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 뛰어넘기]“논리적 사고 → 의사소통 우선”

  • 입력 2008년 3월 10일 02시 59분


바야흐로 성적 대신 능력

대학 기업 공무원 할것없이

새 인재선발방식 날로 확산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출발한 능력 평가 방식은 이제 우리 사회 전체에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사회 각 부문의 인재를 선발할 때 지식 평가보다 능력 평가에 주안점을 두는 방향으로 급격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2008년 현재 국가 대학 기업의 세 주체 모두 이러한 평가 시스템을 이미 시행하고 있고, 그 경향은 점점 강화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가에서 시행하는 행정·외무 고시 1차 시험인 PSAT(Public Service Aptitude Test)입니다. 보통 ‘공직적격성평가’라고 부르지요. 과거 고시 1차 시험은 헌법, 한국사 등의 과목을 중심으로 지식을 평가하는 성격이 강했으나 이제는 전혀 다릅니다. 고위 공무원이 될 초급 관리자를 뽑는 고등고시 1차 시험인 PSAT는 기본 직무 능력과 소양을 △언어논리 △자료해석 △상황판단 이렇게 세 영역으로 나누어 평가합니다.

왜 ‘언어논리’ 영역은 수능 과목명인 언어에 ‘논리’를 더 붙였을까요? 바로 합리적 사고에 기초한 의사소통능력을 평가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선 국민과, 나아가 공무원끼리 제대로 의사소통할 수 있어야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언어논리가 첫 번째 영역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자료해석’ 영역은 데이터를 정확하게 읽고 해석하여 정보를 추출하는 능력을 평가합니다. 공무원은 국민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국민에 대한 모든 정보는 데이터로 정리되지요. 따라서 국민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수집된 각종 데이터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추출하는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현장에 나가서 발로 뛰며 현실을 파악하는 적극성도 중요하지만 데이터를 예리하게 분석하는 명석한 두뇌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료해석 영역은 바로 그런 능력을 평가합니다. 최근 대입 논술 시험에 도표나 그래프를 주고 이를 해석하고 분석하게 하는 문제의 출제빈도가 높아지고 있지요. 그런 현상도 자료해석이 고시에 포함된 것과 유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상황판단’ 영역은 어떤 능력을 평가할까요? 바로 정책결정 능력입니다. 공직자는 현장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할 가장 적절한 정책을 결정해야 합니다. 공무원이 얼마나 적절한 정책을 선택하는가에 국민 전체의 삶의 수준과 행복이 결정납니다.

PSAT에서 보듯이 공직자의 기본 능력과 소양을 평가하는 시험에는 합리적 사고에 기초한 의사소통 능력이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공기업인 공사 입사시험에도 반영된다는 소식이 있고, 몇 년 내로 7급 공무원 시험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PSAT는 중앙인사위원회에서 담당했지만 올해부터는 통합된 행정안전부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각 영역의 최고 전문가를 기르기 위한 각종 전문대학원에서도 학생을 뽑을 때 합리적 사고에 기초한 의사소통 능력을 반드시 평가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MEET)이나 치의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DEET)이 그 예입니다. 요즈음은 학부에서 의대나 치대를 가지 않더라도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고 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대학원 때부터 의학 공부를 시작해서 의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자연계 학생들이 주로 지원하는데 시험과목은 △언어추론 △자연과학추론 1 △자연과학추론 2입니다. 수학 및 과학 기초 능력을 평가하는 ‘자연과학추론 1, 2’의 비중이 높지만 ‘언어추론’의 비중도 낮지 않습니다. ‘추론’이라는 표현이 덧붙여져 있는 것은 역시 합리적 사고에 기초한 의사소통 능력을 중요하게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이기에 엄밀한 논리적 사고 능력이 필요하고, 사람들을 대면해서 치료하는 직업이기에 환자와의 의사소통 능력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최근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은 올해부터 새로 시행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시험인 법학적성시험(LEET)입니다. 이 시험은 △언어이해 △추리논증 △논술의 세 영역으로 구성됩니다. 앞의 두 영역은 이름만 보아도 PSAT의 ‘언어논리’나 MEET, DEET의 ‘언어추론’을 좀 더 세분해 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률가가 되려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과 남을 설득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시험과는 달리 ‘논술’까지 포함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선다형 시험인 앞의 두 영역만 시행

하려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는데 공청회 등을 통해 여론을 수렴한 결과 논술을 추가하게 됐다는 후문입니다. 논술이 대학입시에 한정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지요.

현재 법학적성시험을 포함한 전문대학원 입학시험은 교육과정평가원이 위탁받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추론’이나 ‘언어이해’의 경우 그동안 수능 ‘언어영역’를 시행하면서 쌓아온 노하우가 상당수 적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추리 논증’은 새로운 모델을 정립하고 있는 중입니다.

기업들도 인재를 뽑을 때 이와 유사한 시험들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선 앞서 본 세 시험을 하나씩 살펴본 다음 기업체의 시험을 묶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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