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하고 분해… 자존심도 함께 무너졌다”

  • 입력 2008년 2월 12일 02시 57분


“어떡해…” 11일 날이 밝으면서 폐허가 된 숭례문이 모습을 드러내자 시민들은 참혹함에 할말을 잃었다. 무너져내린 국보 1호를 앞에 두고 별 도리가 없다는 안타까움에 긴 한숨만 내쉬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외면도 해 보지만 앙상한 뼈마디조차 절반이 채 남지 않은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부 시민은 슬픔이 분노로 바뀌어 하늘에 대고 탄식을 토해냈다. 원대연 기자
“어떡해…” 11일 날이 밝으면서 폐허가 된 숭례문이 모습을 드러내자 시민들은 참혹함에 할말을 잃었다. 무너져내린 국보 1호를 앞에 두고 별 도리가 없다는 안타까움에 긴 한숨만 내쉬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외면도 해 보지만 앙상한 뼈마디조차 절반이 채 남지 않은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부 시민은 슬픔이 분노로 바뀌어 하늘에 대고 탄식을 토해냈다. 원대연 기자
“국보 1호 관리하는 공익요원 한명도 없다니” 한탄

임시 가림막 설치에 “이런다고 잘못 가려지나” 질타

서울소방본부장 “부족함 없다” 발언에 누리꾼들 “가만히나 있지” 분통

■ 시민들 어처구니없는 참사에 망연자실

《화마가 휩쓸고 간 11일 숭례문의 2층 누각은 형체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누각을 받치고 있던 석축에는 새카맣게 그을려 무너져 내린 서까래가 어지럽게 얹혀 있었다. 양쪽이 엿가락 휘듯 아래로 내려앉은 1층 누각 역시 수십 t 물대포의 충격을 견디지 못해 흙으로 된 속살을 드러냈다. 숭례문의 참담한 모습에 설 연휴 뒤 첫 출근길에 오른 시민들은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일부 시민은 숭례문 뒤쪽 입구 근처에 흰 국화 다발을 놓고 빠른 복원을 기원했다.》

이날 현장에는 오전 일찍부터 무너져 버린 숭례문을 직접 확인하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시민들은 도로 쪽으로 떨어져 깨진 채 방치된 기와 주변에 모여 안타까운 심정에 발을 동동 굴렸다.

오전 9시경부터 구청 측이 숭례문 주변에 6m 높이의 임시 가림막을 설치하자 시민들은 “이깟 가림막으로 잘못을 가릴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오후 6시 40분경에 서울시 관계자들이 ‘복원 작업을 위한 사전 공간 확보’를 이유로 숭례문 주변에 펜스를 두르는 작업을 시도하자 시민들은 삼각뿔 등을 발로 차며 “방화범은 못 막고 시민을 막으려 한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화재 발생 직후부터 이날 새벽까지 현장을 지키다 걱정이 돼 아침 일찍 다시 찾았다는 손선표(75) 씨는 “선조와 후손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보충수업 후 친구들과 함께 현장에 온 양근영(17·신광여고 2년) 양은 “잔불이 잡혔다는 방송 보도를 보고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숭례문 지붕이 날아가 큰 충격을 받았다”며 “국보 1호라고 하지만 일반 시민의 무관심이 관리 부실로 이어진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일본인 여행객 기무라(23·여) 씨는 화재 직전 카메라로 담은 남대문 사진을 보여주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고령의 시민은 침통한 표정으로 “후손들 볼 면목이 없다”며 ‘국보 1호’라는 표시와 함께 숭례문의 역사가 쓰여 있는 표지판 앞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기도 했다.

남대문시장 입구에서 10년 넘게 복권방을 운영해 온 양동호(49) 씨는 “가게에 나와 보니 숭례문 지붕이 폭삭 내려앉아 있었다”며 “일본인들이 남대문 앞에서 웃으며 사진 찍는 모습을 보는 게 낙이었는데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새벽까지 집에서 TV로 지켜보다가 이날 오후 경기 파주시에서 사고 현장으로 온 주부 박미숙(46·여) 씨는 “국보 1호를 관리하는 공익근무 요원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이번 화재는 국민소득 2만 달러라는 우리나라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린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한편 소방방재청과 문화재청 등 관계 당국의 책임 미루기를 비판하며 10일부터 들끓던 인터넷 여론은 11일 정정기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의 국회 발언이 알려지자 폭발했다.

정 본부장은 국회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공조체제 소방장비 등도 문제없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소방차 수십 대를 동원하고도 국보를 다 태워먹은 마당에 무슨 할 말이 더 있나.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밉지나 않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은 이날 오후부터 접속량 초과로 서버가 다운됐다.

누리꾼들은 문화재청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응을 지적하며 유홍준 문화재청장 등 관계자들의 문책을 촉구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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