상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기술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 한국사회에서 바람직한 가족의 의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라고 요구합니다.

우선 (라)에 제시된 새로운 유형의 가족에 대해 정리해야 합니다. 경희대 논술도 다른 대학과 같이 문제에서 요구한 순서대로 답안을 작성하면 되지만, 단일 논제의 특성상 (라)에 제시된 새로운 유형의 가족이 어떤 것인지 개념을 정리해서 도입부, 즉 서론으로 활용하는 방식도 좋아 보입니다.

(라)에는 우선 1인 가구의 비율이 전체 가구의 15.5%를 차지한다고 나옵니다. 독신자 수가 증가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상당히 보편화된 현상인데, 이제 한국 사회도 이런 현상을 진지하게 다룰 시기가 된 것입니다. 1인 가구 자체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아닙니다. 과거에도 상당수 있었지만 우리 사회의 1인 가구 수가 하나의 유의미한 사회적 변화로 볼 수 있을 만큼 크게 늘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여기서는 직접적으로 두 가지 형태의 가족을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나옵니다. 이들은 아이가 없으므로 육아에서 해방되어 취미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됩니다. 서로의 여가나 사생활에 대한 개입도 없지요. 흔히 이런 가족을 딩크족(DINK族·Double Income No Kids)이라 부릅니다. 또 하나는 비혈연 공동체입니다. 예를들어 혈연관계가 없는 노인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가족을 형성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이들에게 혈연 가족은 생일 등 특별한 날에 만나는 사람들이고,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가족’은 비혈연 공동체입니다. 이런 ‘유사가족’이 대안 가족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지요.

다음에 살펴볼 것이 (가), (나), (다)에 나오는 가족의 의미입니다. (가)에서는 생물학적인 가족을 다루고 있습니다. 가족애를 인간의 본성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가족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긍정적으로 여겨집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노인을 부양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을 줄여주기 때문입니다. 가족 간의 자연스러운 애정 결속을 통해 노인 부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요. 궁극적으로는 공동체 전체의 복지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여기서 가족은 사회 전체의 복지에 이바지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이런 시각에서 보면, (라)에 나오는 가족 형태 중 유사가족은 긍정적입니다. 유사가족은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노인 복지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딩크족은 부정적입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딩크족 부부가 노인이 되었을 때 그들의 부양은 사회가 떠안아야 할 문제가 되니까요.

(나)에는 유교적 전통의 가족이 등장합니다. 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가족주의는 한국식 자본주의의 성장 원동력으로서 의미를 갖습니다. 가족 부양의 책임감 때문에 가장들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자식들은 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 결집되어 ‘한강의 기적’을 일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가족은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서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의 딩크족이나 유사가족은 모두 부정적입니다. 부양의 책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열심히 일을 할 필요도 없어져서입니다.

(다)에서는 핵가족이 등장합니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를 사례로 들어, 가족이 아닌 다른 모든 이는 잠정적인 적으로 간주합니다. 가족을 위해서는 다른 이를 공격하고 피해를 주는 것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작은 핵가족이 자신들만을 위한 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이런 ‘무도덕적 가족주의’의 확산은 사회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다)는 가족주의의 폐해를 다루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시각에서 (라)의 가족들은 가족 간의 지나친 결집을 완화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딩크족이나 유사가족 모두 이런 무도덕적 가족주의의 결집을 무너뜨릴 수 있으니까요.

요약하자면 (라)의 두 가족형태에 대해 (나)와 (다)는 각각 전부 부정, 전부 긍정의 정반대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가)에 따르면 둘 중 하나는 긍정, 다른 하나는 부정하게 되고요. 이처럼 (라)에 대해 (가), (나), (다)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된다는 점이 분명하게 대조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이런 시각을 바탕으로 미래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가족의 의미에 대한 자기 견해를 논술해야 합니다. 새로운 유형의 가족이 등장한 것은 그러한 가족 형태에 대한 필요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유교적 전통의 가족이 붕괴되고, 가족 형태가 핵가족 위주로 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문제를 풀려면 어떤 가족 형태가 더 바람직한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처음에 언급한 여러 영화의 내용을 되새기다 보면 문제를 해결할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가령, 영화 ‘괴물’에는 문제가 많은 한 가족이 등장합니다. 노점을 운영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할아버지와 백수인 아버지,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을 졸업했지만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청년 백수로 살아가는 삼촌, 경기에서는 활을 못 쏘는 고모 등 각자 저마다의 문제를 갖고 있는 가족 구성원이 가족을 구하기 위해 ‘괴물’과 처절한 사투를 벌입니다. 결국 괴물은 쓰러졌지만 가족을 지키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합니다. 아버지 송강호가 고아 형제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함박눈이 내리는 밤, 송강호의 가족이 있는 노점은 따뜻해 보입니다. 밖은 겨울이라 춥지만 새롭게 구성된 가족은 작고 따뜻한 공간에서 서로를 울타리 삼아 포근한 겨울을 보냅니다.

이처럼 혈연관계는 아니라도 힘든 사람들이 서로 기대어 유사가족을 형성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혈연 가족은 아니지만 유사가족은 영화의 결말처럼 일종의 대안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이 서로 간 진실한 가족애를 느낄 수만 있다면 (다)의 가족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가)의 사회 전체의 복지를 증진시키면서 (나)에서 언급된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도 기능할 수 있게 되겠지요.

심형보 스카이에듀 논술강사

※2008 대입논술 해설 easynonsul.com 및 스카이에듀 홈페이지(www.skyedu.com)에 풀이 및 동영상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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